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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3.06.07 09:44
  • 호수 1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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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은빛 자태, 밥상 위의 지휘자 - 멸치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 생선이 조기였다면,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많이 먹는 생선은 멸치입니다. 조기만큼이나 멸치도 흔해서 우리에게 소중한 물고기였으며, 물고기입니다. 
멸치가 얼마나 많았는지,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은 “그물을 한 번 치면 배에 가득 차는데, 곧바로 말리지 않으면 썩어서 퇴비로 쓰고 산 것은 탕을 끓이는데 기름기가 많아서 먹기 어렵다. 마른 것은 날마다 반찬으로 삼는데, 명태처럼 온 나라에 두루 넘친다.”고 하였습니다. 온 나라에 두루 넘치는 물고기, 날마다 반찬으로 먹을 수 있는 물고기가 멸치였던 것이지요. 

멸치는 조기나 명태처럼 식탁의 주요 반찬은 아니지만, 밥상에서는 가장 영향력이 있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멸치의 은근한 기질과 힘은 젓갈·액젓·육수·분말 형태로 다른 음식에 스며들어 맛을 냅니다. 국이나 나물무침 등, 우리는 거의 날마다 멸치를 만나고 먹습니다.

“밝은 빛을 좋아하는 멸치의 속성을 이용해, 밤에 어부들은 불을 밝혀 손그물로 떠서 잡기도 하였다. 이 물고기로는 국이나 젓갈을 만들며, 말려서 포도 만든다. 때로는 말려 고기잡이의 미끼로 쓰기도 한다. 가거도에서 잡히는 멸치는 몸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이곳(흑산도)에서는 겨울에도 잡히지만, 관동에서 잡히는 멸치보다는 못하다. 살펴보니 요즘 멸치는 젓갈용으로도 쓰고, 말려서 각종 양념으로도 사용하는데 선물용으로는 천한 물고기다.” 정약전이 ‘자산어보’에 기록한 것으로, 조선시대에도 다양한 식재료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멸치는 오래전부터 젓갈이나 포, 여러 양념으로 사용했던 것이지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멸치는 밥상 위에서 주인공은 아니지만, 반찬의 맛을 내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생선으로 한국인의 밥상에 자리 잡았습니다. 

남해군에는 정치망(연안해역에 그물을 고정적으로 설치해 놓고 고리를 유도하여 그물에 갇히게 하는 방법)어업으로 멸치를 잡습니다. 남해 정치망에서 물고기가 들어오는 그물을 통그물이라 합니다. 통그물은 이중으로 되어있으며, 코가 큰 그물 아래 코가 촘촘한 그물이 있어 그곳으로 작고 여린 멸치들이 들어옵니다. 제일 고참인 어부가 망이 고운 뜰채로 멸치를 뜹니다. 막 건져 올려진 멸치는 단 몇 초 만에 팔딱임을 멈추고 서서히 굳어갑니다. 부두에서 멸치막까지는 채 1분도 안 걸립니다. 멸치막에는 진작부터 천일염을 넣은 물이 끓고 있습니다. 멸치를 삶는 시간은 아주 짧습니다. 건져내는 시간이 기술자의 역량으로, 마른 멸치의 맛에 큰 영향을 주지요. 채반에 거두어 물기와 열기를 뺀 멸치는 건조기 속에서 말려집니다.        

죽방렴 말,  말뫼
죽방렴 말, 말뫼

국가중요어업유산, 명승,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죽방렴’은 대나무발 그물을 세워 물고기를 잡는 전통적인 어구로 ‘대나무 어사리’라고도 합니다. ‘경상도속찬지리지’(1469년) 남해현조에 죽방렴에 대한 첫 기록이 있습니다. 물살이 빠르고, 말목을 박을 수 있는 적당한 수심, 물고기가 많이 다니는 골목에 죽방렴을 설치합니다. 남해군 지족해협과 삼천포해협 일원에서 지금까지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죽방렴으로 잡는 멸치는 양이 많지 않습니다. 잡힌 신선한 멸치를 얼른 삶아 크기별로 선별합니다. 그물로 잡은 멸치와는 달리 비늘이 살아있어 깔끔하고 선명한 빛깔을 유지합니다. ‘죽방렴멸치’가 비싼 이유이지요. 
   

멸치 뜰채
멸치 뜰채

가늘고 긴 원통형의 몸은 떨어지기 쉬운 얇은 비늘로 덮여 있습니다. 어디든 스치기만 해도 떨어지는 은빛비늘은 아름답습니다. 배 부위는 반짝이는 회색이고 등은 검푸른 빛깔입니다. 눈에는 투명한 눈꺼풀(안검)이 있습니다. 또렷한 까만 눈동자는 짙은 먹으로 그려 넣은 듯합니다. 바닷물 밖에서는 멸치의 이 아름다움을 쉽게 보지 못합니다. 
위턱이 아래턱을 덮고 있는 모양새로 눈퉁멸, 샛줄멸, 정어리로 구분합니다. 정약전은 “잡아 올리면 급한 성질 때문에 죽어 버린다”하여 멸어(蔑魚)라 하였습니다. 
  

멸치젓독
멸치젓독

보통 봄과 여름에 산란이 집중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멸치 산란은 연중 이루어집니다. 암컷 한 마리가 1700~1만6000개 정도의 알을 낳는데, 여러 번 나누어서 산란하지요. 타원형의 알은 표층을 떠다니면서 부화합니다. 갈매기와 바닷새, 상어나 가다랑어 등 수많은 천적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대형 밀집으로 떼를 지어 사는 멸치는 수명이 1~2년입니다. 
난류성 어류로 겨울에 남쪽 바다 멀리 나가 있다가 봄이 되면 쿠로시오난류(우리나라와 일본 주변을 흐르는 대표적인 해류)를 타고 남해안으로 옵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멸어(멸치)좌반, “짜지 않은 멸치 1말을 알맞게 볶아 살짝 비벼서 부드럽게 한다. 순무, 배추 흰 속통, 장, 참기름, 질 좋은 검은콩 2대를 삶아 물기를 빼고 다시마를 순무나 배추를 잘라 놓은 것처럼 잘라 몇 줌을 넣고 흑당(검은엿) 5~6조각을 넣는다. 가마에 모두 넣어 6시간 정도 끓인다. 막대기로 뜨거울 때 휘저어 골고루 섞은 후 꺼내서 항아리에 담는다. 간장, 볶은 참깨를 넣고 고추를 좋아하는 사람은 고추를 많이 넣으면 식사로 아주 훌륭하다.”- ‘오주연문장전산고’(백과사전, 이규경, 1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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