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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 가는 계절처럼 다디단 살도 깊어 갑니다 – 꽃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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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 가는 계절처럼 다디단 살도 깊어 갑니다 – 꽃게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3.11.14 09:34
  • 호수 1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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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 세상 둘러보기

‘꽃게가 간장 속에/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꿈틀거리다가 더 낮게/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안도현 ‘스며드는 것’ 부분

마름모꼴의 몸통에 다리가 열 개인 절지동물 갑각강 십각목 ‘게’는 맛으로 사랑받습니다. 크고 억세며 가시가 있는 한 쌍의 집게발과 네 쌍의 걷는다리가 있습니다. 뒤집어 보면 하얗고 단단한 꼭지가 배를 덮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배꼽(臍)이라 부릅니다. 암게는 둥글고 넓적하며 수게는 좁고 뾰족합니다. 야행성 육식동물로, 바다 바닥을 기어 다니며 해양생물의 사체를 처리하는 바다의 청소부이기도 합니다. 낮에는 모래 속에 숨어 있다가 밤에 튀어나와 먹이를 잡아먹습니다. 지나가는 작은 물고기를 집게발로 공격하는 것이지요. 불가사리나 문어‧낙지를 잡아먹기도 하고, 반면 그들에게 잡혀 먹히기도 합니다. 

게의 종류로는 박달게(빵게)라 부르는 대게, 우리 조상들에게 친숙했던 참게, 킹크랩으로 더 잘 알려진 왕게, 내장이 고소하고 맛있기로 유명한 털게, 눈자루가 특이한 엽낭게, 가을철 포구를 풍성하게 하는 꽃게 등 우리나라만 해도 이백여 종이 있습니다. 
게는 불에 가열하면 등딱지가 주황으로 변합니다. 겉껍데기에 있는 붉은색‧황색‧녹청색의 색소가 열에 의해 분해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열과 상관없이 등딱지가 빨간 게도 있습니다. 송편을 닮은 주름송편게, 제주 연안에 많은 홍색민꽃게와 톱장절게입니다. 독은 없지만 먹지 않는 게도 있습니다. 말똥냄새가 나는 말똥게와 흙냄새가 나는 도둑게 등이지요.

게는 물 밖으로 나오면 24시간 안에 스스로 죽습니다. 물속 산소로 아가미호흡을 하는 게는, 땅에서 오래 있다 보면 아가미 주위에 거품을 일으킵니다. 숨을 쉴 수 없는 상황에서 입가의 수분이라도 빨아들이려 용을 쓰는 것으로 ‘게거품을 물다’죠. 
게 관련 속담도 있습니다. ‘보름 게는 개도 안 먹는다’, 게는 빛을 싫어해 달이 밝은 보름 전후에는 살이 쫙 빠지며 맛도 없어집니다. 특히 털게인 경우로, 털게는 달빛에 비친 자기 그림자를 보고 놀라 살이 빠져버리기 때문이지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하다’, 몸 밖으로 나온 두 눈이 위험을 느끼면 몸속으로 숨는 동작이 워낙 민첩하여, 음식을 단숨에 먹는 상황을 비유합니다.

겨울을 나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가는 ‘꽃게’의 계절입니다. 꽃게는 한국‧중국‧일본에 분포합니다. 강원도에서는 날개꽃게, 충청도에서는 꽃그이, 어린 시절의 우리는 ‘그이’라고 불렀습니다. 
바다 깊이, 바닥에 무리지어 사는 꽃게는 다른 게들과 다르게 헤엄을 잘 칩니다. 유영지(遊泳肢)라 부르는 납작한 넷째 다리 때문으로, 걷는다리에서 헤엄다리로 변한 것이지요. 생각보다 엄청 빠릅니다. 
 

