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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配慮)의 다른 이름 ‘관심(關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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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配慮)의 다른 이름 ‘관심(關心)’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3.10.30 17:05
  • 호수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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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기고 - 유철남 경기도 오마중 교감/ 대치면 상갑리 출신

시골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의 일이다. 집 가까운 곳에는 학교가 없어, 어린 나이부터 읍내에 나가서, 할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유학(遊學)을 하게 되었다. 1학년 가을쯤이었다. 휴일이라서 부모님 곁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아버지께서, 
“닭 한 마리 잡아다가 할머니 약 좀 해 드려라.” 하신다. 

닭장으로 들어가, 제법 토실한 암탉을 하나 잡아, 익숙한 솜씨로 살생(殺生)을 하여, 자전거 뒷자리에 실었다. 큰 고개를 넘고, 개울을 두 번 건너야 하는 험난한 길이었다.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여서, 아직 오르고 내리는 일이 익숙하지 않았다. 더구나 안장이 높아, 누가 뒤에서 잡아주든지, 아니면 페달 옆에다 돌을 놓고, 발로 밀어내고서야 운행을 할 수 있었다. 마을을 벗어나 한참을 가는데, 지나가던 할아버지 한 분이 큰 소리로 부르셨다.

“여보게, 학생!” 얼른 자전거를 멈추어 섰다. / “닭이 죽었네.” 할아버지는 자전거 뒤에 묶여 실려 있는, 닭을 보고 말씀하셨다. 나는 내려와 공손하게 말씀드렸다. / “예! 알고 있어요. 할아버지! 처음부터 죽은 닭이에요.” 
“아! 그런가.” 하시며 지나가셨다. 할아버지께는 고마웠지만, 문제는 자전거에 다시 오르는 일이었다. 한참을 끌고 가니, 다행이도 개울 위에 다리가 나타났다. 하늘이 준 기회, 난간에 올라 발을 올리니, 겨우 안장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참을 가는데 이번에는 밭일을 하시던 아주머니 한 분이 소리치며 오신다. 

“학생! 학생!” 얼른 자전거에서 내렸다. / “예! 아주머니!” / “닭이 죽었어. 닭을 너무 세게 묶은 거 아냐?” 하신다. 
“아녜요. 처음부터 죽은 닭인걸요. 아주머니.” / “아! 죽은 닭을 묶은 거라고!” 하시며 웃으신다. 
그런데 정말 곤란한 일이 생겼다. 이번에는 아무리 주변을 보아도 다리 난간도, 큰 돌도 없다. 하는 수 없이 자전거를 길가에 세워놓고, 디디고 오를만한 물건을 찾았다. 멀찍이 언덕아래 개울가에, 제법 펀펀하고 큰 돌이 있었다. 한참을 들고 굴리고 하여, 큰길로 옮겨 놓고서야, 밟고 안장에 오를 수 있었다. 제법 따가운 날씨에, 검고 두꺼운 겨울 교복은 털옷을 입은 듯이 무겁고 더웠다. 커다란 모자가 내리 누르는 이마에는 연신 땀이 흘렀다. 그 뒤로 그런 분들을 두어 번 더 만났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타고 가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원래부터 죽은 닭이예요.”
“아버지께서 죽은 닭을 주셨어요.” 
읍내에 도착하니, 힘든 일이라도 하고 난 것처럼 온몸은 땀과 먼지에 지쳐있었다. 

올해 추석에도 그 길을 가 보았다. 예전과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길 가 산자락에는 가을 햇살 아래 오리나무, 옻나무 잎이 불그레하게 물들어가고, 명가 잎, 참나무 잎, 감잎이 한가로이 바람을 쐬고 있었다. 그때 일을 떠올렸다. 모두들 ‘좋은 사람들’이었다. 보고서도 못 본 척 스쳐지나갈 일도, 꼭 말을 해주어야 속이 개운한 사람들이었다. 사람이 적어 귀해서이기도 했겠지만,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더욱이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나타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하나 둘 모여들어 살피고, 귀찮을 만큼 묻고 간섭하며 말을 시켰다. 늦은 밤 방물장수가 고개를 못 넘어가고 잠을 청하면, 집 주인은 밥에 주안상까지 차려 내며, 잘 쉬다가 가게 하는 일은, 평범한 일이었다. 

지금 우리가 사는 현대는 빛의 속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심신이 번잡하다보니 남을 돌보기는커녕, 나조차도 잊고 살 때가 허다하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흘러도 관심(關心)을 갖고 보면, 보이는 것이 있다. 지금 내 손길을 기다리는, 어떤 이는 없는가? 나로 하여 아픈 가슴은 없는가? 눈이 시리게 청아(淸雅)한 가을 하늘 아래, 한 번 찬찬히 둘러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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