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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은 청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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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은 청양인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3.10.16 11:49
  • 호수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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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은 밥 먹듯이, 마음은 평온하게 - 조한익 의 오래 사는 법

‘~//세파에 시달려 잊고 살았다면/오늘 100주년에 모교에 용서를 빌고/가르침을 새롭게 기억합시다//‘남양초등학교’/그 아름다운 이름을 우리 가슴에/따뜻하게 간직합시다.’- ‘평온하고 따뜻한 우리들의 성지’, 2023년 남양초 100주년 기념축사 부분

‘골골팔십’에서 ‘구구팔팔일이삼사’로, 문명이 시작되면서부터 인간은 불멸을 꿈꾸고 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지난 7월,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6세로 발표됐습니다. 현대인의 관심은 단순히 생명 연장이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게’ 오래 살 것인가입니다. ‘한국건강관리협회’ 중앙검사본부 조한익(1943~) 원장님은 건강수명 120세 시대를 꿈꿉니다. 벌초 차 고향에 들른 원장님과 남양면 봉암리 찻집에서 굵고 맑은 빗소리를 들었습니다. 

조한익 원장
조한익 원장

“한국건강관리협회에서 하는 일은 건강검진을 통한 건강증진으로 건강수명을 늘리는 것이지요. 더 좋은 방법과 더 세밀한 기준의 건강검진으로 몸의 위험요소를 찾아내 생활 습관을 바꾸게 하고, 건강에 대한 스스로의 관리능력을 키워 자신의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건강증진입니다.” 
 
100‧120‧150세의 시대 
“2015년, 건강수명 목표를 100세로 할 때였는데, 당시 105~6세의 사람이 많았어요. 그래서 120세로 한 거죠. 젊은 직원이 근거가 뭐냐 물어요. 사실 세계에서 120세로 건강수명을 얘기한 사람은 없어요. 그러나 생명체는 대략 자기가 자라는 것의 6배를 살죠. 우리가 20세까지 자라면 6배인 120세까지 살 수 있다는 상상이죠. 당시만 해도 100세 이상 노인이 1,200명 정도였었고 최장수노인이 119살, 116살이었습니다. 충분히 120세까지 살 수 있다는 것은 아니고 목표를 120세까지로 하자는 거죠. 지금은 100세 노인이 5~6천 명 이상입니다. 우리 어머니도 102세십니다. 물론 치매 기운은 있으시지만요(웃음).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의 장수전문교수(분자생물학 이현숙)는, 인간은 150세까지 살 수 있다고 해요. 우리 몸 끝에 달려 있는 염색체의 텔로미어가 늙으면 짧아지는데, 그것을 짧아지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쥐 실험에서 수명을 늘렸고, 그걸 사람에게 대입했더니 150세까지 살 수 있다는 거죠.”

“10대부터 건강관리를 하면 120세까지 무난하게 살 수 있습니다. 건강수명은 본래 사는 것보다 7~8년을 빼야 합니다. 최소한 5년은 환자로 사는 격이죠. 20세부터 건강관리를 해야 하지만, 늦어도 40대부터는 해야 90~100세까지 살 수 있어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걷는 것만큼 좋은 운동은 없습니다. ‘운동화 신기 운동’, 서울대학 외과병원 박재갑교수가 국립암센터원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전 직원에게 운동화를 선물했다는 얘길 듣고, 저도 전 직원에게 운동화를 선물했지요. 굉장히들 좋아했고, 그렇게 걷기가 생활화됐어요. 최소한 매일 4천 보 이상은 걸어야 합니다. 매일 6천~8천 보를 걸으면 아주 좋죠. 걷는 운동은 많은 걸 해결합니다. 자발적 보건정책으로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고, 건강효과로 건강수명을 연장하며 의료비를 절감합니다. 걷기를 측정하는 ‘만보기’는 일본 사람들이 만들었고. 오래 살려면 매일 1만 보를 걸어야 한다며 시작한 것이지만, ‘만보’설의 근거는 미약합니다.”
“담배는 많은 발암물질을 가지고 있어 금연이 최선입니다. 운 나쁘게 흡연을 시작하셨다면 늦어도 40대부터는 금연해야 합니다. 수명이 늘어난 이유 중 첫째가 금연이고 두 번째가 금주거든요.” 
 
미루나무 소년과 고향
“10살 때 남양 봉암리마을에 홍역이 돌았어요. 8살 여동생과 6살 남동생, 또 4살 여동생, 그 밑에 남동생, 5남매가 홍역에 걸렸고 심하게 앓았죠. 누워서 동생 둘이 홍역으로 목숨을 잃는 것을 봤어요. 전염병이 무섭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의과대학에서는 혈액을 전공하려는데, 원로교수가 세균을 하라는 거예요. 세균을 하려면 임상병리를 해야 했는데, 결국은 임상병리안에서 진단혈액학을 한 거죠. 똑똑한 후배가 들어와서 세균 업무를 맡겼죠(웃음).”
“아버지가 결핵으로 고생하셨고 그걸로 돌아가셨어요. 한의사였지만 편찮으셔서 초등학생 때부터 제가 한약재료를 관리했어요. 약뿌리를 썰고 봉지에 담아 매달고 말리는 작업을 많이 했죠. 고3 때, 여기 갈까 저기 갈까 하다가…. 그때는 한의대는 없었고 동양한의대라는 학교가 있었지만, 한의사가 될 생각은 없었어요. 의대 진학이란 순간의 결정이 군의관 제대까지 15년간 고생만 직사게 했죠(웃음).” 

