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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 순례자의 섬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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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 순례자의 섬③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3.11.06 16:48
  • 호수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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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 세상 둘러보기
3번 야고보의 집 내부

벼가 노랗게 익은 논길을 따라, 붉은 맨드라미 동산과 코스모스 언덕을 오릅니다. 산기슭에 있는 그리움의 집은 대기점도 마을에서 벗어나 숲속에 있습니다. 3번 ‘야고보의 집’입니다. 예배당을 중앙에 두고 양쪽으로 5개의 붉은 나무 기둥을 지붕과 이어 세웠습니다. 내부에는 비천상이 그려있고, 벽에 뚫은 5개의 사각 구멍으로 붉은빛이 들어옵니다. 거울로 장식된 현관문은 대기점도를 안은 갯벌을, 바다를 끌어들입니다. 

3번 야고보의 집

어부였던 야고보는 예수의 12사도 중 최초의 순교자로, 스페인의 도보 성지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주인공입니다. 야고보가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직후 제자들은 야고보의 시신을 몰래 수습하였습니다. 돌을 깎아 만든 배를 타고 이베리아반도 갈리시아 지방에 정착하여 유해를 매장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8세기경, 밤길을 걷던 주민들은 별빛이 구릉지의 들판을 맴돌며 춤을 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곳을 조사하다 야고보의 무덤을 발견하였지요. 그 후로 이 지역을 ‘빛나는 별들판의 산티아고’라 부르며 성지로 추앙하였답니다. 
고요합니다. 숲속 오두막 작은 예배당을 코스모스는 가렸다 열었다 합니다.

2번 안드레아의 집
2번 안드레아의 집

맨드라미 꽃밭에서, 폐기물 수거함에서, 길가 여기저기에서 고양이를 만납니다. 고양이가 많은 동네의 바닷가, 지붕이 모두 빨강인 대기점도의 노둣길을 내려다보는 낮은 동산에 동화 같은 작은 집이 있습니다. 2번 ‘안드레아의 집’으로 생각의 집입니다. 밀물과 썰물을 해와 달로 여기고, 작은 예배당을 해와 달의 공간으로 나누었습니다. 하늘색 요술램프 모양의 돔 위에는 길고양이가 앉아 있습니다. 30여 년 전, 이 마을은 들쥐로 인해 농사에 피해가 많았습니다. 들쥐를 없애고자 고양이를 섬에 들여와 키우게 된 것이, 지금은 어디서고 볼 수 있는 것처럼 많아진 것이지요. 그렇게 고양이는 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실내의 작은 창으로 노둣길 건너 병풍도가 보입니다. 천장에는 해와 달을, 벽에는 십자가를 숨겨 놓았습니다. 

2번 안드레아의 집
2번 안드레아의 집

안드레아의 집 옆으로 빨강색 지붕의 팔각정이 있습니다. 마루에 누워 반짝이는 은빛 갯벌을 봅니다. 갯벌을 건너면 빨간 맨드라미가 많은 병풍도입니다. 반듯하게 닦아진 노둣길로 자전거를 탄 일행이 들어옵니다. 울긋불긋, 한 사람 두 사람, 밀물처럼 들어옵니다. 파란 하늘이 점점 멀어지며 맨드라미가 피었다 집니다. 잠이 옵니다. 

1번 베드로의 집
1번 베드로의 집

구불구불한 선착로, 대기점도의 선착장이 까마득하게 보입니다. 선착장에는 1번 ‘베드로의 집’, 건강의 집이 있습니다. 어부였던 베드로답게, 그의 이름을 붙인 예배당이 선착장에 있습니다.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8각형 흰색의 건물과 선명한 진청색 둥근 지붕은 화사합니다. 바다와 잘 어울립니다. 화장실과 낮은 종탑, 꽃 그림이 그려진 희고 밝은 내벽, 예쁩니다. 작은 의자에 앉아 벽에 걸린 작은 십자가를 봅니다. 종탑에는 12번 가롯유다의 집처럼 작은종이 있습니다. 순례길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지요.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베드로는 예수에게 묻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위해 로마로 가는 길이라고 예수는 대답합니다. 베드로는 예수 대신 로마로 들어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는 죽임을 당했다고, <베드로 행전>은 전합니다. 

1번 베드로의 집 전경
1번 베드로의 집 전경

건강과 생각과 그리움, 평화, 행복과 감사, 인연과 기쁨, 소원과 칭찬과 사랑, 지혜를 품은 작지만 큰 집이었습니다. 예배당의 작은 실내는 일상에서 놓쳤던 행동과 마음을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느릿느릿 슬금슬금, 언제부턴가 잊혔거나 사라진, 멀어져 간 삶의 메시지를 들여다보게 하였습니다. 멀찍이서 바라봄만으로도, 탐심을 일으키지 않는 것들로 마음을 채우라 전합니다. 자연이 만든 부드러운 길을 걷습니다. 걸멍(걸으며 멍때리기), 먹멍(먹으며 멍때리기), 이제야 헐렁한, 섬에 왔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갯벌, 독특한 새우양식장, 섬과 섬 사이를 마냥 걷는 신비함, 짜잘짜잘 폭폭 짱뚱어와 작은 바닷게(농게·칠게)가 살아가는 소리, 자상한 이정표, 그리고 빨강 지붕, 앙증맞고 독특하고 예쁜 건축물이 주는 특별한 매력, 흰색과 파랑과 주황색만의 풍경으로도 마음은 이미 헐거워집니다.
 
첫 배로 들어가 마지막 배로 나옵니다. 송공항에 짙게 노을이 번질 무렵, 바닷물이 차오릅니다. 
<김현락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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