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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매서운 날씨 그리고 따뜻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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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매서운 날씨 그리고 따뜻한 사람들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1.12.29 10:16
  • 호수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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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기고 : 유철남 경기도 고양시 거주(대치면 상갑리 출신)
유철남 경기도 고양시 거주(대치면 상갑리 출신)
유철남 경기도 고양시 거주(대치면 상갑리 출신)

겨울은 춥고 배고픈 계절이었다. 흙으로 벽을 한 초가집에 허술한 난방과 얇은 창호지로 막아놓은 방 문, 물려받아 입는 낡은 겨울옷과 얇은 검정 고무신만으로 겨울은 추웠다. 그래도 산골 아이들은 추위에 움츠리지 않고 강인하게 이겨냈고 나아가서는 가장 역동적인 시간으로 즐겼다. 제 손으로 만든 작은 도구만으로도 충분히 흥미 있고 신나는 시간을 만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나면 아이들은 떼를 지어 썰매를 어깨에 둘러매고 얼음을 지칠만한 논으로 갔다. 작은 고개를 넘어가면 길가의 넓은 논에 물이 단단하게 언 넓은 논이 있었다. 아이들이 육동(六洞)에서 모이는 곳이다. 겨울의 햇살아래 유리면 같은 논에 썰매를 내려놓으면 그때부터 가슴이 설렜다. 꼬챙이도 날카롭고 튼튼하다. 손바닥만 한 썰매 위에 발을 올리고 힘차게 얼음을 민다. 솔향기 가득한 골짜기를 회색 날개를 빛내며 내리쏘는 새매처럼 날았다. 바람 가르는 소리가 귓가로 들렸다.

자치기는 일 년 내내 했지만 주로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했다. 도구는 약간 긴 막대기와 한 뼘 정도 되는 작은 나무, 자와 메뚜기가 전부다. 이것들은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었다. 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치솟아 오르는 메뚜기를 보면 파란 하늘이 도화지처럼 펼쳐졌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하늘을 나는 듯이 자랑스러웠다. 자신이 쳐 올린 메뚜기가 바람을 가르며 멀리 날아갈 때는 마음도 함께 날았다. 내리는 눈을 맞으며 하는 자치기는 더욱 시원하였다. 날리는 눈발 속에서 하늘 높이 날아오른 물체는 하얗게 밀려오는 눈을 헤치고 더욱 시원하게 날아갔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이나 밭은 놀이에 더없이 좋았다. 땅이 좀 울퉁불퉁해서 그렇지 그 드넓은 밭에서의 놀이는 마음까지 넓어지게 하였다. 놀이에 빠지다 보면 온몸에 땀도 나고 때마침 부는 바람은 차라리 시원했다. 한 번 세게 치고 나면 그때부터는 눈대중과 상대방과의 협상이다. 협상이 깨지면 바로 실측에 들어갔다. 대개는 그냥 수긍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일일이 재보아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고 어떤 때는 실갱이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어떤 해 겨울에는 대학생 봉사단이 우리 마을을 방문하였다. 남녀 10여 명으로 구성된 봉사단은 마을의 한 집에서 숙식을 하면서 우리들에게 간단한 수업이나 노래를 가르쳐주고 체육활동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놀이를 가르쳐 주었다. ‘한마음 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의 그들은 마을에 어려움이 있으면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고, 아픈 사람들에게는 의약품을 갖고 다니면서 정성껏 치료도 해 주었다.

천사와 같은 분들이었다. 추운 날씨에 학교에 가기가 귀찮을 뿐, 가기만 하면 어떤 놀이보다 즐겁게 놀 수 있었고 또 귀한 간식까지 먹을 수 있었다. 대학생 선생님들은 각자 특기와 개성이 있었다. 아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그 분들의 이름이나 별명을 부르며 친하게 대했다. 우리가 무엇을 해도 잘했다고 칭찬하고 푸짐하게 상도 주었다. ‘세상에 저런 사람들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분들은 아직까지 못 보던 먼 세계에 대한 동경을 주었고 미래에 우리가 이루어야 할 꿈을 주었다.

끝없이 길기만 할 것 같은 방학도 어느새 끝이 보이고 개학과 함께 이별할 때가 되면 모두들 아쉬워하면서 그날이 천천히 오길 기원했다. 그 분 헤어진 후에 한 번도 다시 뵙지 못하여 인사도 못 드렸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산골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해주신 천사와 같은 그분들께 새삼 감사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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