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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도, 바다도 그리는 산(山) 작가 – 조성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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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도, 바다도 그리는 산(山) 작가 – 조성호 화백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3.06.19 16:44
  • 호수 14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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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 세상 둘러보기

 서울 지하철 4호선의 미아4거리역, 2번 출구로 나와 마을버스를 탑니다. 조용하고 깨끗하고 나무 많은, 서울 같지 않은 한적한 언덕의 순영슈퍼 앞에서 내립니다. ‘조성호융합미술연구소’가 길가에 있습니다. 현관문을 열자, 눈 덮인 붉은산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150호(227×180㎝) 크기의 화폭 앞에는 울퉁불퉁한 탑처럼 쌓여 있는 가지각색의 물감과 붓칼 2개가 엇비슷하게 놓여 있습니다. 

“2018년부터 그리기 시작했어요. 이것도 그리다 또 다른 작은 작품도 그리다 그러죠. 산이 아니라 언덕입니다.” 
에게해의 쪽빛 바다가 아니라, 빨간 언덕이 강렬한 그리스의 산토리니 항구입니다. 작업실 뒤쪽으로 방이 있습니다. 그림을 보관하고 있는 수장고입니다. ‘양평의 가을‧2005‧10F, 메테오레‧2007‧10F,…’ 조립 선반에 층층으로 꽉 차 있는 작품마다 이름표가 붙었습니다. 조성호 화백의 일생이, 그림과 평생을 같이 한 삶이 차곡차곡 정갈하게 쌓였습니다.

우(성)산에서 백두까지
“산(山)만 그리다 보니 ‘산작가’로 불리네요. 어렸을 때부터 뺑뺑 둘러싼 산을 보며 자랐지요. 주변이 온통 산이니, 내가 가장 잘 아는 것도 산이지요. 자연스럽게 산을 그렸고 또 산이 그림의 소재가 되다 보니 설악산, 한라산, 백두산, 여기저기 산을 찾게 되더라구요. 우리나라의 산은 물론이고 히말라야를 5번 갔다 왔는데, 갈 때마다 계절마다 시간마다 느낌이나 감이 달라요.” 

“조금 변화를 주긴 했지만, 그래도 ‘산’ 작품이 많지요. 지금도 산이 좋습니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봐도 좋지만, 위에서 내려보는 것도 좋아요. 모든 짐을 싸 짊어지고 산에 가 화폭에 직접 스케치를 하고 색칠을 하죠. 큰 작품을 그리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한 달이고 보름이고 산에 머물며 몸으로 느끼는 산을 화폭으로 옮깁니다. 산은 따뜻한 어머니 같고, 때로는 스승 같고, 인간의 삶과도 같아요. 거짓이 없죠. 말없이, 그대로 거목 같아요.”     
 
“어릴 때부터 소질이 있어서 초등학교 때는 환경표어를 그려 상을 많이 탔어요. 그림을 잘 그리신 윤풍로선생님이 특별활동시간에 지도를 해 주셨죠. 중학교 때는 최학노선생님 밑에서 미술반 활동을 했는데 최영근‧고종원‧강유석‧박성인‧김호영‧김대열‧권범철 등 실력 좋은 친구들과 함께 그림을 했지요. 최학노선생님은 1960년대 초에 청양에서 개인전도 하셨어요. 젊은 시절에 산을 많이 그리셨는데, 이번에는 꽃을 주제로 초대전을 하십니다. 86살이신데도 엄청나죠.” 
조성호 화백은 존경하는 최학노선생님의 초대전을 준비하느라 며칠간 바빴습니다. 6월 21일부터 6일간 서울 종로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에서 열립니다. 

-그림을 그린다고, 부모님께서 반대는 안 하셨나요? 
“아버지는 ‘뭐든지 하나만 잘해라’고 하셨어요. 운동을 하더라도 ‘넓이뛰기’면 ‘넓이뛰기’만 하라고 하셨죠. 당시에 가로수로 과실수를 심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청양에 천주교가 들어올 수 있게 한 선각자셨죠. 서울예고를 시험 봤는데 떨어져 서라벌고등학교에 보궐로 들어갔죠.(웃음) 직장생활을 하면서 밤에 그림을 그렸어요. 꾸준히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죠. 그러다 1980년에 안양으로 옮기고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했지요. 84년에 한국미술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지금까지 왔네요.”
경기미술대전에서 첫 상을 받은 후 1985년에 안양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하고, 서울에서 뉴욕까지 32회의 개인전과 1천 회가 넘는 그룹전‧초대전을 하였습니다. 

