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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속으로 – 화성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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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속으로 – 화성면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4.03.25 11:02
  • 호수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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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반짝이는 길 - 매산리·농암리·구재리

걷기 좋은 식물원길로 매산2리를 지납니다. 누렁 강아지가 졸랑졸랑 따라옵니다. 연둣빛 잎이 맺힌 버드나무로 매산저수지가 한껏 봄 같습니다. 저수지 낚시터 붉은지붕의 가느다란 연통으로부터 나무 타는 냄새와 연기가 몽실몽실 올라옵니다. 저수지에서 흐르는 물은 매산2리의 무네미들을 지나고 중보들판을 지나 무한천으로 흐릅니다. 졸졸 콸콸, 물처럼 걷습니다. 마찻들로 가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그 뒤로 4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 무네미 버스정류장은 청양과 화성을 오가는 마을버스만 다닙니다.  

다락골 줄무덤
다락골 줄무덤

무한천을 건너 농암리에는 딸기밭(하우스)과 오리요리가 맛있는 식당 ‘흙사랑’이 있습니다. 치즈를 뿌려서 돌돌 말아주는, 약간 눌은 볶음밥도 별미입니다.
농암1리의 배울마을 입구에는 네모진 연못이 있습니다. ‘이 포강은 대통령각하 하사금으로 준설(浚渫: 물속 바닥을 파내 깊게 함) 등 보수하여 준공’하였다는 46년 전의 비석이 있습니다. 연못 둘레길을 지키듯 하는 장승의 뒷모습은 절로 웃게 합니다. 

배울마을 연못가의 두 돌장승
배울마을 연못가의 두 돌장승

길가 우물 위로 큰 버드나무가 있습니다. 마을에서는 배울 정자나무라 부르며 음력 정월 열나흘 밤에 우물에서 ‘샘제’를 올립니다. 나무 원줄기의 둘레가 넓고 키가 크며, 잎도 일반 버드나무에 비해 넓은 왕버들나무랍니다. 
버드나무와 우물을 보니, 우물가 처녀 설화가 떠오릅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우물가에서 한 처녀에게 물 한 그릇을 청하였더니, 그 처녀는 버들잎을 띄워 주며 천천히 마시라고 했다는 내용이지요. 후에 그 처녀는 장화왕후가 되었답니다.

배울마을의 버드나무와 우물
배울마을의 버드나무와 우물

농암2리의 다락골에는 ‘새터’와 ‘줄무덤’ 성지가 있습니다. 새터마을에는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이며 땀의 순교자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 생가터가 있습니다. 열두 사도 계단 위에, 최신부가 은신하며 미사를 올린 죽림굴을 재현한 경당이 있습니다. 천정에는 별자리를 새겼습니다. 밤마다 최신부가 보았을 별자리지요. 
 
다락골 소성당 화단에 매화꽃이 총총 폈습니다. 병인박해(1866년) 시 순교한 천주교 신자들의 줄무덤이 솔밭에 있습니다. 한 봉분 안에 가족을 줄지어 시신을 넣었다 하여 줄무덤(줄묘)입니다. 무명 순교자들의 신앙이 쌓인 골짜기, 새소리 바람소리도 거룩합니다. 

상의사
상의사

구재리, 구봉산자락 아래에 큰 마을 어재울이 있습니다. 36번 국도 밑의 굴다리로 가야 합니다. 봄나물을 뜯으시는 듯, 챙 넓은 꽃무늬모자를 쓴 어르신이 논둑에 앉아계십니다. 어재울마을의 첫 번째 집에 사시는 최명옥할머니입니다. “달래 캐, 벌써 몇 번 간장 해 먹었어. 시장서 파는 것하고는 향이 달러. 그냥 송송 쓸어 간장만 부어 먹으면 디지 뭘 뭇혀”. “22살에 여기루 시집와서 지금 팔십 두 살유. 우리 시어머니 살아 기실 때만히두 서낭제를 지냈는디 언제부턴가 안 지내데. 며칠 전에 반장이 늘어진 가지 치구, 구멍 난 곳 땜질허구 나무 손질해서 고사 지낸 거여.” 마을로 접어드는 길목의 삼형제 느티나무와 선돌에 금줄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3월 10일, 2024년도 어재울마을 안녕기원제’ 안내판이 당산나무 앞에 세워져 있습니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어재울과 구숫골 주민들은 정월 초사흘에 구봉산에서 산제를 지내고 내려와 이곳(입구에서 첫 번째 나무와 선돌)에서 성황제를 지냈답니다. 

어재울마을 입구 삼형제 느티나무
어재울마을 입구 삼형제 느티나무

어재울마을에는 조선의 명재상 번암 채제공 선생의 생가터가 있습니다. 탈탈탈탈 관리기 소리, 곱게 다듬어진 황토밭, 길가에 덩그러니 놓인 농기구, 흙냄새, 두엄을 뿌리는 어르신, 모두 봄을 알립니다. 생가터 앞에 우물과 빨래터가 있습니다. 그 당시 바짝 말랐던 우물은 번암 선생이 태어나자 우물물이 솟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빨래터에는 빨랫방망이와 대야가 있습니다. 저 아랫집의 빨래터에도 빨래판과 방망이가 있었지요. 
  
어재울에서 큰길 건너 맞은편은 동둣말, 화성중학교 뒤쪽에 번암 선생의 사당 ‘상의사’가 있습니다. 지난해 떨어진 은행이 겉껍질을 벗지도 못한 채 쌓여있습니다. 홍살문을 지나 외삼문과 내삼문 안에 영정을 모신 진영각이 있습니다. 
 
구숫골 오봉산 자락에는 절집 ‘원각사’가 있습니다. 정문스님은 솔잎차를 잘 담그셨지요. 절 식구들이 잘 가꿔놓은 절 입구는 단풍나무를 비롯한 숲길로 이 또한 명품입니다. 

식물원길부터 마차들길-하매길-배울제길-초록길-다락골길-어재울길-구숫골길까지, 걷는 내내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고 공기는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김현락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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