9~10월에 접어들며 남쪽으로 내려오는 꽃게는 서해안 소흑산도 이남의 모래 속에서 겨울잠을 잡니다. 3월이 되면 겨울잠에서 깨어나 알을 낳기 위해 연안으로 이동하지요. 암꽃게는 알이 4~5월에 가득 차 6~8월에 낳습니다. 어족자원 보호를 위해 7~8월(6.21.~8.20.)은 법적 금어기입니다. 
수꽃게의 시절, 금어기가 끝나면 수꽃게의 살이 차오릅니다. 아무리 그래도 맛은 5~6월의 암꽃게를 최고로 칩니다. 다시마와 청‧홍고추 등으로 담근 간장에 담가 오래 두고 먹는 간장게장 역시 알이 꽉 찬 암꽃게가 최고의 맛을 낸다고 하지요. 가을 수꽃게의 맛도 계절만큼 깊은 맛을 줍니다. 

올가을에는 서해 바닷물의 온도가 높아져 꽃게가 자라기에 좋은 환경으로, 조업에 나선 어선이 늘어나 꽃게 수확량이 많아졌습니다. 꽃게는 물의 온도가 보통 20도는 돼야 자랄 수 있으며, 상품 가치로 키우려면 여러 차례 허물을 벗어야 하므로 양식이 어렵습니다. 사시사철 깨끗한 물이 필요하며, 여차하면 동족을 잡아먹기도 합니다. 본래 꽃게의 수명은 3년을 잡지만, 시중에 유통되는 꽃게는 대부분 1~2년 자란 것이지요. 유난히 큰 꽃게라면, 아마도 3년간 자란 나이 든 게일 것입니다. 

바닷물이 꽉 찼을 때 강준치를 미끼로 넣은 통발을 바닷속에 던졌다가, 물이 다 빠지기 3시간 전부터 통발을 끌어 올리며 꽃게를 잡습니다. 갑장(게의 세로몸통)이 6.4센티미터 이하인 어린 꽃게는 법적으로 잡을 수 없게 금지돼 있습니다. 조류가 빠른 곳에 그물을 던져놓고 물때가 셀 때를 이용해 하루에 1~2회 그물을 올리는 안강망 방식으로 잡는 꽃게는 값이 더 비쌉니다. 서해 깊은 바다에서 잡지만, 뭍에서 가까운 바다에서 잡은 꽃게가 상품입니다. 특히 충남 연안인 태안, 보령, 서천 등에서 잡히는 것이 유명하지요. 서해안에는 알을 낳기 위해 연안으로 이동하는 4~5월과 겨울잠을 자기 위해 남하하는 9~10월, 두 차례 꽃게의 성수기가 형성됩니다. 

전통적으로 ‘게’ 하면 민물게인 참게를 말하지만, 꽃게의 공급량이 많아진 20세기 이후부터 게 하면 ‘꽃게’를 생각합니다. 꽃게의 ‘꽃’은 꽃(花)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곶(串, 꼬챙이)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꽃게의 옛말은 ‘곶게’, 꽃(花)의 옛말 또한 ‘곶’, 꽃게의 한자어는 화해(花蟹), 어느 쪽이 확실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답니다. 『자산어보』에서 정약전(1758~1816)은 곶게(花蟹)로, 『성호사설』에서 이익(1681~1763)은 곶게(串蟹)로 기록하였습니다. 

꽃게는 쪄 먹거나 탕을 끓이거나, 게장을 담거나 양념에 빨갛게 무치거나, 이렇게 저렇게 요리해도 맛이 좋으며 먹기도 좋습니다. 바닷가 사람들은 라면을 끓일 때도 꽃게를 넣지요. 나트륨이 많은 꽃게는 배, 무, 새우 등과 함께 요리하면 나트륨 배출에 효과적이며, 꽃게의 감칠맛을 훨씬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답니다. 

곱던 단풍이 어느 새벽 비바람에 많이 떨어졌습니다. 발등을 덮던 낙엽의 사각거림도 겨울잠에 들려 합니다. 주황색으로 곱게 물든 집게발 한쪽 뚝 뜯어 발통의 흰살을 쪽쪽 빼먹는, 달착지근하고 담백한, 가을도 꽃게맛도 깊어 가는 계절입니다.
<김현락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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