예술가의 성의와 배려
지난 5월, 전남 고흥의 ‘남포미술관’에 작품 70점을 기증하였습니다. 7월 30일까지 ‘자연의 산책’이란 제목으로 조성호 화백 기증작품전을 합니다. 
-남포미술관과는 예전부터 인연이 있으셨나요?  
“40~50년 전부터 광주에서 함께 그림을 그린 화우(김영태화가)가 있어요. 네팔과 일본 등으로 스케치도 같이 다녔는데, 그분 소개로 남포미술관을 알게 됐지요. 미술품 전시는 물론 수시로 기획전시도 하고 음악회 등 각종 문화예술공연도 한다고 해요. 어린이 미술 체험 교실 등 하는 일도 많고, 문화소외지역 주민들의 문화 향수권 신장을 위해 헌신하는 미술관의 설립 취지가 좋았어요. 많은 사람이 내 그림을 누릴 수 있다면 하는 내 성의죠. 
70점은 아무것도 아니죠. 우리나라의 산하와 히말라야, 그리스 산토리니 등 세계 유명지의 풍경 작품들이죠.” 

“청양에도 기회가 되면 당연히 해야죠. 하고 싶어요. 청양초나 청양중학교에도 생각은 하는데, 안 되더라구요. 오래전부터 청양에 도립미술관이 건립되기를 바랐지만…, 내 작품은 물론 다른 유명작가 작품도 소개할 수 있어요.” 

아름다운 그림, 좋은 그림
“작품이 아름답다는 표현은 때로는 좋은 것 같지만 좋은 것만은 아녜요. ‘좋은 그림’이나 ‘작품이 좋다’는 말을 듣는 것이 좋죠. 잘 그렸다는 것은 똑같이 그리면 되지만, 작품이 좋다는 것은 작가의 혼이 들어있다는 뜻으로 화가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이거든요. 작품은 일시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하고는 다른 차원이지요. 좋은 작품은 삶의 고민과 인품이 어우러져야 하는데, 내면의 깊이를 표현하는 것이 늘 어렵습니다.”
인생의 결과물, 그림 앞에서 숙연해집니다. 

“빨강을 가장 좋아해요. 정열적이고 힘이 있고. 색도 나이 따라 달라지네요. 20년 전 러시아에서 한 달 내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 8시간씩 누드만 그렸어요. 그때는 색이 많이 차분해지며 어두웠지요. 그러다 2006년에 그리스엘 갔는데, 햇빛이 너무 밝은 거예요. 선글라스를 쓰고 그림을 그렸더니, 색이 밝아졌죠. 젊었을 때는 밝았다가, 한동안은 어두웠다가 다시 밝아지는.(웃음)”  
조성호 화백은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체험과 생각을 작품으로 표현했습니다. 자연의 풍경을 자연의 색으로 화폭에 옮겼습니다. 화려한 색채와 대담한 구성으로 물과 산을 그렸습니다. 오랜 화가의 길 대부분을 일관하게 풍경화를 추구하였습니다. 예전의 풍경은 청량하고 평온했던 반면, 점점 화려해지는 색감은 60여 년 화가의 길을 더 화려하게 합니다. 

“한길을 파지 않았다면 글쎄 내가 뭐를 했을까? (웃음) 한 번도 다른 생각 안 해 봤어요. 내 나름대로 집념이 있어요. 한 번 앉으면 밤을 새는 고집도 있고…. 화우들한테 배웁니다. 모든 화가가 나에게는 스승이며, 선생님입니다. 내 작품이 아닌 타 화가의 작품에서 느낌을 받으며 독학으로 미술공부를 했지요. 평생 배우는 입장이라서 제자도 두지 않았습니다.” 
-돈을 받고 판 첫 번째 작품, 기억하시나요?
“담배와 재떨이, 꽁초를 아주 세밀하게 그린 것이 있었는데, 그걸 누가 사가더라구요. 얼마에 팔았는지는 생각 안 나네요.(웃음)”

작업실에는 ‘산’그림이 몇 점 걸려있습니다. 산바람이 불고 산새소리가 들립니다. 밝고 맑은 햇살이 산봉우리 사이와 계곡을 비춥니다. 산을 통해 우주를, 사람을, 삶을 보고 가꿉니다. 올겨울에는 한 달간 북극에서 초대전을 합니다. “오로라도 보고 와야죠.” 
<김현락 편집주간>

※ 조성호 화백은 청양읍 학당리가 고향이며, 청양초와 청양중을 졸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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