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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용서할 수 있을 것처럼 흰 것들은 희구나 –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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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용서할 수 있을 것처럼 흰 것들은 희구나 – 겨울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3.12.26 11:49
  • 호수 1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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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 세상 둘러보기

‘눈이 오는 겨울/무얼 만들까/솜옷을 만들까/솜이불을 만들까/썰매를 탈까/눈싸움을 할까//어느새 봄이 오겠다’-손관수, ‘겨울’ 전문

가랑눈에 함박눈에 눈갈기(쌓인 눈이 말의 갈기처럼 흩날리는 눈보라)에, 밤눈에, 눈이 많이 쌓였습니다. 나뭇가지에는 눈꽃이 피고, 지붕 위에는 솜이불이 덮였습니다. 하양의 계절, 깊은 겨울입니다. 
하양 앞에 서면, 하양을 보고 있으면, 그냥 순해집니다. 고요하고 편안합니다. 구름도 파도도 눈(雪)도 하양이지요.

별이 가장 밝게 보이는 계절도 겨울입니다. 공기가 맑아서가 아니라 계절상 밝은 별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겨울의 별자리들이 유난히 화려하게 보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식재료 관리가 가장 편한 계절이며, 황태나 시래기 등 뭔가를 말리기 좋은 계절이기도 합니다. 자연 동결건조이지요. 특히 겨울은 길상(吉祥)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조짐인 길상은 좋은 기운을 줄 것으로 믿는 대상들을 생활 속에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좋은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소망을 담은 말과 문양 길상어와 길상무늬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한 해의 끝에서 새로운 해에게 기대를 듬뿍하며, 길상어와 길상무늬를 가족과 이웃과 주고받았습니다.

옛 어르신들은 길상의 의미에 행복을 찾는 모든 행위를 담았습니다. 행복은 삶이 즐겁고 기쁘며 만족스러울 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수많은 길상무늬는 그 수만큼이나 다양한 유래를 지니고 있습니다. 알록달록한 색채의 길상 물품은 그것들을 만든 이의 소망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일생에서 바랐던 다섯 가지 복에 대한 소망을 동식물‧자연물‧글자‧기하무늬 등 다양한 길상으로 표현하며 생활 속에 되새겼습니다. 오래도록 살기를 바라고, 높은 자리에 오르길 바라며, 부를 누리고 후손이 번창하기를, 가정이 화목하기를 바라는 것이었지요. 

풍요와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을 그려 액자나 커튼을 만들어 생활공간을 장식하였고, 십장생이나 호작도를 많이 그려 걸었습니다. 원숭이와 잉어‧게‧새우 등은 입신양명을 상징하여 문방구 등에 새기는 길상무늬로, 벼루에는 게의 문양을 넣고 연적은 잉어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게의 딱딱한 등갑은 장원급제를 뜻하였고, 잉어는 관직을 얻는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지요. 이름을 드높이고 싶은 소망을 담은 것이었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수(壽, 목숨 수)자 무늬와 오래 사는 열 가지 십장생(해‧달‧구름‧산‧물‧돌‧소나무‧대나무‧영지버섯‧거북‧학‧사슴‧복숭아 중), 고양이와 까치의 길상무늬를 그리고 만들었습니다. 성공 기원의 길상으로는 주렁주렁 달린 감(柿), 게와 갈대, 원숭이, 벌과 등나무, 잉어를 문양으로 넣습니다. 오랜 세대에 부귀가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란을 덩굴무늬로 그렸습니다. 여러 꽃나무에 깃든 한 쌍의 새, 꽃에 찾아오는 나비, 부부의 화합과 행복에 대한 길상적 의미를 상징합니다. 

가지, 오이와 고슴도치, 물고기와 연꽃과 연밥, 수박‧포도‧석류 등은 자손 번창을 위한 길상의 무늬입니다. 자녀가 많으면 많은 복과 같다고 여겼으므로, 많은 씨앗과 열매를 가진 식물처럼 자녀가 건강하게 태어나 자라길 기원했지요. 탐스러운 포도송이처럼 많은 자녀를, 길게 늘어지는 덩굴로 대대 자손 번창을 바라는 마음을 그린 ‘포도도’를 즐겨 보며 나누었습니다.
여성의 장신구 오작노리개에는 ‘부귀다남(富貴多男)’이라 새긴 문자판과 ‘다남’을 기원하는 의미의 도끼 등을 매달았습니다.

‘행복’이란 단어는 개화기(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널리 쓰인 것으로 추정합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행복과 행운에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행복을 찾고 무병장수와 시험 합격과 부귀영화 등을 기본으로 한 다양한 소망을 갖습니다. 우연히(?) 오는 행운을 바라기도 하지요. 간절한 마음과 기다린 시간과는 달리 행복은 영원하다기보다 금방 사라집니다. 행복은 저마다의 다른 모습, 다른 느낌으로 올지라도 ‘행복하시라’는 인사는 길상을 드리는 것이겠지요.  

까닭 없이 겸손해지는 하얀 겨울의 밤, 길한 것을 바라는 것도 불길한 것을 꺼리는 것도 지나치면 어리석음이 된다는 서거정(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학자)의 글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어떤 표정도 허락되는 연말이길 바란다’는 집필노동자의 송년글도 읽습니다. 언제부턴가 착한 사람을 만나면 미안한 일이 닥칠 것만 같다는 시인의 마음도 읽습니다.

좋은 일을 생각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길상여의(吉祥如意) 여의길상, 행복 또한 바라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랍니다. 집필노동자에게, 시인에게, 우리 모두에게, ‘수복강녕(壽福康寧),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김현락 편집주간>
 올해에도 제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새해에도 건강한 마음으로 좋은 일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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