“공주중학교에 입학했는데 하숙비를 대기가 힘들다는 집안 사정을 듣고 1학기 마치고 청양중학교로 전학을 왔어요. 그때 하숙집 옆방에 서울법대 졸업하고 고시공부하던 내종숙 아저씨가 있었는데, 한 달에 한 번 정도 보는 얼굴이 하얬어요. 몇 번 도전 끝에 고시에 합격하여 나중에는 대법관까지 하셨지요. 저도 사실은 법대에 들어가 속전속결을 생각했는데, 그 아저씨의 파리했던 모습이 떠올라 ‘절대 안 되겠다’하고 의사를 택했죠(웃음).”

“나래미 앞 조그만 냇물, 지금은 봉암천이라 부르더군요. 그 개천의 돌 밑에 어떤 고기가 있는지 다 알았어요. 학교에서 오면 냇가에 가서 물고기를 잡았죠. 옛날에는 고기가 많았어요. 무‧배추를 뽑고 난 가을밭은 큰 운동장이었죠. 늦은 밤까지 자치기와 딱지치기를 하고…. 들판 건너 고개 넘어 학교엘 갔고, 구봉산 밑에서 많은 걸 배웠던 것 같아요.” 
“오늘 청양에서 오다 보니, 지천가에 미루나무를 쭉 심었더라구요. 예전에는 남양에서 청양중학교 가는 찻길가에 미루나무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다 베어버렸더군요. 요아래 마당가에도 미루나무가 있었어요. 초2~3학년 땐가, 한창 노는데 아버지가 딱 나타나서 아무 소리 없이 미루나무 잔가지를 꺾어 회초리로 쓰셨어요. 그때 미루나무가 얼마나 밉던지(웃음). 이번 가을에 다시 와서 지천의 미루나무 단풍색이 어떤지 보려구요. 노랗게 물드는 미루나무가 아름다웠고, 그 영상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지천가의 미루나무를 보니 얼마나 반갑던지….”
 
하고 싶었던 것, 그래도 하고 싶은 것   
“책을 읽으면서 남의 생각을 훔쳐보는 것?” 
-그건 취미 같은데요(웃음).
“취민가요?(웃음) 여러 가지 취미가 될 만한 것에 손을 대보았는데, 결론은 뭐든지 ‘잘하지 못한다’예요. 소질이 없어요. 잘해서 뭔가 잘돼야 하고 싶지, 잘못하니 하고 싶지도 않거든요. (한참 후)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은, 일본어를 다시 시작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서양문화의 영향을 풍부하게 받은 일본문화를 배우고 싶어서 일본에 수도 없이 가 봤죠. 그중에서도 일본의 문학작품을 읽고 싶어 일본어학원에 15번 정도는 등록했을 거예요. 매번 두 달 이상 지속하지 못하고, 시작하면 까먹고 또 시작하고를 반복만 한 거죠(웃음).” 
 
“초등학교 6학년 때 방학숙제로 작문을 써냈는데 1등을 했어요. 그중에 제 친한 친구가 쓴 ‘소나기’란 글을 선생님이 읽어주면서, 이건 아무리 읽어도 쟤(친구)가 쓴 것이 아니라 어디서 베껴온 거라고 하는 거예요. 제가 들어도 정말 잘 썼더라구요. 나중에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그래 내가 썼어” 그래요. 그래서 그 뒤로는 글 쓴다고 안 했습니다(웃음).”
 “고3 때 몸이 불편해 1달간 시골에서 지냈는데, 내가 있던 집에 <삼중당문고>가 쫙 꽂혀 있었어요.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때로는 밤을 꼬박 새워가며 읽었지요. 입학시험 공부는 안 하고 36권인가 그걸 다 읽었더라구요. 당시 대학입시에 작문이 있다는 걸 시험지를 받아보고 알았어요. 4절지에 썼는데 내가 읽어봐도 정말 잘 썼더라고요. 나중에 사람들이 ‘쟤 서울의대를 어떻게 들어갔냐?’ 하는 거예요. 속으로 ‘작문 실력 때문에 합격했다’그랬죠(웃음).”

“사실 전 요새 모든 초점을 상호작용(相互作用,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처 작용하게 하는 것)에 두고 있는데, 상호작용이라는 큰 힘이 모든 걸 관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점점 하게 됩니다. 물리‧사회‧정치‧수학 등등 내가 다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런 분야의 사람들과 사회학적 상호작용에 대한 대규모 회의를 통해 책을 한 권 만들고 싶은데 완전히 능력부족입니다(웃음).”

