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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둣길 사색, 마음 갈무리 - 순례자의 섬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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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둣길 사색, 마음 갈무리 - 순례자의 섬②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3.10.30 16:59
  • 호수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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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 세상 둘러보기

아름다운 해변과 노을이 많은 신안의 섬에서, 바다보다는 갯벌을 더 많이 봅니다. 철썩철썩 파도 소리 대신 짜박짜박 뭇 생물의 소리를 더 많이 듣습니다. 갯벌 위로 고요한 바람이 붑니다.

새우양식장의 수차가 물보라를 일으킵니다. 바람 같은 이정표를 보며, 노랑 논길과 노둣길을 걷습니다. 칠게가 겁도 없이 앞장을 서고, 갯벌에서는 짱뚱어가 뻐끔댑니다.

8번 마태오의 집
8번 마태오의 집

소악도와 소기점도 사이, 은회색 갯벌에서 반짝이는 지붕을 봅니다. 8번 ‘마태오의 집’으로 기쁨의 집입니다. 지붕도 황금빛, 계단도 황금빛, 실내도 황금빛입니다.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오는 본래 세무관리였으므로, 어쩌면 그에 걸맞게 황금빛으로 부를 상징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3개의 노란 양파 지붕이 눈부십니다. 지붕의 양파 모양은 섬 주민의 삶과 일상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기점‧소악도의 대표작물인 양파를 표현했다고 합니다. 밀물로 갯벌이 바닷물에 덮이면 황금빛 예배당은 바다 위에 떠 있겠지요. 
노둣길 가운데에서 밀물 때는 바닷물을 맞이하다가 썰물 때는 사람을 맞이하며 기쁨을 줍니다. 앞문에서도 뒷문에서도 보이는 것은 넓은 갯벌뿐입니다. 왜가리 한 마리가 갯벌을 거닐고 있습니다. 

게스트하우스와 식당이 있는 소기점도 입구에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봉사단이 세운 모형표지판이 있습니다. 기점‧소악도는 순례길을 비롯한 섬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에는 서천‧고창‧보성-순천 간 갯벌과 함께 신안갯벌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내용입니다. 

7번 인연의 집
7번 인연의 집

섬 안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반짝이는 별, 우주에 떠 있는 7번 인연의 집 ‘토마스의 집’이 있습니다. 단정한 흰벽에 진청색 창문이 산뜻합니다. 집의 앞마당은 푸른 구슬이 별처럼 박혀있습니다. 각각 크기와 모양이 다른 창이 있는 옆면과 뒷면의 모습은 단순하지만 오래도록 눈길을 끕니다. 실내 바닥에도 크고 작은 보석별이 깔려 있습니다. 겉모습은 유다 타대오의 집과 비슷하지만, 내부는 전혀 다릅니다. 사도 토마스는 의심 많은 제자로 알려졌습니다. 예수의 부활 소식을 들었지만, 믿지 못하다가 며칠 후 직접 눈으로 보고서야 믿었기 때문이랍니다. 의심과 인연, 인연과 의심, 흰색과 짙은 청색의 인연에 대해 생각합니다. 

6번 바르톨로메오의 집1
6번 바르톨로메오의 집1

작은 호수에 작은 예배당이 떠 있습니다. 6번 ‘바르톨로메오의 집’, 다가갈 수 없는 감사의 집입니다. 바르톨로메오는 미장공‧석고 세공인의 수호신으로 상징은 ‘칼’이랍니다. 색유리와 강철로 지어진 예배당의 모습을 비치는 물결이 고요합니다. 저수지의 물을 사흘간 퍼내고 인공섬을 만들며 8개월에 걸려 만든 작품입니다. 밤이 되면 고운 유리에서 은은한 불빛이 흘러나와 환상적인 풍경을 보여줄 듯합니다. 

5번 필립의 집
5번 필립의 집

대기점도 초입에 5번 ‘필립의 집’이 있습니다. 행복의 집입니다. 소기점도쪽 갯벌과 노둣길을 내려보는 언덕에 있습니다. 날카롭게 휘어진 지붕은 하늘로 치솟는 듯합니다. 그 지붕 끝에는 물고기 한 마리가 있습니다. 프랑스 남부에서 온 예술가의 작품으로, 그는 고향의 붉은 벽돌과 대기점도의 자갈로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섬에서 사용했던 돌절구로 동그란 창문을 만들었습니다. 천년을 넘게 사는 나무 적삼목으로 지붕을 썼으며, 물고기 비늘 모양으로 촘촘히 덧댔습니다. 실내는 나무와 벽돌로 지어졌습니다. 검붉은 작은 예배당 옆에 앉아 때때로 눈부신 갯벌과 갯골(물이 빠지는 길)을 봅니다. 금방 한 겹 한 겹 물이 들어오겠지요. 물이 들어오고 노을이 내리는 풍경을 상상합니다. 

4번 요한의 집
4번 요한의 집

갯벌 다음으로 많은 코스모스와 맨드라미를 스쳐 갑니다. 대기점도 남촌마을은 지붕이 모두 빨강입니다. 
바닷가 농로 옆에 첨성대를 닮은 흰색 등대 집이 있습니다. 4번 ‘요한의 집’으로 생명 평화의 집입니다. 원형의 몸통에 긴 바람창이 있습니다. 실내에서 창을 내다보면 대기점도의 맑은 들판과 무덤이 보입니다. 천장에는 고운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있습니다. 실내 바닥에 푸르고 밝은 타일이 깔렸고 벽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꽃을 피웠습니다. 모든 생명체가 태어나고 자라서 꽃을 피우지만, 결국은 창을 통해 보이는 무덤처럼 죽음으로 마무리한다는 것을 표현했습니다. 삶은 죽음과 멀지 않다는 것을 뜻하며, 살아가는 날과 생명을 존중하고 평화롭게 살아가자는 의미가 담겼답니다. 
입구에는 염소 조형물이 있어 요한의 집을 지키듯 합니다. 염소 조형물은 요한의 집을 짓도록 귀한 땅을 내주신 동네 할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입니다. 할아버지가 염소를 키우던 것을 알게 된 예술작가의 배려였지요. 작은 예배당마다 ‘섬’처럼, 아기자기한 얘깃거리로 감흥까지 줍니다. 
    <김현락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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