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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세 이만구 담임선생님과의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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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세 이만구 담임선생님과의 이별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3.06.07 09:38
  • 호수 14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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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용 (시인·용인대교수, 청양칠갑식품 대표)

선생님, 말씀대로 바르고 정직하게
이웃을 배려하고 하늘을 우러르며
한점의 부끄럼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기죽지 아니하고
어깨를 쫙 펴고서 세상을 보듬으며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며 열어가고 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인내하고 마음을 다스리며
진인사 대천명지성(盡人事 大天命之成) 
실천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존경하고 고맙고 사랑합니다
선생님, 좋은 인연 진실로 감사합니다
선생님, 다시 뵈올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이만구 선생님(101세)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잠시 동안 정신이 멍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동안 자주 찾아뵙지 못한 송구스러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이만구 선생님을 처음 뵌 건 일곱살 때이니 근 70여 년이 된다. 당시에 비봉면 가남국민학교 선생님이시고 양사리가 고향이신 선생님은 늘 강정리 말미 우리 집 앞으로 출퇴근을 하셨다. 훤칠하신 키에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한결같이 자상하신 모습은 자연스레 어린 시절 마음속의 ‘큰 바위 얼굴’로 다가오셨다.

이명용 시인(오른쪽)과 고 이만구 선생
이명용 시인(오른쪽)과 고 이만구 선생

언제부터인지 선생님의 퇴근길에 집 앞 다리 독에 나가서 선생님을 기다리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선생님은 반드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착하다. 신문을 아버지께 전해드려라.”
“예,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내년에는 입학하여 반드시 선생님을 담임선생님으로 모셔야지.”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1학년에 입학하니 이만구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 되신 것이다. 그때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괜히 싱글벙글 웃고 다니는 나를 누나들과 형들이 소원을 성취했으니 좋겠다고 격려를 했다.
그로부터 4학년이 될 때까지 아침이면 항상 즐거움으로 가득찼다. 오늘은 무슨 즐거운 일이 일어날지 궁금했다. 학교 다니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4학년 말 어는 날 선생님께서 나를 교장실로 부르셨다. 교장실에 불려간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교장실에는 정연철 교장선생님과 아버지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계셨다. 마침내 교장선생님이 자초지종을 설명하시며 말씀을 하셨다.

“명용아, 네가 서울로 전학을 가야 되겠다.”
청천벽력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후로 밤나무 밑에서 혼자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하지만 모든 게 허사였다. 전학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이듬해 오학년 때 나는 서울 ‘서빙고국민학교’로 전학을 하였다.
그리고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세상을 한바퀴 돌고 고향에 내려오니 감개무량할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 나를 올바른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이만구 담임선생님을 생각하며 항상 감사하게 여기고 살아왔다. 

7년 전 스승의 날 광천에 사시는 선생님 댁을 방문했을 때 활짝 웃으시며 반갑게 맞아주시던 선생님과 사모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당시에 선생님은 94세 이셨고 사모님이 92세 이셨는데 컴퓨터를 치시며 여전히 올 곧게 살아가시는 모습이 생생하다.
“자네가 명용이여, 참으로 고맙네.”
“그동안 찾아뵙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그때 선생님과 사모님이 사주신 자장면이 어찌 그리 달고 맛있는지 모른다. 그것이 선생님과의 최후의 만찬이 될 줄을 몰랐다.
오늘은 홍성의료원에서 선생님과 이별하고 처음으로 선생님이 걷던 길을 거꾸로 걸어본다. 언제보아도 비봉산 아래에 자리 잡은 가남초등학교는 명당자리이다. 수많은 선생님들과 제자들이 이곳에서 꿈을 키우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나도 그중에 한 명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다.

녹평리를 돌아 강정리 돌다리를 건너니 먼 곳에 ‘오서산’이 하얀 구름모자를 쓰고 앉아있다. 국민학교 1학년 때와 똑같이 앉아있다. 그 옆에 선생님의 웃는 얼굴이 실루엣처럼 겹쳐 있다. 갑자기 눈물이 흘러 넘쳤다.
“선생님 그동안 감사드립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만나 뵈올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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