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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천강 따라, 서강 따라 100리길 - 영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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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천강 따라, 서강 따라 100리길 - 영월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3.09.25 11:08
  • 호수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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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 세상 둘러보기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살아가고/옳으면 옳거니, 그르면 그르거니 하고/~/세상만사 내 마음대로 안 되니/그렇고 그른 세상 그런대로 살아가세’ -김삿갓 ‘죽시(竹詩)’ 부분

붉어지는 수숫대가 멀어집니다. 옥수수와 메밀전도 멀어집니다. 외씨버선길, 김삿갓계곡의 맑은 물이 하늘빛 물보라를 만듭니다. 
김삿갓(김병연, 1807~1863)은 홍경래에게 항복한 김익순을 비판하는 글을 써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스무 살 무렵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것을 알고는 조상을 욕보였다 자책하고 벼슬을 버립니다. 스스로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합니다. 삿갓을 쓰고 대나무지팡이를 짚으며 30여 년간 방랑 생활을 합니다. 그 행색에 ‘김삿갓·김립(笠)’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지요. 조선팔도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각지에 즉흥시를 남깁니다. 

견고한 한시의 형식을 깨뜨리며, 19세기의 시대상을 보여줍니다. 세상을 날카롭게 관찰하고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하여 조롱하며, 위선자들을 비꼬는 시를 씁니다. 친절한 사람을 만나면 고마운 마음을, 쌀쌀맞은 사람을 만나면 비판하는 시를 짓습니다. 민중이 사랑하는 일상적인 사물과 용어로 웃기면서 품위가 있는 독특한 시를 씁니다. 여러 명승지에 대한 느낌과 감탄도 시에 담았습니다. 백성들은 그의 시를 읽고 많은 위로를 받고 힘을 냈으며, ‘민중시인’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드문드문 삿갓 모양이 스쳐 갑니다. ‘조선민화박물관’에는 삐딱한 얼굴의 호랑이가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말이 호랑이지 눈 큰 고양이인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이 ‘어변성룡도’를 보세요. 통통한 물고기가 구름 속에 숨겨진 파란 여의주를 올려보지요?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되는 그림으로 과거급제와 입신출세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흔히 민화라 하면 정통화에서 벗어난 이름 없는 화가가 그린 서민들만의 그림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왕실부터 사대부나 여염집의 벽장문까지 두루 걸렸던 우리의 정통그림이며 생활문화였던 것이지요.” 전문해설가가 있어 민화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민화(民畵)는 우리만의 모습으로 우리만이 그려낸, 우리의 고유그림입니다. 서민 화가들이 서민 취향으로 그렸지만, 임금을 비롯한 모두가 즐긴 만만한 그림이지요. 전통 회화를 모방하면서 시작된 민화는 민속적인 관습에 따라 그린 실용화로 생활공간의 장식적인 용도로 많이 쓰였습니다. 조선 후기에 서민층에서 유행하였으며, 속화(俗畫, 속되거나 저속한 그림)라 하여 일반 가정집의 병풍이나 족자로 벽에 붙였습니다. 우리 민족의 미의식과 정감을 눈에 보이게 표현한 진정한 의미의 민족화로 보는 경향도 있어, ‘겨레그림’으로 부르자는 민화연구자들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민화는 현세적인 염원을 주제로 다양한 내용을 그렸습니다. 서민들의 일상생활과 관습 등에 바탕을 두었지만, 화조도나 설화도 십장생도 등 일정한 형식인 것도 특징입니다. 우리 전통의 오방색(노랑‧파랑‧하양‧빨강‧검정)이 어우러진 뜻그림으로 선조들의 꿈과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진하고 강하게 색을 칠하고, 과장하며, 반복적인 구성입니다. 감상을 목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재액과 귀신을 물리치고 복을 받고자 하는 기복신앙으로써의 그림이지요. 화는 낙관이 없어 누가 그린 것인지 알 수 없는 것도 특징입니다. 
박물관에는 19금(禁)방도 있습니다. 선조들의 소박하고 익살맞은 성(性) 이야기의 춘화(春畵)방으로, 성인만 입장이 가능합니다.

영월군의 중심지에 있어도 조선왕조 단종(제6대, 1441~1457)의 묘는 늘 외롭습니다. 단종 사후 60년이 지나서는 왕릉의 모습으로, 241년 후에는 ‘장릉(莊陵)’이라 하였습니다. 단종과 정순왕후의 ‘영혼이라도 함께하라’는 의미의 ‘정령송’ 이 멀리 능을 봅니다. 키 큰 망주석(무덤 앞 좌우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은 무덤을 지키고 있습니다. 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세호(細虎, 새겨 넣는 상상의 동물 문양)가 없는 망주석이지요.  
 

육지 속의 작은 섬, 동‧남‧북쪽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험한 암벽이 있어 배를 타지 않으면 가고 올 수 없는 섬 아닌 섬이 있습니다. 단종의 유배 역사가 남아있는 청령포입니다. 기암괴석의 절벽을 휘도는 강과 우거진 소나무가 많습니다. 푸른 소나무의 기운 탓인지, 마음까지도 서늘해집니다. 소나무의 그늘 밑으로 자란 풀들은 부드럽습니다. 
관음송(觀音松), 16살의 단종이 가지 사이에 걸터앉아 날아가는 새들을 봅니다. “차라리 창공을 나는 새로 태어났으면 좋으련만…” 세상과 단절된 외로운 섬이 되어 소나무에 기대며 마음을 달랬습니다. 단종의 서글픈 생활을 보고 들었다 하여 ‘관음’이라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약 720살이 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소나무랍니다. 
 
한양에 남겨진 부인 송씨(정순왕후)를 생각하며 쌓은 조그만 망향탑, 어린 단종의 마음을 떠올립니다.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멀리 북쪽 한양을 바라보며, 절벽 아래로 찰찰 흐르는 강물 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리웠을까 억울했을까. 당시 금부도사였던 왕방연이 단종께 사약을 올리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슬프고 아픈 마음을 시조로 읊습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 놋다”

강 건너 청령포의 수백 년 솔밭 위로 따갑게 햇빛이 내립니다.
    <김현락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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