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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들어주세요. 우리들 이야기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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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들어주세요. 우리들 이야기 들려드릴게요”
  • 양승혜 기자
  • 승인 2023.06.07 09:50
  • 호수 14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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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결혼이주여성 간담회…행정문서 복잡 개선 필요

청양은 인구 3만이 조금 넘는 작은 군이다. 하지만 다문화가정 세대수는 317가정으로 타 시·군과 비교해 비율이 매우 높다.
읍면별 가구 수는 청양읍 122가구, 운곡면 6가구, 대치면 20가구, 정산면 35가구, 목면 11가구, 청남면 24가구, 남양면 22가구, 장평면 26가구, 화성면 28가구, 비봉면 23가구 등이다.

사진 왼쪽부터 김크리스티나에프 씨, 김지연 씨, 황채림 씨, 남현신 가족센터장, 이숭녀 씨, 사사끼사쯔끼 씨, 유미숙 국장의 모습이다.
사진 왼쪽부터 김크리스티나에프 씨, 김지연 씨, 황채림 씨, 남현신 가족센터장, 이숭녀 씨, 사사끼사쯔끼 씨, 유미숙 국장의 모습이다.

지난 2021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다문화가구는 약 34만 6000여 가구며 이중 결혼이민자 가구는 82.4%에 달한다. 이민자가구는 우리나라 남성이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소개받은 경우가 4명 중 1명(23.6%)으로, 상당수는 농어촌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주여성들은 어린 나이에 결혼을 통해 한국에 정착, 사회적·문화적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본지는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결혼이주여성을 만나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솔직담백한 시간을 가졌다. 이번 이주여성 간담회는 사회복지법인 청양군사회복지협의회(회장 민근기) 산하기관 청양군가족센터(센터장 남현신)의 협조로 진행됐다.

청양발전 기여하는 숨은 일꾼
지난달 15일 청양읍 행복복지타운 청양군가족센터 회의실에서 열린 간담회에는 청양에 정착한 6명의 결혼이주여성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지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아발전을 위한 배움에 열중하고 있었다. 또한 정착기간이 평균 10년 이상으로 지역사회 적응과정의 고충과 바라는 점을 진솔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이주여성들이 청양 생활에 대한 느낌을 말하고 있다.
이주여성들이 청양 생활에 대한 느낌을 말하고 있다.

먼저 사사끼사쯔끼(50세. 일본) 씨는 “한국에 온 지 24년 가까이 됐으며 10년 전부터 가족센터에 입사해 근무하고 있다. 다문화 가정에서 아이들이 양국의 언어를 모두 배울 수 있도록 이중언어코치를 맡고 있다. 딸 셋을 키우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크리스티나에프(47세. 필리핀) 씨는 “24년 전 한국에 왔으며 한 명의 자녀를 키운다. 필리핀에서 간호학과를 졸업했고 한국에 와서는 영어강의도 많이 맡았다. 가족센터에서 통번역사가 필요해 이곳에서 일하게 됐다. 현재 필리핀 통번역 지원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출신인 김지연(39세) 씨는 “한국에 거주 한지는 17년 됐으며 현재 가족센터에서 베트남 통번역사로 활동하고 있다. 통역·번역 일과 이주여성들에게 정보제공, 중도입국 자녀 지원과 군내 학교에 베트남어를 지원하는 통역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숭녀(42세. 중국) 씨는 “18년 전 한국에 들어와 10년 넘게 일하고 지내다 한 살 연하의 한국인 남자친구가 생겼다. 연애 후 결혼했으며 지금은 남편으로서 옆을 지켜주고 있다. 한국에서 사회복지학을 배우고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청양군가족센터는 7년째 무지개가족봉사단을 운영한다.
청양군가족센터는 7년째 무지개가족봉사단을 운영한다.

