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5:03 (수)
춘포짜기 4대째 맥 잇는 이석희·김희순 부부
상태바
춘포짜기 4대째 맥 잇는 이석희·김희순 부부
  • 이관용 기자
  • 승인 2023.06.07 09:36
  • 호수 149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머니에서 며느리로 기술 전수…전통방식 고수
충남 무형문화제 기능보유자 자격 최종 심사 남아

춘포는 명주와 모시를 섞어 만든 반견반저(半絹半苧)의 베로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는 봄에 즐겨 입는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모시옷보다 가볍고 시원한 특징을 갖고 있어 선조들은 봄과 여름에 주로 춘포를 활용해 옷을 지어 입었다. 춘포는 모시를 씨실(가로)로 명주를 날실(세로)로 짠 후 치자 물을 들이기에 노란색을 띄고 있다.

이석희(오른쪽)·김희순 부부가 길쌈과 춘포 제작을 시연하고 있다.
이석희(오른쪽)·김희순 부부가 길쌈과 춘포 제작을 시연하고 있다.

춘포는 조선시대 역사서인 ‘임원경제지’와 ‘규합총서’에 기록돼 있고, 청양군 운곡면 일원에서 직조가 활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직조방법이 기계화되고 값싼 중국산 춘포가 수입되면서 손이 많이 가고 고된 전통방식(가내수공업) 제조는 사라져 현재는 몇몇 장인에 의해 맥이 이어지고 있다.
청양 춘포짜기는 1998년 12월 충청남도 무형문화제로 지정됐다. 초대 기능보유자는 운곡면 후덕리 고 양이석(2대) 씨이며, 며느리인 고 백순기(3대) 씨가 기능을 보존·전승했다. 그러나 백순기 씨가 4년 전 사망, 2년간 공백기를 거치다 지난해부터 차남인 이석희(67) 씨와 부인인 김희순(67) 씨가 귀촌해 가업을 잇고 있다. 

베틀 볼 때마다 어머니 생각에 ‘뭉클’
“집안에 있는 춘포를 짜는 옛날 베틀과 여러 직조 기구를 볼 때마다 밤마다 베를 짜던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길쌈을 했었고 어머니와 아버지 또한 춘포를 짜고 팔아 우리 5남매(2남 3녀)를 키우셨습니다. 이제는 부모님의 뒤를 이어 저희 부부가 가업을 잇고 있습니다.”

옷감짜기 체험장에는 대대로 내려온 옷감제작 도구들이 전시돼 있다.
옷감짜기 체험장에는 대대로 내려온 옷감제작 도구들이 전시돼 있다.

운곡면 후덕리 이석희·김희순 부부는 대전에서 생활했지만, 가업을 잇기 위해 지난해 본가로 귀촌을 했다.
이석희 씨는 춘포 짜기 3대째 장인인 고 이상준·백순기 부부의 차남이다. 기능보유자인 어머니의 유지는 며느리 김희순 씨가 이어받았고, 현재 기능전수자에서 기능보유자가 되기 위한 최종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이석희·김희순 부부는 동갑내기로 남편은 운곡면 후덕리, 아내는 위라리에서 태어나 같은 초등학교를 다닌 선·후배 사이다. 유년시절부터 함께 자라왔기에 서로를 잘 알고 배려와 이해도 깊어 고향으로 정착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씨는 “어릴 적에는 부모님이 춘포를 짜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크게 몰랐다. 그러나 막상 가업을 이으려고 하니 손이 많이 가고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무엇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본격적으로 춘포를 짜려고 하니 모르는 것이 많았고 배울 수 있는 곳이 주위에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석희(오른쪽)·김희순 부부 집 앞에는 춘포 유래가 적힌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이석희(오른쪽)·김희순 부부 집 앞에는 춘포 유래가 적힌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아내에 대해서는 “저를 믿고 다시 고향에 내려와 줘서 고맙고, 어머니 뒤를 이어 기능보유자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4대 전수자인 김희순 씨도 “남편과는 같은 지역에서 자랐고, 어린 시절 친정집에서도 길쌈을 해 춘포 짜기가 생소하지는 않았다. 결혼하고도 시할머니와 시어머니가 춘포를 짜는 것을 봤었고, 옆에서 거들면서 배웠다. 그러나 전업으로 배운 것이 아닌 옆에서 보조 역할만 했기에 시어머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고 회상했다.
이어 “지금은 기능전수자 위치로 지난해 예비심사를 통과했고, 기능보유자 최종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며 “남편과 함께 청양 춘포 짜기를 충남은 물론 전국에 알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옷감 짜기 체험학습장 조성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언젠가 관공서에서 전화가 온 적이 있어요. 춘포 짜기가 전수되지 않고 본가 또한 운영되고 있지 않으니 기능보유 자격을 반납하면 안되겠냐고. 물론 안된다고 했죠. 몇 대를 걸쳐 내려온 맥을 끊으라고 하니 화가 나더군요. 그럼 내가 뒤를 잇자 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김희순 씨가 지난 4월 열린 칠갑산장승축제에서 누에꼬치에서 명주실을 뽑고 있다.
김희순 씨가 지난 4월 열린 칠갑산장승축제에서 누에꼬치에서 명주실을 뽑고 있다.

