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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길에서 잠시 멈춤 - 화암리·기덕리·광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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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길에서 잠시 멈춤 - 화암리·기덕리·광평리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4.03.11 11:06
  • 호수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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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속으로 – 화성면

효도마을 화암리, 마을회관에는 어르신들 여럿이 둥그렇게 앉아 윷놀이를 하십니다. 에구, 아쉽습니다. 걸이 나왔으면 4개의 말(업은)을 한꺼번에 잡아 이길 수 있었는데, 개가 났기 때문이지요. 아쉬운 헛웃음과 기쁨의 웃음소리가 윷가락의 명랑한 소리와 섞여 방안을 들썩입니다. 
 
화성면 소재지에서는 북쪽에 있는 화암리, 보기 좋은 소나무가 많습니다. 논 한가운데에, 길가에, 집 뒤꼍에 붉고 노란 줄기의 소나무들이 있습니다. 와송정(臥松亭, 임동일씨 고택) 입구의 말간 소나무는 마치 수문장 같습니다.

삼리정과 소나무숲
삼리정과 소나무숲

“자랑이 뭐 있나? 마을이 조용하게 살았지. 공기 맑고 깨끗하고.” 임동민 어르신은 85년을 화암리에서 사셨습니다. 이곳에서 300여 년 살아 온 평택임씨로 사진 찍기를 극구 사양하십니다. 
“예전에는 느타리버섯을 하던 집이 스무 가구 정도였는디 지금은 한 집 밖에는 읍지 아마. 대신 친환경 벼농사, 친환경 쌀농사를 지어요. 꽃창이? 옛날 여기에 군량미를 보관하던 곡식 보관 창고가 있어서 ‘곡창’이라 하였다고 들었어.” 정악이‧곡창이‧꽃뫼골‧공덕이 4개 반을 화창부락, 윗뜸‧중뜸‧용수편뜸 5‧6‧7반을 불무골[야동(冶洞)]부락이라 부른다고 자세하게 마을 소개를 해주십니다. 용수편뜸은 마을이 긴 모양인 듯하다 했더니, “그렇지. 꽃뫼골은 해주최씨 선대묘가 있어요. 옛날에 산 고랑 하나가 연꽃모양이었다는디,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이 산 능선을 잘랐는데 피(붉은 흙)가 나왔다고 하여 그렇게 불렀답니다. 해주최씨 가문에서 유명한 사람이 나올까 봐 산자락을 자른 거라는 얘기가 내려와.” 그렇게 화암리는 꽃화(花) 바위암(岩)자를 씁니다. 
 

소태나무에 붙은 손글씨 안내문
소태나무에 붙은 손글씨 안내문

꽃샘바람보다, 반짝이는 햇살보다, 마을을 흐르는 맑은 물소리로 봄을 느낍니다. 임동민 어르신이 즐겨 걷는다는 산책길을 따라 화암저수지에 오르니 검푸른 물이 출렁입니다. 저수지 저편으로는 불무골입니다. 막힘없는 화암리 들과 마을을 내려봅니다. 어르신의 말씀처럼 마음이 뻥 뚫립니다. 논 가운데에 『토지』(박경리 소설)의 배경인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부부 소나무’ 같은 두 그루 소나무가 있습니다. 몇 마리의 까치가 들락날락합니다. 불무골길과 우수고개길로 둘러쳐진 저수지, 우수고개길을 따라 내려오며 왼편의 꽃뫼골 연꽃 모양의 산을 올려봅니다. 산당로입니다. 

화암리와 수정리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 강당고개입니다. 고갯길에 있는 ‘산천재’는 평택임씨 재실이지만, 애국정신의 산실로 많은 사람이 모여 공부를 했던 곳입니다. 회색고택 앞에는 오래된 탱자나무가 있습니다. 지난해 열렸던 탱자 한 알이 까맣게 말랐습니다. 줄기에는 하얀 곰팡이버섯이 꽃처럼 곱게 올라와 있습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견뎠는지, 목질보다 시멘트로 메꾼 부분이 더 많은 줄기의 소태나무도 있습니다. 소태나무 위쪽의 소나무숲에 삼리정(기덕리‧수정리‧화암리 세 마을의 교차점에 지어졌다하여) 정자가 있습니다. 200년이 훨씬 넘었다는 소나무, 부드러운 솔밭에 앉습니다. 바람이 몰아주는 소나무의 푸른 소리를 듣고 싸한 향기를 맡습니다. 이 나무 저 나무 각기 다른 모양의 소나무 속을 걷자니 문득 신선이 된 기분입니다.  

조선 후기에 태어나 지극한 효도로 부모를 공양한 임영호 효자비가 강당고개 밑에 있습니다. ‘본래 어질고 후중한 성품으로 효성을 하늘에서 타고났네/고치기 어려운 고질병에 약을 맛보며 신명께 빌었도다/손가락 찢은 피로 어버이 연장하니 효성의 끝맺음은 어버이가 천수를 누렸더라/제사에 정성껏 정중한 예의를 다하며 그 몸을 게을리하지 않았어라’. 조선소나무 병풍을 두른 듯한 기덕리 마을에 효자의 손주가 살고 있습니다. 

기덕리마을 역시 나무도 집도 오래됐습니다. 집도 그렇지만, 마을길까지도 소나무와 향나무가 그득합니다. 평택임씨 문중의 지방민속문화재 삼전고택과 송운고택은 공사 중입니다. 솟을대문과 흙담이 이쁩니다. 화암리와 기덕리, 수정리에 걸쳐 길게 자리 잡은 조선소나무를 옆에 끼고 걷는 듯합니다. 
  
화암저수지로부터 내려온 물은 기덕리와 광평리를 거쳐 무한천과 만납니다. 광평리는 1993년부터 2003년까지 7개의 ‘범죄 없는 마을’로 선정된 명패가 마을회관 입구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습니다. 너븐들에 20여 그루의 느티나무 수구막이도 있습니다. 오서산에서 내려오는 큰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지만, 지금은 북쪽으로부터 오는 바람을 막아 줍니다.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에 황새가 많이 살아서 황새말, 황새말의 당산에는 넓고 큰 바위가 있습니다. 천연 산신당입니다. 음력 정월 초사흘 저녁에 광평리마을의 안녕을 위한 산신제를 지냅니다. 약 120년 전부터 지내 왔으며, 광평리의 4개 자연마을 중 2‧3반 마을에서 모시는 산신제입니다. “올 한 해 역시 광평리 주민들 모두 평안하고 건강하고 무탈하기를 비나이다.” 김진섭(1940~) 산신계장님이 소지를 올립니다. 당산 입구의 우물 앞에서도 유왕제를 올립니다. 우물 앞에 백무리를 찐 시루와 촛불, 정화수(정한수) 한 그릇이 있습니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동민이 하나 되어 해마다 지냅니다. 집집마다 집식구를 위해 정성을 들이는 것이죠. 6‧70년대(1960~1970년)에는 주민이 100명이 넘어 성황이었는데, 지금은 30여 명뿐입니다. 그마저도 80세 이상이 90%니 걱정이지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도 거르지 않고 지냈던 산신제를 언제까지 유지할지가 해마다 걱정입니다.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로부터 보고 듣고 배운 전통은 정신적으로 큰 지주가 되었답니다. “그 전통을 계승시키지 못할까 그것이 오직 걱정입니다.” 
 
명랑한 물소리, 어렵게 땅을 밀고 올라 온 꽃줄기, 눈 뜨듯이 핀 작은 꽃, 바람에 떨리는 것인지 내가 떨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는 봄입니다.
<김현락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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