도서 친화 도시, 생태학의 보고
“한때의 꿈이었죠. ‘책 버릴 사람은 다 청양에다 버려라!’, 칠갑산 구석구석에 책 창고가 있으면 사람들이 모일 것 아녜요? 청양의 특성을 살리고, 버려지는 수많은 책을 모아서 청양에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싶었던 거죠. 저도 집에 있는 책을 버려야 할 텐데 버릴 곳이 없어요. 그러니 버릴 때 한 번 오고, 또 책을 빌릴 때, 반납할 때, 찾을 때 한 번씩 오는, 그런 공동체를 꾸리고 싶었던 거죠. 아직도 그 마음은 있는데, 돈이 없어서(웃음).”
“정년퇴임하면 지천의 생태학을 꼭 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지요. 기초적인 물 깊이부터 지질과 식물, 물고기와 곤충 등의 생활상 변화와 특성을 자세하게 살펴놓으면 외지의 전문가들이 그 자체를 공부하러 와 지천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는 거죠. 지천을 살려 청양의 자랑거리로 만들 방법, 금강과 연결해 생태학을 집대성하고 생태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성지처럼 만들어 보는 꿈을 꾼 때가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의학이라는 전문분야에 매여 지천생태 연구는 그냥 꿈으로만 끝내는 것이 아쉽지요.” 
-지난 4월 남양초100주년 기념축사 중 친절‧오만‧성실‧마음씨‧영혼에 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후배들에게 가장 강조하고 싶은 단어는 무엇인가요?
“‘오만’, 오만하지 말라죠. 되돌아보면 많은 실패, 성과를 못 냈다거나 일이 안 풀린 것의 원인을 보면 다 오만했기 때문이었죠. 마음속의 오만은 일을 그르치고 실수의 원인이 됩니다. 오만하면 새로운 지식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모르면 질문을 하게 되는데, 잘 정리된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사실 그것이 겸손이구요. 뭔가 부족해서 후회되는 것들을 보면 ‘아 그때 내가 오만했구나’예요. 편견도 오만 때문에 나타나죠. 오만하지 않고 내가 가진 편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엿보는 것이죠.” 
“책에서 받은 영향이 가장 큽니다. 요즘 사회과학분야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데 어렵네요. 감명받았다기보다 유일하게 2번 읽은 책이 있는데, 학창 시절 『유리알 유희』(헤르만헤세)였어요. 지금 생각나는 것은 주인공 이름 ‘요제프’밖에는 없네요(웃음). 그때는 정말 심취해서 읽었지요.”
 
똑똑한 의사보다는 좋은 의사 
“대표적으로 불친절한 곳이 병원이거든요. 학생 때 30대 의사가 70대 노인환자들한테 하는 걸 보고 ‘저래도 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사 입장에서는 뻔한 걸 자꾸 물으니 그랬겠지만, 그래도 참고 요령 있게 말을 해야 하는데 그런걸 못하는 거죠. 인턴을 하면서 환자를 보는데, ‘내가 할 짓이 아니구나’ 걱정됐어요. 어려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사람들하고 대화하는 것은 배우지 못했지요. 집에서는 말할 사람이 없었고, 읽을거리는 일본어책과 교과서밖에 없었거든요. 고등학교 때 정말 못하는 것이 애들하고 말하는 거였어요. 더구나 일과 공부에 치인 외골수라, 환자한테 웃으면서 말하고 설명하는 일은 못하겠더라구요. 환자 안 보는 과 없나? 방법이 뭐냐? 방사선과, 마취과, 병리를 할까 궁리하다…, 처음엔 후회도 많이 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잘했어요 (웃음).” 
 
-오래 사는 가장 확실한 방법, 원장님만의 비법을 살짝 알려주시죠? 
“건강이 제일 중요하죠. 운동과 마음을 평온하게 갖는 것입니다. 청양은 여러 면에서 평온합니다. 평온한 마음을 갖기 위해 환경 자체가 평온한 청양을 사랑하는 겁니다. 청양과 연관된 것 자체만으로도, 청양에서 산다는 것만으로도 자긍심을 갖고 살면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본인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죠. 그러면 건강의 가장 기초적인 토대가 마련된 것입니다.” 
“개인들의 모든 의료 정보를 보험공단에서 통합관리를 하려 했으나 안 됐어요. 개인의 의료정보는 노출되면 안 되므로 통합을 시킬 수가 없는 것이죠. 가장 안전한 것은 건강검진을 한 곳에서 꾸준히 받는 것입니다. 그래야 몸이 변화되는 것을 추적할 수가 있어요. 건강검진데이터를 보면 30대는 거의 괜찮고, 40대에 점점 나빠져요. 50대에는 많은 사람의 혈액에 문제가 생기죠.” 

“건강 지키기 위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을 빼 먹었네요.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받아 건강위험요소와 질병을 조기 발견하여 치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어야….” 
빗길이지만 서울에 잘 도착했다며, 문자를 보내셨습니다. 문학에 대한 열정이, 고향을 생각하는 큰마음이 넉배(정좌리 앞 냇물)를 아름답게 하는 미루나무 같습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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