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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딸 둘 씩 행복이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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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딸 둘 씩 행복이 가득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2.07.29 18:03
  • 호수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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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수필 - 코리아나 화장품 유상옥 회장
코리아나 화장품 유상옥 회장
코리아나 화장품 유상옥 회장

주말 아침, KBS ‘남북의 창’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북녘의 뉴스가 나온다. 
옷을 곱게 차려입은 어린이가 나왔다. 한국 어린이라고 예쁘게 차려 입혔다고? 아니다. 북한 방송에 나온 아이다. 북녘은 저렇게 어려서부터 화려하게 차려 입혀도 되는가. 세 쌍둥이가 30대의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것이 자랑스러워 고운 옷을 입히고 TV에 나와 너스레를 떠는가 보다. 아니 쌍둥이도 아니고 세 쌍둥이니까.

국민들이 다 아는 일이지만 대한민국은 출산율이 떨어져 큰 걱정거리다. 그 귀여운 아이 낳기를 꺼리는 젊은 세대에게 출산을 늘리라고. 국민 모두가 권한 두 아이, 그것이 즐거움이요 행복의 근원이요 인간의 의무입니다. 아가! 깔깔깔
100여 년 전의 부모님은 열다섯의 미성년으로 가마 타고 시집 장가를 왔다. 

혼례복에 갓을 쓴 신랑은 말을 타고 앞장서고. 신랑 앞에는 신부 댁 어른이 수행하고 뒷전에는 짐꾼들이 혼수품을 짊어지고 신부의 가마 뒤를 따른다. 신부의 계절별 고운 옷과 침구, 화장품, 경대, 장롱들도 운반하며 행렬을 이룬다. 
예쁘게 키운 딸이 시집을 가니 온갖 정성 들여 신혼부부의 생활용품을 마련하고 혼가로 보낸다. 그 혼수품에는 ‘수복강녕 부귀다남(壽福康寧 富貴多男)’, 즉 오래 살고 부자가 되라는 기원이 담긴 문자가 즐비했다. 그 시대에는 수명이 짧고 가난하던 시대였기에 ‘수복강녕 부귀다남’ 하는 것이 가장 간절한 소원이었나 보다.

일제강점기에 젊은 여성은 국외로 차출되는 위험에 대비해 조혼에 빠져들었고 의약개발이 미진한 가운데 전염병이 크게 유행하여 많은 사람이 단명했다. 지금은 흔치 않지만 나이 60이 되면 환갑잔치를 성대하게 열어 온 마을 사람들과 친인척이 모여 큰 잔치를 베풀었다. 한국 사람의 평균 수명이 50세였을 때의 일이다. 당시엔 환갑까지 건강히 살기가 어려운 일이어서 환갑을 맞이하면 동네 잔치판이 벌어지곤 했다. 

아이를 낳으면 바로 동사무소나 면사무소에 출생신고를 하여야 한다. 그런데 그 시대에는 홍역이나 다른 전염병에 감염되어 한두 살 내 생명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출생 후 몇 년을 견디어낸 후에 신고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서 실제 생년월일이 관청에 등재된 날짜와 다른 사람이 있다. 차이가 있는 사람은 학교 입학일자나 군 복무일, 직장의 정년퇴직 일이 다르게 다뤄진다. 정확한 생일을 신고할 의무를 그 친권자가 위반해 착오가 생기는 일이 일제강점기 때 많았다.

필자는 8살에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한 학급에 두세 살 나이가 더 먹은 아이가 같은 학급에서 배웠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국력이란 것은 없다시피 했다. 병원 치료나 의료 기술이 미진하고 또한 치료 의약품의 미개발 또는 경제 능력의 취약, 전염병 또는 홍역의 영향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많았다. 또한 평균 7~8명, 많으면 10명까지 낳으며 다산하는 사회였지만 출산율이 아무리 높아도 의료시설이나 기술이 낙후되어 유아사망률이 또한 높았다. 해방 후 국민의식이 높아지고 의료 기술 및 환경이 발전하면서 둘 셋만 낳아 잘 기르자는 것이 보편적인 사회적 관습이 됐다. 

2010년대로 들어서면서 4차 산업시대를 맞아 한국의 인구 출산율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OECD국가 중 최하위 출산율 0.8인, 기가 막히는 대한민국 참사다. 아이를 더 낳읍시다. 
혼인해 부부가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면 그 가정은 참으로 행복하다. 아이를 여러 명 낳으면 경제적으로 어려움, 의료면의 난관, 교육 환경의 곤란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으로 세계 200여 국가가 공존하는 시대에 적은 인구로는 힘 있는 국가 건설이 어렵다. 

60~70년대의 출산세대는 아이를 둘 셋 정도 낳았는데 필자의 경우도 2남 1녀를 두었다. 
세 아이를 키우는 재미가 있었다. 용두동에서 10명의 식구가 우글우글 살았다. 경희대학교 부속학교에 있는 회기동으로 집을 옮겼다. 이 곳에서 출생한 딸에게 무용, 음악 과외를 시키는 것이 엄마의 큰 즐거움이었다. 그 아들과 딸이 성장해 자손들을 낳았다. 세 남매가 낳은 아이는 넷이다. 섭섭하다.

지난 주말, 회갑지난 아들 생일날 가족들과 생일상을 함께 하고 돌아와 큰 손자에게 물었다. 
“너 몇 살이더라?” “서른이에요.” “음 그럼 갈 때 됐구나”
“할아버지 급할 것 없어요.” 옆에 있던 다른 손자가 말한다. “저도요”
“아하 늦어지는구나, 너희들 아들 딸 하나씩은 꼭 두어야 한다. 아들이 없으면 우리 족보에서 빠진다.”
“알았습니다.” “장하다 내 손주들.” 
그것이 온 집안의 행운이지. 한 부부가 아들 딸 나아 기르면 그 가정은 행복이 가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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