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5:03 (수)
갯벌이었기 때문에 갯벌이라 불러줘야죠 - 수라
상태바
갯벌이었기 때문에 갯벌이라 불러줘야죠 - 수라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3.10.16 15:12
  • 호수 15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짬 - 세상 둘러보기

사라져가는 아름다움을 기억하는 이들의 기록 영화 ‘수라’의 갯벌에 왔습니다. 푸른 새벽에 거대한 분홍색 달이 뜨던 갯벌이었습니다. 수천 마리 도요새가 갯벌을 거닐다 웅장한 비행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집게발을 부딪치며 놀던 작은 게들의 놀이터였습니다. 쇠제비갈매기 아기새가 알을 깨고 나와 맑은눈을 껌뻑이며 처음 맞는 세상이었습니다. 

갯벌, 바닷물이 드나드는 바닷가의 너른 벌판으로 진흙이 쌓인 해안 습지입니다. 바다의 평편하고 물의 흐름이 완만한 곳에 여러 종류의 퇴적물이 내려앉으며 갯벌이 만들어집니다. 퇴적물이 진흙으로 된 펄갯벌, 모래로 된 모래갯벌, 진흙과 모래와 작은 돌 등이 섞인 혼합갯벌이 있습니다. 
고요하고 평화롭게 보이는 갯벌은, 수백 종이 넘는 생물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조개류와 두족류(낙지)의 주 서식 장소이며 물고기의 어장이자 많은 생명이 살아가는 터전입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갯벌은 서울 면적의 6배 정도입니다. 그중 83%가 서해안에 분포하며 202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갯벌은 탄소 중립을 위한 해양생태계 탄소흡수원으로의 역할을 합니다. 염습지의 탄소 흡수능력은 숲의 50배에 이르지요.

왜가리와 도요새 발자국
왜가리와 도요새 발자국

전북 부안의 해평갯벌, 만경강 하구의 계화도갯벌, 군산의 수라갯벌은 총34킬로미터에 이르는 새만금을 구성합니다. “해평‧계화도 갯벌은 매립작업이 완전히 끝났지만, 수라 갯벌은 아직 완전한 매립이 끝나지 않아 바닷물만 유통된다면 다시 예전의 기름진 갯벌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본 것이 죄라서 영화 ‘수라’를 만들고 보이고 느끼게 하는 황윤감독은 말했습니다.
 
‘비단에 놓은 수’ 수라, 수라갯벌은 군산 미군기지 근처에 있습니다. 새만금 간척사업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군산에 하나 남은 갯벌이자 연안습지입니다. 새만금 신공항 사업이 추진된다는 노란 팻말이 회색빛 물속에 드문드문 꽂혀있습니다. 
질퍽하지만 부드러운 개흙은 발바닥을 편안하게 합니다. 얕은 물길을 자박자박 걷습니다. 먼발치에서 뿌옇게 보였던 물이 얼마나 맑은지, 물속 개흙이 물결에 흔들리는 것까지 훤히 보입니다. 간척사업으로 새들은 떠났지만, 아직 남은 새들이 있고, 염습지에는 분홍색 꽃이 피었습니다. 들쑥날쑥 펄을 뚫고 나온 조그만 칠게도 있습니다.
 

수라갯벌의 민물가마우지
수라갯벌의 민물가마우지

갯벌은 말라가고 있지만, 여전히 새들의 안식처입니다. 멀리, 물가에 민물가마우지들이 빽빽하게 있습니다. 질퍽한 개흙 위에 도요새의 발자국과 왜가리의 발자국이 문양을 새겼습니다. 한판 춤사위라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삯과 고라니, 수달의 발자국을 따라 걸어봅니다. 개흙의 갈라진 실금 위에 노란색 조그만 게가 화석이 되었습니다. 갯벌의 고요를 깨고 멀리서부터 민물가마우지가 가늘고 긴 검은 줄을 만들며 날아옵니다. 머리 위를 지나 북으로 북으로 멀어집니다. 

뉴질랜드에서 알래스카까지 날아가는 긴 여정의 철새들에게 한국의 갯벌은 피곤한 몸을 회복시키는 곳입니다. 가장 긴 비행을 하며 봄·가을에 한국을 지나가는 나그네새 큰뒷부리도요도 뉴질랜드에서 비행을 시작합니다. 금강하구 유부도에 며칠 머문 후 다시 하늘의 길로 나서지요. 간척사업을 하기 전에는 도요새의 중간 쉼터가 새만금 갯벌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살던 옛 어르신들은 도요새가 오면 봄이라는 것을, 기러기가 보이면 겨울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시 수라갯벌에 새들이 옵니다. 파도 없는 흙탕물의 바다임에도 황새가 왔고, 가장 멀리 꿈꾸는 새 도요새가 왔습니다. 살아있는 모래갯벌, 수라갯벌의 물끝선(해수가 갯벌과 만나는 곳)에도 저어새가 왔습니다.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은 구역에서도 쇠제비갈매기와 뭇 새들이 알을 낳고 새끼를 키웁니다. 붉은 해홍나물, 분홍색으로 변해가는 칠면초와 익어가는 갈대, 무성한 염생식물이 무더기무더기 자랍니다. 법정보호종 동물도 40종 이상 확인되었습니다. 멸종위기종으로 2012년에 지정된 흰발농게의 부활(?)은 환경단체로부터 ‘새만금 신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 취소 소송’을 내게 한 계기가 되었지요. 

수라갯벌의 흰발농게. 영화 수라의 황윤 감독 제공
수라갯벌의 흰발농게. 영화 수라의 황윤 감독 제공

온갖 조개와 생물이 넘쳤고 금빛모래가 반짝였던 갯벌은, 예전처럼 바다를 원하고 있습니다. 저어새와 검은머리갈매기, 검은머리물떼새, 도요새의 보금자리가 되기를 바랄 뿐이지요. 새들의 귀한 집, 수많은 생명체로 가득 찬 갯벌이길 기다릴 뿐입니다. 빗물이 바닷물인 줄 알고 나왔다가 입을 벌린 채로 죽은 조개 대신, 흰색의 몸 검고 긴 다리 검은색 가면을 쓴 모습으로 둥글납작한 주걱 같은 검은 부리를 얕은 물 속에 넣고 좌우로 젖는 저어새의 모습이 보고 싶은 것이지요. 

농게와 꿩과 흰뺨검둥오리와 알락꼬리마도요 도요물떼새가 살아가는 부드러운 땅, 머리 위로 도요새 수만 마리가 춤추던 모습을 본 사람들, 황홀했으며 경이로웠던 그 순간을 아직 버릴 수 없는 사람들은 오늘도 꿈을 꿉니다. 10년 동안 갯벌에서 바닷물을 기다렸던 흰발농게처럼, 20여 년 갯벌을 포기하지 않은 조사단처럼, 기다립니다. 바다가, 갯벌이, 돌아오기를.
    <김현락 편집주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