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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해서 귀하게 쓰인 물고기, 돌아오라 – 명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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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해서 귀하게 쓰인 물고기, 돌아오라 – 명태야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3.06.12 14:54
  • 호수 14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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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물의 나라 한국, 1인당 수산물 소비량 세계 1위,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육식보다 생선을 많이 먹습니다. 특히 조기‧명태‧멸치는 먼먼 옛날부터 우리에게 친근한 생선으로, 한국인의 식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찌개를 비롯한 다양한 조리방식으로 우리 밥상에 올랐습니다. 

‘명태의 나라 조선’, 명태는 한반도에서 가장 많이 잡힌 물고기였습니다. 일본, 중국 등 주변국에서 조선을 명태의 나라로 불렀습니다. “원산은 사방으로 장사꾼이 모여드는 곳이다. 명태 운송은 동해 물길을 따르고, 말로 실어 나르는 길은 철령을 넘는데 밤낮으로 그치지 않고 이어져 나라에 넘쳐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의 『난호어목지』에 기록돼 있습니다. 당시 명태는 워낙 많이 잡혀서 그물질 한 번에 배가 가득 차곤 하였답니다. 1917년에는 총어획량의 28.8%로 최대 어획량을 명태가 차지합니다. 

“내장은 창란젓, 알은 명란젓, 아가미로 만든 아가미젓, 눈알은 구워서 술안주하고 괴기는 국을 끓여 먹고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명태.”라는 노랫말도 있듯이 명태는 여러 종류의 젓갈로 만들어 먹었습니다. 특히 명란젓은 광복 후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답니다. 일제강점기에 부산에서 태어난 일본인이 있었습니다.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명란젓을 좋아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명란젓을 팔았습니다. 이 명란젓이 일본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이지요.
     
1987년에 20만 톤으로 정점을 찍고 명태는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2008년에 공식 어획량 ‘0’이 되며 한반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한류와 난류의 접점 지대인 한반도 바다는 작은 기온변화에도 특정 물고기가 완전히 사라지는 특성으로, 찬물을 좋아하는 명태가 특히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명태는 동해의 수온이 올라감에 따라 더는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2014년, 해양수산부에서는 살아있는 명태를 구하기 위해 집 나간 명태를 찾는다는 ‘명태 수배 포스터’를 제작하고 사례금 50만 원을 내걸기도 하였습니다. 2016년에는 세계 최초로 명태 양식에 성공해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 역시 활발하게 발표됐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는 듯합니다. 수백만 마리의 어린 물고기를 강물에 놓아 보냈으나 돌아오는 명태는 없었으니까요. 어쩌면, 이미 동해는 명태를 키울 수 없는 바다가 됐는지도 모릅니다. 

살아있는 명태 수배 포스터(2014년)
살아있는 명태 수배 포스터(2014년)

눈이 커 만 리 밖까지 내다보며 십수 년간 오래 사는 명태는 음식의 식재료를 넘어 기원과 의례, 신앙적 의미까지 지닙니다. 조선의 관혼상제에 빠지지 않는 필연적인 상품으로써 전국에 판로도 많았습니다. 또한 주술적 의미를 갖기도 합니다. 고사나 굿을 끝내고 현관문 등 위에 걸어두거나 신장개업한 가게에, 어선이나 자동차 등 무사고를 기원하는 ‘액막이북어’는 지금도 민간에서 널리 쓰입니다. 신들에게 올리는 의례품이 된 것은, 쉽게 장만할 수 있고 10년이 넘어도 상하지 않으며 비린내도 나지 않아 제물로 사용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명태 역시 조기처럼 흔한 것이어서 귀하게 쓰이는 것이지요. 1906년에 기록된 「부의록」에는 상가(喪家)에 부조로 ‘북어10미’가 들어왔다고 적혀있습니다. 
 
조선 후기 이유원이 쓴 백과사전 『임하필기』에는 ‘함경도 명천군에 사는 어부 태씨(太氏)가 물고기를 낚았는데, 그때까지 이름이 없어 지명의 명(明)자와 잡은 사람의 성을 따서 명태라고 이름을 붙였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명태는 1652년 사옹원에서 승정원으로 올린 장계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답니다. 명태라는 한자표기가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묘호(사후 공덕을 기리기 위해 붙인 이름)와 같아 문헌에 쓰이지 못하다가 1644년 명나라의 멸망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답니다. 
 

명태잡이 면사 그물
명태잡이 면사 그물

염장하여 꾸덕꾸덕 말리는 조기, 염분 있는 물에 삶아 건조하는 멸치, 염장하지 않고 깨끗하게 씻어 말리는 명태는 때가 되면 우리 바다를 찾던 회유성어류입니다. 한때는 일정한 시기에 대형 무리로 나타나 수많은 어민의 삶에 활력소가 되기도 했던 명태 역시 조기처럼 동해로 다시 돌아올 기미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명태는 우리 밥상의 주요 생선으로 소비량은 오히려 더 늘었습니다. 사라진 명태를 대신해 냉동 명태를 수입합니다. 2022년 수산물 총수입의 28%가 냉동 명태였습니다. 조기의 맛과 모양새가 비슷한 물고기를 찾아 머나먼 아프리카로 가 뾰족조기도 들여옵니다. 몇 세기가 흘렀어도 여전히 한국은 명태와 조기, 멸치의 나라입니다. 
 
먼 오래전, 늦봄 끝 무렵쯤이면 어르신들은 명태낚시를 즐겼습니다. 주낙 혹은 연승(延繩)을 이용했습니다. 모릿줄이라고 불리는 한 가닥의 긴 줄에 일정한 간격으로 달린 가짓줄(아릿줄)을 달고, 그 끝에 바늘과 미끼를 달아 명태를 잡는 낚시도구입니다. 대나무 대 가운데를 갈라 바늘을 끼웠습니다. 미끼를 따라 올라오는 명태, ‘막물태’였지요.
 
명태·조기·멸치, 이들 없는 밥상은 어떨까요? 한국인의, K-물고기의 존재는 한국인의 밥상을 차지하는 ‘밥도둑’ 그 이상입니다. 
<김현락 편집주간>

※ 국립민속박물관의 기획전시 ‘조기‧명태‧멸치 해양문화특별전’을 참고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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