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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콩트 - 흑토끼 해 추석엔 흑송편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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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콩트 - 흑토끼 해 추석엔 흑송편이 어때요?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3.09.25 13:43
  • 호수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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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집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화성면 화암리 출신)

“여보! 난 직장인들이 월급생활을 할 때만 보너스를 받는 줄 알았더니, 올해엔 우리나라 온 국민이 보너스를 받게 됐네유!”
그토록 한증막처럼 무덥던 장마도 천지를 뒤집던 태풍도 물러가고, 9월도 하순을 지나자 앞뒤 베란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벌써 썬득한 가을바람이 드나드는 요즘인데 아침식사를 마친 마누라가 나에게 건네오는 말이었다.

“에잉? 갑자기 온 국민이 보너스를 받다니? 그게 뭔 소리여?”
이에 내가 의아하여 마누라를 바라보며 묻자, 주방 벽에 걸린 달력을 가리키며 이런 대꾸를 해왔던 것이다. 
“아유! 민족의 최대 명절인 올 추석두 어느새 며칠 후루 다가왔잖유? 근디 추석 연휴 3일에 일요일이 붙구, 담담 날 3일이 개천절 공휴일이 되자, 대통령이 월요일인 2일을 추석 연휴로 늘려서, 국민 소비 진작에 기여해달라는 뜻이라지만, 암튼 명절 보너스로 6일이나 쉬게 되었으니 내 말이 틀리지 않찮유? !”

마누라의 이런 긴 설명을 들으며 나도 고개를 끄덕였는데, 아닌게 아니라 우리나라에 주5일제가 시행되자 하루 쉬고 하루 논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흑토끼의 해인 올해 추석은 벌써부터 즐거운데, 어째서 옛날 어린 시절처럼 눈이 빠지게 기다려지던 추석 명절이 아닌지 그게 아쉽다고나 할까?

“아유! 근디 아무리 추석 연휴가 늘어나면 뭣 헌대유? 젊어선 고향 가는 설레임이 있었는디, 이젠 장가도 못간 환갑 조카가 고향을 지킬 뿐이니, 고향에 가서 추석을 쇤 지가 언젠지 모르겠네유.”
“으음! 그래두 한 10년 전만 해두 우리 6형제가 추석과 설 명절엔 우리 집에 다 같이 모여 푸짐한 명절을 쇴는디, 그 후론 각자 자기 집에서 따루 명절을 보낸께 도무지 명절 같지 않단 말이여!”

“누가 아니래유? 이젠 추석이나 설같은 명절이 오면 아들딸네 부부만 아침에 삐쭉 와서 송편이나 떡국을 먹군, 즈이들 처갓집이나 시집으로 뺑손이치니 우리 부부는 명절날이 홀로데이가 됐지!”
“여보! 그러니 올 추석은 6일이나 된께 아들 딸네 다 불러 본격적으로 한번 추석 명절을 쇠어봅시다!”

“뭐여? 워떻게 추석을 쇠어보자는게여?” 
“우선 추석하면 송편을 만드는게 제일 큰일이잖유? 그렁께 우리 직계 여섯 식구가 다 모여 <송편만들기 경연대회>를 벌여보잔 말유! 당신이 상금 좀 내놔서...!”
“으음! 그거 좋은 아이디어네! 그리 한번 해봅시다!”
이리하여 올해엔 추석의 상징인 <송편만들기 경연대회>를 펼쳤는데, 딸사위가 금년은 흑토끼 해인만큼 흑토끼 송편을 만든다며 검은 참깨가루를 넣어 송편떡살을 만들어 토끼 형상의 송편을 만들어서 대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와아! 그래! 기발난 아이디어 송편이다. 맨날 하얀 반달송만 먹다가 흑토끼 해에 토끼 형상의 송편을 맛보니 색다른 추석 기분이 드는구나!”

그리하여 우리 식구는 올해에 아주 특별한 추석을 쇠게 되었는데, 순간 나에게는 어려서 내 고향 청양에 살 때 추석을 보냈던 추억이 떠올랐다.
“얘들아! 이것들이 추석날두 늦잠이여? 어이 일어나 세수하구 추석빔 갈아 입구 추석 차례 지낼 준비를 허여!”

어머니의 꾸중에 우리 형제들은 이 방 저 방에서 슬금슬금 나와 세수하고 추석빔을 갈아입으면, 모두 안방에 모여 차롓상에 절하고 밤과 대추 같은 과일을 음복하는데, 특히 곶감과 청양장에서 사 온 오색 넓적 사탕이 왜 그리도 달콤하던지 호랑(호주머니)에 넣어 두고 먹다가 녹아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던 것이다.
“얘들아 화암학교에서 <화성면민 씨름대회>가 열린디야! 구경 가자!”

그래서 동네 동무들과 가 본 씨름대회엔 각 동네마다 대표 씨름꾼이 뽑혀 나와 모래바탕에서 씨름을 했는데, 우리들은 응원을 하면서도 관심은 터질 듯 꽉 조이는 빤쓰를 입은 씨름선수의 거시기가 가끔씩 튀어나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이고! 황소 불X이 따루 없구, 말 X지가 저리가라네! 하하! 아따! 다른 건 따질 것 없이 젤  큰 눔이 이겨라!”

그래서 이런 짓궂은 응원을 하기도 했는데, 궂이 이를 구경하러 온 처녀들도 있어서 씨름판은 더욱 흥분에 넘쳤다고나 할까? 그리고 저녁 때엔 풍장꾼들이 새납을 부는 아저씨를 선두로 꽹과리 북 장구잡이가 줄을 지어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면, 애들은 그 뒤를 따라 춤을 추기도 했던 것이다. 이처럼 신명나고 푸짐했던 옛날의 추석 추억에 잠겼는데 마누라가 나에게 한마디 건네왔다.   

“여보! 근디 당신 올해엔 추석 명절에 쓰라고 돈을 적게 내놓은 것 아슈?”
“에잉? 뭐여? 그저 예편네들은 추석 명절에두 돈타령이지!”
“글쎄유! 나라에서 추석 명절에 휴일 보너스만 주지 말구, 추석 명절 잘 쇠라구 전국민 명절 보너스두 좀 주면 워떨까유? 헤헤헤!”

<작가소개>
화성면 출신으로 고려대학교 국문과 졸업. 1971년 창작집 <머리가 없는 사람>으로 등단. 저서 <통일절> 외 35권. <헤르만 헷세 문학상> 등 16개 수상.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방송작가와 작사가로도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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