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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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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겨울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3.12.11 11:05
  • 호수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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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남 대치면 상갑리 출신 / 경기도 오마중 교감

두 학년이 한 교실에서 배웠으므로 우리는 이미 3년 전에 배워야 할 노래를 대부분 알고 있었죠. 선생님이 등을 곧게 세우고 앉아 연주하시는 풍금에서는 고운 선율이 흘러나오고 우리는 그 소리에 맞춰 서로 더 잘 부르려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노래를 불렀죠. 어떤 때는 손뼉을 치면서 혹은 발을 구르면서 부르기도 했고 그 노랫소리는 아마도 그 얇은 유리창을 지나 먼 겨울 하늘로 올라갔겠죠.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겨울엔 겨울엔 하얄거예요.’

이 노래를 부르면서 우리들은 아침에 학교에 올 때 마당가에 쌓아 올린 짚 더미에 내린 하얀 눈, 참새 발자국도 하나 없는 그 눈을 생각했죠. 

그 박속같이 새하얀 눈을. 그리고 그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동경하게 되었을 것이고. 가끔 선생님은 풍금을 안 치시고 서서 지휘를 하셨는데 그 손에는 만년필이 들려있었죠.
그 찬란하게 빛나던 만년필은 지성의 상징이고 스승님의 범할 수 없는 위엄이었죠.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때가 되면 집으로 밥을 먹으러 가기도 했으나 겨울에는 학교에서 도시락을 먹었죠. 
노랗고 하얀 양은 도시락은 장작 난로 위에 얹어져 따끈하게 덥혀져 있었고 잘못하면 못 먹을 만큼 까맣게 타기도 했지만 별다른 반찬도 없었으나 배추김치, 장아찌, 생채, 나물무침만으로도 우리는 삽시간에 뚝딱 점심밥 먹기를 마치고 운동장에 나가서 눈싸움을 하고 구슬치기, 자치기, 깡 차기, 리을가이생, 팔자가이생을 했죠. 

얇은 타이어 표 검정 고무신과 허름했던 옷으로 추운 줄도 모르면서. 섬집 아기, 오빠 생각 같은 서글픈 노래는 슬퍼서 좋았고 퐁당퐁당, 꼬마 눈사람 같은 노래는 신이 나서 좋았죠. 산바람 강바람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 했고 고향의 봄은 고향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우리가 사는 이 시골 마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노래였죠.

지금도 졸업식 노래를 들으면 감밭 초등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의 훈화를 듣던 기억과 졸업식 노래를 부르던 장면. 노래의 2절에 있는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를 부를 때는 눈가가 젖어왔고, 졸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던 말씀은 작은 두 주먹을 쥐게 했었죠.
분교 교무실이 있는 새 교실 건물에서는 해마다 졸업식이 끝나면 사은회가 있었죠. 선생님, 부모님, 학생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그러면서 우리는 둥지를 떠나는 새처럼 아쉬움 속에서 새로운 세상으로 향해야 했고.

지금도 미닫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송진 타는 내음이 가득한 후끈한 목조 건물 교실 안에 ‘한겨울에 밀짚모자 꼬마 눈사람’을 손뼉이 얼얼하도록 쳐가며 노래를 부르고 있을 친구들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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