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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자세히 봄 - 신정리·용당리·수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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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자세히 봄 - 신정리·용당리·수정리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4.03.18 11:06
  • 호수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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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속으로 – 화성면

청양읍 장승리와 경계를 이루는 신정리는 햅싸리, 관터, 원통, 청대골 등의 자연마을이 있습니다. 푸른 대나무가 많다는 청대골 입구, 술렁거리는 마른 대나무에 금방 초록물이 오르겠지요. 

청대골마을 효자의 집

안창식‧안병찬‧안병림의 묘소가 있는 청대골마을에는 홍주의병에 참여한 순흥안씨 문중의 사당 ‘청대사’가 있습니다. 홍살문 안쪽으로 부드러운 푸른 바닥에 보라색 봄까치꽃이 많이 피었습니다. 을미사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옥중에 갇힌 안병찬은 목을 찔러 자결하며 옥중 혈시(血詩)를 썼습니다. ‘~차라리 머리 없는 구신 될망정/머리 깎은 사람은 아니 되련다/의리에 죽으니 무엇을 한하겠는가/다만 노친이 당상에 계시는데/봉양을 못 하니 그것이 한스럽다.’ 

오후 햇살이 독립유공자의 묘를 반짝입니다.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친 정려각 안에는 안국주와 그의 손 안경량의 효자 명정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두 조손은 각자 효심이 커 부모에게 정성을 다해 봉양하였으므로 고종임금이 효자 표창을 하였습니다. 효심도 대물림을 하듯 청대골마을에 사는 그들의 후손 또한 효자패를 받았습니다. 안부영‧이은팔씨의 대문에 걸린 ‘효행의 집’을 올려봅니다.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햅사들을 둘러싼 햅쌀이길, 관터들이 있어 관터길, 청대골길에서 무한로를 따라 신정교 입구에서 해바라기하는 어르신을 만납니다. “햅살이길이 햅살이길이지 뭐여?” 
용당교, 띠실길, 원통마을, 무한천에 갈대가 곱게 말랐습니다. 흔들흔들 부드럽게 흔들립니다. 푸를 때나 지금이나 고개를 숙이기만 하지 부러지진 않습니다. 물에 닿으면 물처럼, 바람에 닿으면 바람처럼 흔들립니다. 은은하게, 오래오래, 질기게. 

용머리 느티나무

용 모양 같아 용당리입니다. 원당-띠실-큰동네-용머리 자연마을이 무한천과 나란합니다. 큰동네 입구에는 옛날에 금정역이었다는, 서울을 오가던 서해교통 요충역터라는 안내문과 찰방(역의 최고책임자)을 지낸 4명의 비석이 있습니다. ‘역(驛)’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온 육로교통지로 공무 중인 관리에게 말과 숙식을 제공하고 공문서 및 군사정보를 전달하는 일을 한 곳이었답니다. 남양면 금정리에서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1795년에는 다산 정약용도 금정역 찰방으로 근무했습니다. 6개월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본인의 일상과 시골 동향 등을 날마다 기록하여 『금정일록』을 남겼지요. 

신당로 옆 빨강집

큰동네 야산 중턱에도 정려각이 있습니다. 넓은 마당에 푸릇푸릇 싹이 올라옵니다. 다른 정려각보다 큰 규모에, 앞면에는 조그만 출입문도 있습니다. 15살 어린 나이에 조씨가문으로 시집온 대구서씨는 60여 년간 시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습니다. 공경했던 남편이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자, 본인의 정성이 부족한 탓이라 여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요. 고종임금은 서씨에게 열녀 정려를 내렸습니다. “요새도 저런 부인이 있을까 물러” 마을 어르신이 웃으십니다. 

이종창 대표

커피가 있는 화원 ‘혜지원’의 문을 열자, 더운 기운과 여러 가지 꽃향이 밀려옵니다. 작고 알록달록하고 환한 복주머니꽃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카틀레야, 새 이름인 줄 알았습니다. “나무나 돌에 붙어사는 착생난으로 색감도 예쁘고 향기가 아주 좋습니다. 난의 여왕이죠” 이종창 대표가 좋아하는 난이랍니다. 아쉽게도 카틀레야는 꽃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이 꽃방에, 천 명의 고객이 만 번 오기를 희망하는 이종창 대표가 루왁커피를 내립니다. 은은한 커피향이 꽃잎과 꽃잎 사이로, 난초와 난초 사이로 스며듭니다. 

일반 가정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난 관리에 대해 여쭙니다. “물은 1~2주에 한 번, 꽃이 진 난은 잎사귀까지 흠뻑, 꽃이 있으면 잎 밑부분에 물을 주고 봄·가을에 살균·살충제를 주면 좋죠. 알영양제도 주면 좋구요. 난은 온도 차이를 주면, 기온이 낮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주면 꽃을 피웁니다. 실내에 있던 것을 베란다에만 옮겨 놓아도 꽃을 볼 수 있죠.” 혜지원의 명물, 나이테로 치면 30개가 넘는, 잎이 사슴뿔 모양인 큰 박쥐난을 봅니다. “잎이 거꾸로 쳐져 자라는 모습이 박쥐와 닮았답니다.” 
용머리마을 입구의 큰 느티나무에는 소망 종이를 꽂은 금줄이 걸려있습니다. 막걸리향도 물씬 납니다. 매년 음력 2월 초하룻날, 느티나무제를 지냅니다. “수십 년 전 저쪽 다리 밑 마을의 집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고, 용머리 사람 또한 오토바이를 타고 논 물꼬 보러 가다 사고를 당했다고 해요. 그때부터 나무에 제를 지냈고, 그 뒤로는 마을이 안녕하죠.” 이종창 대표는 말합니다.

수정리 입구

오서산이 가까운 수정리, 정머리-자릿골-독골-물안이마을로 걷습니다. 독립유공자가 많았던 물안이마을 입구, 항일애국지사 공원의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마을회관 뒤쪽으로 물안이둘레길에 오릅니다. 물고기 모양의 수정저수지를 둘러싼 무성한 나무들은 아직 겨울이지만, 물 흐르는 소리는 성격 급한 봄입니다. 
<김현락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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