아들 이씨는 기능보유자였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고향집을 방문하고 깊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도로변에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제 제25호 춘포짜기’ 표지판이 세워져 있으나 정작 이정표를 따라 온 고향집은 제대로 관리가 안 돼 잡초가 무성하고 집안 수리도 필요해서다. 그렇다고 가업을 이어받을 형제도 뚜렷하게 없어 고민했다.
이에 이씨는 대전에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춘포 짜기 맥을 잇는 가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집안 정비다. 낡고 오래된 집은 곳곳이 고칠 곳이 많았고, 수리와 리모델링에만 수억 원이 들어갔다고 한다. 웬만한 전원주택을 몇 채 짓고도 남을 비용이 들어간 것이다.
이씨는 “요즘 같은 세상에 춘포만 짜서 팔아 생계를 유지하기란 힘들어요. 옷 한 벌 만드는데 필요한 춘포 한필을 짜기 위해서는 7~10일 걸리니까요. 이 때문에 부모님도 농사와 춘포 짜기를 병행하면서 자녀를 키우셨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춘포 짜기를 무형문화재로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널리 알리는 체험학습장으로 만들면 어떨까? 라고 생각했고, 계획대로 실행에 옮기고 있어요.”

춘포 설명을 드든 학생들
춘포 설명을 드든 학생들

이씨는 먼저 생가를 체험학습장으로 만들고 주변 토지를 방문객들을 위한 시설로 꾸미고 있다. 
먼저 가족과 어린이들을 위한 볼거리로 연못을 만들고 관상용 잉어 등 다양한 물고기와 연꽃을 심었다. 또 옷감 짜기 체험장 인근 토지에 모시와 삼, 뽕나무 등을 심어 춘포를 만드는 전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뽕나무 잎은 누에의 먹이로 명주를 만드는 재료가 된다.
이밖에 마을 뒤편 야산에 맨발로 걸으면 힐링할 수 있는 황토길 산책로를 구상하고 있다.

아내 김씨도 “남편이 춘포 짜기에 갖고 있는 열정이 매우 커요. 시부모님의 영향도 있겠지만, 춘포를 널리 알리고 싶어 해요. 그래서 옷감 짜기 체험장을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알리고 싶어 해요. 저 또한 아이들에게 춘포 짜기를 설명하고 베틀을 활용한 직조방법을 시연하면서 긍지를 갖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집안 대대로 내려 온 청양 춘포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전통을 지키기 위해 어려워도 한다고 하셨어요. 전통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누에도 치고 모시도 재배 했구요. 저 또한 남편과 함께 전통방식 그대로 춘포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라고 덧붙였다.

전시관 세워 후세까지 알리고 싶다
이석희·김희순 부부의 가장 큰 바람은 춘포 짜기를 자세히 알리는 전시관이 세워지는 것이다.
전시관 건립은 3대 기능보유자인 고 백순기 씨 생전에 거론됐었다. 시기는 백씨가 2001년 전통문화가정으로 지정된 후 각종 공예품경진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서 한국의복 맥을 지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백씨가 고인이 되면서 전시관 건립이 미뤄지고 있다.

이씨는 “어머니의 전통방식 춘포 짜기 솜씨는 전국에서도 알아줄 정도여서 각종 신문과 방송, 잡지 등에 소개됐습니다. 주위에서 관심도 많이 가져주셨고요.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관심이 예전같이 않은 것 같다”고 서운함을 내비쳤다.
지난해부터 옷감 짜기 체험장을 임시로 운영했는데 인근 초등학교는 물론 세종시와 내포시 학교에서도 문의와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청양 춘포를 알리기 위해서는 전시관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씨의 주장이다.

이씨는 “집안에는 물레, 베틀, 왕채, 모시톱, 부티(베를 짤 때 베틀의 말코 두 끝에 끈을 매 허리에 두르는 넓은 띠) 등 4대를 내려온 옛 도구들로 가득 차 있다. 별도의 전시 공간이 없어 방과 마루 등을 개조해 전시하고 있지만 공간이 협소해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전시관 건립에 필요한 부지는 어떻게 든 마련할 수 있지만 건물 짓는 것은 현재로서는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전하고 계승한다는 큰 뜻이 있는 만큼 지자체에서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바랐다.

한편 이씨는 춘포 짜기에 필요한 도구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남다른 손재주가 있는 그는 오래되고 낡은 도구가 부서지거나 파손되면 주위에서 재료를 구해 직접 제작하고 있다.
이씨는 “옛날 도구는 주위에서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 흔히 말하는 골동품이라고 하죠. 만드는 곳도 없고, 그래서 직접 제작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행인 것은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지인이 서천시 베틀장 제작 윤주열(충남 무형문화재 52호) 장인을 추천, 베틀 제작에 필요한 가르침을 전수하고 있다는 것. 이씨는 이 때문에 아내 김씨의 춘포 짜기에 필요한 도구를 제작해 제공하면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현재 운곡면 후덕리 춘포 짜기는 4대 이석희·김희순 부부에 이어 5대는 딸인 이재영(41) 씨가 기술을 배우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