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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 가을에 읽기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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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 가을에 읽기 좋은 책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3.10.16 15:19
  • 호수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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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숙 / 비봉면

‘슬픈 세상의 기쁜 말’…작가 정혜윤

이 책의 지은이는 라디오 프로듀서다. 이야기를 찾아서 배지근하게 듣고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다. 책을 읽기 전에 작가의 신상을 털게 된다. 잘 모르기 때문에 알고 싶어서다. 
정혜윤 작가를 만나는 첫 책이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은 누군가를 지칭하는 말이다. 무엇을 통칭하는 숫자들의 모호성에 의문을 가졌고,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세상이 우리의 이름과 고유성을 지울수록 자신의 고유성, 내면에 살아 있는 뭔가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에서 우리는 내 자신의 말을 갖기란 쉽지 않다. 작가는 자신의 단어를 찾으려면 마음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것은 삶이며 내 유전적 요소가 되고 내가 그렇게 살기로 한 여러 가지 약속들이 나의 이야기가 될 때” 말은 작가의 말처럼 영혼에 새겨져 있다고 말할 때 품위 있는 삶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보르헤르(아르헨티나의 소설가·시인·평론가)의 말을 빌려 “우리의 의무는 우리의 말을 찾는 것이고 단어를 찾는 것은 부적과도 같은 힘을 준다.” 우리는 말을 하므로 그 말에 책임을 지고 그렇게 살려는 약속과 같고, 약속은 살아 숨 쉬는 호흡과도 같은 것이다. ‘한 사람의 좋은 이야기는 모두의 이야기가 되고 각인되고 남아서 자아를 바꾼다.’고 말한다. 
평범한 한 사람의 어부 이야기를 읽으며 고단한 삶에 행복이 온 것은, 그의 생각과 언어가 그의 삶을 이루며 단단한 내면을 이루어 냈기 때문이다. 늦게 한글을 익히며 세상에 관심사가 생긴 할머니의 이야기, 자폐아들을 보살피는 아버지 이야기,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 딸을 잃은 어머니의 이야기, 9·11테러, 돌고래, 거북이, 새, 나무, 꽃, 작가는 뭉뚱그려진 어떤 것 중에 의미를 주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게(읽는) 들었던 이야기도 배지근하게 들려주는 힘을 갖고 있다. 자신만의 향기까지 만들어 뿜어 주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졌다. 배지근하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으며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들과 다른 분위기로 배지근하게 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사용언어가 나의 것이 아닌 것 같아 말을 다물곤 했었던 상황들이 떠올랐다. 아마도 부정적 의미다. 내 주변을 빛내는 말을 해야겠다. 나의 말이 나와 약속이 되고 삶의 방향이 되고 좋은 이야기가 되고 힘을 갖기를 바란다. 더위가 낮은 공기를 섞어 계절을 바꿀 때, 푸르름이 색깔을 바꾸고 소란한 생명의 부르짖음이 사그라들고, 하늘은 높고 주변이 고요해지는 오후, 선선한 계절에 ‘슬픈 세상에 기쁜 말’ 속의 이야기들을 겨드랑이에 끼고 자전거 바퀴를 굴리며 가로수 길을 달려 보고 싶다.
                                                                 
※배지근하다: 제주도 사투리로 어떤 말이 귀에 쏘옥 들어온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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