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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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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3.06.26 11:05
  • 호수 14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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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숙 다독임 회원

이 소설의 원제는 ‘la place’(자리)라고 한다. 사람이나 물건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란 뜻인데 영어로 번역될 때 ‘a man’s place’(남자의 자리)로 제목이 바뀌었다고 한다.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는 2022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한 가정의 이야기이며, 20세기 전의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내가 기억하는 공간까지 있었던 이야기로 ‘그 시절에는 ~그렇게 살았어.’ 라고 말한다. 가난에, 지금과 다른 상황으로 겪어냈을 육체적·정신적 고단함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마치 타자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써낸 듯한 담백한 문장으로 다양한 감정을 공감하게 한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것 또한 시대를 살아온 공간에서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저 그 단어와 문장이 아버지가 살았던 세계이자 내가 살았던 세계이기도 한 곳의 한계와 색깔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 나는 천천히 쓰고 있다. 사실과 선택의 집합에서 한 인생을 잘 나타내는 실타래를 밝혀내기 위해 애쓰면서.” 
기억을 쓰다 보면 미화될 수도 있고, 사실보다 포장될 수 있음을 경계하며 처음부터 작정하고 써 내려간 공간에서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삶을 통하여 나의 인생을 기억해 내는 일은 한번은 되돌아가 담담히 묻고 대답할 수 있는 의례로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한다. 

우리 집 이야기를 밝혀내는 과정이다. 그는 가난했고 배움이 없었으며 그것이 티 나지 않도록 애씀은 오히려 본인이 열등하다는 생각을 드러내는 행동으로 나는 보고 있다. 먹고 사는 일이 중요했고, 먹고 살 만해지면 또 저만큼에서 변화되는 환경을 따라가지 못한다. 본인과 다르게 사는 딸을 이해할 수 없으나 주변의 시선에 방어하며 응원하는 부성애를 보이기도 한다. 

“물건을 신성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타인의 말이든 내 말이든 주고받는 모든 말속에 선망과 비교를 의심한다. ‘분수를 알아야 해’라든가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을까, 창피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나도 어릴 적 고상한 언어로 나를 표현하려 노력할 때면 허공에 몸을 던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가 서로에게 더 이상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글을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의 문장 한 줄 한 줄을 통해 나의 내면 끝까지 외면하고 싶은 것, 열등과 부끄러움과 우그려 놓은 마음을 만난다. 내가 책을 읽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인생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는 걸 알았다. 이번엔 꼭 그 살아온 삶을 들어봐야겠다고 다짐했으나, 그 기억은 사라져 없어진 것이 대부분이며 현재의 결핍을 포장하고 싶은 ‘그랬다더라’뿐이다. 

나를 있게 한 부모와 형제와 또 내가 꾸려놓은 나의 자리를 돌아본다. 매력적으로 나를 흔들어 놓은 아니 에르노의 문장들을 읽으며, 작가가 주는 글을 통해 “딜리셔스!” 다양한 맛을 음미해 보길 권한다. 나의 내면에 있는 실체를 만나고, 때로는 과한 자기 연민과 감정을 담담히 지켜보는 시간도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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