황채림(28세. 베트남) 씨는 “한국에 온 지는 9년 6개월 됐다. 딸 3명을 키우고 있으며 육아로 인해 바빠 한식 뷔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 몽골 출신 벌드엥흐찐(44세) 씨는 “일본에서 유학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3년 전 한국에 들어왔고 현재 청양에 거주하며 국적취득을 위해 공부 중이다. 3명의 아이를 키우며 ‘다이음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다이음 강사로서 학교를 찾아가 아이들에게 몽골의 문화를 알리고 다문화 가정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타지 생활 최대 고충은 ‘외로움’
벌드엥흐찐 씨는 “처음 청양에 와서는 아는 사람이 없어 많이 외로웠다. 한국 여자들은 남편이랑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했다”고 했다.
이숭녀 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힘들었다. 주변에 같이 아이를 돌보고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김크리스티나에프 씨는 “24년 전 한국에 왔는데 그때는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는 기관이 없었다. 결혼 전에는 아이를 많이 낳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느끼며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져 1명만 낳아 키우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사사끼사쯔끼 씨는 “한국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배우라는 압박이 부담스러웠다. 고국에서는 어떤 걸 먹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만 물어봐 줬다면 관계가 수월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간담회 참석자들은 이주여성에 대한 한국 행정절차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지적했다.
“가족센터 가입과 국적취득 등 문서작성이 한국인과 달리 본국(출생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또 전체인구대비 체류외국인 비율이 5%를 넘으면 다문화 사회이고 한국도 다문화 사회에 다다른 만큼 서류와 절차상의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제도적 개선을 바랐다.

“엄격한 심사보다는 다문화 가정을 품어줄 수 있는 사람과 법이 있어야 한다. 지식으로 심사하지 말고 한국에서 산 세월을 반영해 줬으면 한다”며 “이주여성 가정을 지칭하는 수식어 ‘다문화’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김지연 씨도 “우리의 이야기가 전해져 지역사회의 시선에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고 이야기에 공감했다. 

가족과 지인의 응원이 삶에 큰 힘
벌드엥흐찐 씨는 간담회 자리를 통해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입을 뗐다. 
“청양에 산지는 2년 정도 됐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시댁 어른께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따로 연락을 드려도 답장을 주지 않는다. 너무 속상해서 남편에게 어려움을 얘기하기도 했다. 며느리로 똑같이 잘 대해줬으면 한다. 사랑받고 싶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한국 생활 중 친해진 언니에게 고충을 털어놓으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감사해 했다.

김크리스티나에프 씨도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23년 전 한국에 들어왔다. 그때는 낯선 타지 생활 고충을 이야기할 곳이 없어 교회를 찾아 위로받았다. 한국 생활을 접고 필리핀 고국으로 돌아가기 직전 교회에서 가족과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줘 새벽까지 울며 대화를 나눴다. 말하지 않으면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상처가 났는지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을 터놓고 이야기하면 변화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황채림씨는 “10년 전 한국에 왔다. 남편의 권유로 청양에 들어와 생활한지 3개월 만에 베트남에 있는 모든 가족을 청양으로 모시게 됐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도 친정어머니의 도움으로 잘 적응 할 수 있었다”며 “결혼 10년 차를 맞이했지만 한 번도 결혼을 후회한 적 없다”고 가족사진을 꺼내 보여줬다. 
간담회에 참석한 여성들은 황채림 씨의 말에 “정서적으로 의지할 친정이 있으니 보다 빨리 적응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

지친 마음 나누는 쉼터 ‘청양군가족센터’
이숭녀 씨는 “남편과 연애하고 결혼했지만 결혼생활 초반에 부부갈등으로 많이 힘들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가족센터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이곳에서 상담을 받고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상담과정에서 자존감도 높아지고 취업도 알아보면서 위기를 기회로 삼아 극복할 수 있었다”며 “부부갈등을 자신만의 문제라고 단정 짓지 말고 주변에 알려야 한다. 왜냐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고 감정을 나누다 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고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주여성 중에는 청양군가족센터 무지개봉사단에 가입,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보람과 긍지를 키워가고 있다. 이는 자신들이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닌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재감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간담회에 참석한 여성들은 마무리 의견으로 “사회적 인식개선이 최우선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이주여성을 힘들게 하는 건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다문화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편견과 장벽”이라며 “이주여성은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눠주고 베풀 수 있는 지역사회 일원임을 알아 달라”고 했다.
끝으로 참석자들은 “우리를 평범한 이웃으로 바라봐 주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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