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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몸속에 큰 사랑이 – 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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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몸속에 큰 사랑이 – 콩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3.12.11 11:03
  • 호수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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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 세상 둘러보기

‘쥐눈이콩은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 약으로 사용하면 더 좋다. 신장병을 다스리며 기를 내리어 풍열을 억제하고 혈액 순환을 활발히 하며 독을 푼다’- 『본초강목』

고기 대신 마른멸치, 고춧가루와 고추씨가 들었습니다. 참기름과 마늘을 넣고 지지고 조려냅니다. 큼직큼직하게 썬 두부와 큰 파, 빨강 파랑의 두부두루치기입니다. 아주 오래전의 어느 눈 내리던 날, 대전역 앞 골목 어느 식당에선가 처음 먹었습니다. 콧등에 땀이 맺힐 정도로 매웠지만, 가끔 묘하게 생각나는 음식입니다. 

두부의 주원료 콩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적인 식품입니다. 야생의 들콩으로부터 재배작물로 발달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콩을 재배하였습니다. 콩은 대두(백태‧노란콩), 동부, 완두콩, 서리태(쥐눈이콩), 작두콩, 팥, 녹두, 강낭콩, 병아리콩, 제비콩 등 종류가 많습니다. 흔히 콩이라 하면 대두를 말하지요. 독이 있는 해녀콩도 있습니다. 『시경』(기원전 9세기~기원전 7세기) 에서는 ‘숙(菽)’으로 등장하여 ‘두(豆)’로 변합니다. 팥처럼 알맹이가 작은 콩무리는 소두, 본래의 콩은 대두로 구분하여 부르게 됩니다. 1466년 무렵에 간행된 『구급방언해』에는 ‘콩’이란 이름으로 표기됐습니다. 

콩은 밥에 넣는 것부터 콩나물, 두부, 된장 등의 콩제품으로 많이 먹습니다. 콩 이용 음식은 주로 한자문화권 일대에서 발전하였습니다. 맛은 달지 않으며, 생콩은 비린내가 나고 너무 삶으면 메주 뜬 맛이 납니다. 콩은 트립신이라는 성분이 있어 날것으로 먹으면 소화가 안 되지만 익혀 먹으면 65%가량 소화가 됩니다. 두부로 만들면 95%, 된장은 80% 정도 소화‧흡수가 되지요. 다만 콩에게는 찬 성질이 있어 소화기관이 약하거나 설사를 자주 하는 사람은 조심하여야 합니다.
 

콩은 단백질을 비롯 지방과 탄수화물, 식이섬유와 비타민 등 많은 영양소가 들어있습니다. 체중 감량과 골밀도 증강, 당뇨병 예방, 혈관 질환 예방 등에서 좋은 효과를 나타냅니다. 특히 검은콩 껍질에는 항암(글리시테인)성분이 있습니다. 여성호르몬과 비슷하게 작용하는 성분도 있어 갱년기 증상의 여성에게 콩을 권하기도 합니다. 『동의보감』에서 대두는 울화증을 가라앉히는 데 효과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신경이 날카롭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콩음식을 먹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는 것이죠. 한때는 감옥에서 콩밥을 먹였던 이유가, 콩을 많이 먹으면 여성스러워져 과격함이 사라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콩밥을 먹는다’는 말은 습관적으로 감옥에 간다는 의미를 뜻하기도 합니다. 

장수촌으로 불리는 남미 에콰도르의 한 작은마을은 ‘질병 없는 면역의 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지역 장수 노인들의 건강 묘약은 콩입니다. 모든 주민이 유기농 콩을 주식으로 먹지요. 우리나라도 한 대학에서 장수마을을 조사한 결과, 콩과 마늘을 많이 재배하는 지역에 사는 사람이 오래 산다는 내용이었답니다.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은 ‘장(醬)’ 담그는 솜씨가 뛰어났습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도 “고구려인은 장 담그고 술 빚는 솜씨가 훌륭하다”고 적혀 있답니다. 메주가 문헌에 처음 나온 것은 『삼국사기』에 신라의 신문왕이 왕비를 맞이할 때 보낸 예물 중 ‘시(豉, 메주)’를 보냈다는 내용이 있으며, 혼수품으로 된장이 쓰인 것입니다. 이처럼 콩 발효식품인 된장은 예로부터 귀한 식품으로 여겼습니다. 장은 본래 간장을 말하지만 넓은 의미로 된장, 청국장, 막장, 고추장을 다 포함합니다. 우리의 전통 된장은 세균과 자연계 국균(누룩곰팡이)을 이용해 영양이 많고 구수합니다. 그리고 짭니다. 
 
예전에는 대부분 집에서 청국장을 띄웠습니다. 물에 불린 메주콩(백태)을 물씬하게 끓인 후 짚을 깐 그릇에 담아 아랫목에 놓고는 담요를 덮어놓았습니다. 2~3일 후면 쿰쿰한 냄새를 풍기는 발효식품으로 변합니다. 끈끈한 하얀 실이 생기면서 청국장이 완성되지요. 볏짚은 살균효과와 콩의 발효에 도움을 줍니다. 잘 띄운 청국장에서 볼 수 있는 하얀 실은 글루탐산이 여러 개 합친 것과 과당이 엉긴 것입니다. 청국장은 생(날것)으로 먹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혈전 제거 효과가 크지요. 그렇지 않다면 마늘 등의 갖은 재료를 넣고 끓이다가 마지막에 청국장을 넣고 1~2분 살짝 끓이는 것이 좋습니다. 잘 띄운 청국장은 두부하고도 잘 어울립니다. 

콩으로 만든 음식 중 또 대표적인 것이 두부이지요. 두부의 기원은 2세기 무렵이라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대왕은 중국 명나라에 ‘두부사절단’을 3차례에 걸쳐 파견했답니다. 조선의 두부 만드는 기술이 중국보다 앞섰다는 얘기지요. 옛날 생각이 납니다. 둥그런 번철 앞에 동네 아주머니들과 꼬맹이들 몇 명이 둘러앉았습니다. 번철에는 두툼하게 썬 두부가 기름에 노랗게 지져지고 있습니다. 잘 지져진 두부가 양은쟁반에 올려집니다. 얼릉 두부를 집어 입 안에 넣습니다. 입천장이 홀랑 벗겨집니다. 
 
옛날에는 콩을 논두렁에 심었습니다. 콩대는 병충해로부터 벼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콩을 먹는 해충도 있지만, 고라니나 산토끼도 콩을 엄청 좋아합니다. 토끼 간식용으로 콩잎을 팔 정도였지요. 논두렁의 어린 콩잎은 비둘기에 의해, 가뭄에 의해 하루 만에 잎이 말라 비틀어지기도 합니다. 물을 줘 살아난다 해도 수확량은 확 떨어지지요. ‘가뭄에 콩 나듯이’가 괜한 표현이 아니랍니다. 

눈 내리는 밤, 하양과 빨강의 조화로 두부두루치기 한 번 만들어 보시죠? 눈의 운치와 머릿속까지 맵지만, 은근히 당기는 두부의 맛에 흠뻑 빠지실테니까요. 
    <김현락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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