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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땀 한 땀 고운 삶 감칠레라 – 규방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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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땀 한 땀 고운 삶 감칠레라 – 규방공예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1.12.22 11:16
  • 호수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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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토할미 웃고 이르되, “각시님네, 위연만 자랑 마소. 이 늙은이 수말 적기로 아가시내 손부리 아프지 아니하게 바느질 도와 드리나니 고어에 이르기를,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 뒤는 되지 말라 하였으니, 청홍각시는 세요의 뒤를 따라다니며 무삼 말 하시나뇨. 실로 얼골이 아까왜라. 나는 매양 세요의 귀에 질리었으되 낯가죽이 두꺼워 견댈 만하고 아모 말도 아니 하노라.”~’- 작가·연대 미상 「규중칠우쟁론기」 부분. 

오방색 보자기입니다. 황색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청색, 남쪽으로는 적색, 서쪽으로는 백색, 북쪽으로는 흑색입니다. 음양오행설에 의한 우리의 전통 색상입니다. 귀신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의미입니다. 가족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한 땀 한 땀 감침질로 만든 조각보입니다. 될 수 있는 한 가늘고 작게, 꼼꼼하면서도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바늘땀을 뜬 것이지요. 

대하소설 속 여인들처럼, 조선시대의 여인들은 남성들과 격리돼 있었습니다. 가옥 구조에도 남성은 사랑채, 여성은 안채로 공간을 따로 만들어 생활했습니다. 여성들의 생활공간이 되는 안채의 방, 여성들의 거주 공간, 규방입니다. 규방은 흔히 고요하고 조심스러운 곳으로 수를 놓거나 책을 읽는 여인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여인들의 한이나 원망, 내밀한 생활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규방공예는 옛 여성의 삶의 철학이 깃든, 여성만의 생활문화였습니다. 여인들은 천조각과 색색의 실로 자신들의 욕구를 표현했으며, 생활적인 지혜를 담아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실용품을 만들었습니다. 미적 아름다움까지 곁들인 한 점 한 점의 예술품이 된 것이지요. 감각과 안목이 어우러진 자기만의 색을 찾아 모형을 만들고, 나다운 것을 찾으려 바느질을 하였습니다. 

골무와 실패, 바늘방석을 만들었습니다. 복주머니, 귀주머니 등의 주머니종류와 물건을 싸고, 나르고, 예절과 격식을 차리는 의례용 보자기도 만들었습니다. 보자기는 싸는 물건에 따라 이름도 다릅니다. 사주보, 함보, 폐백보, 기러기보(혼례 때 신랑이 신부집에 기러기를 싸서 들고 가는), 이불보, 탁자보 등 많습니다. 그 외 소품으로 안경집, 수저집, 약낭, 노리개, 조바위, 버선 등을 만들면서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하였습니다.       

규방공예라 하면 뭐니 뭐니 해도 비단조각보가 대표격입니다. 손바느질로 자투리를 이은 조각보는 포장 수단인 보자기에서 발전된 것이지요. 복을 싸는 보자기의 개념에, 작은 조각이라도 절약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한 조각의 천도 구하기 어렵던 시절이었으므로 폐품을 활용했다는 의미 외에도, 조각 조각을 이으며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어머니의 깊은 정성과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겠지요. 대부분의 조각보는 오방색을 비롯한 밝은색을 많이 써서, 나쁜 기운을 떨치고 복이 오는 것이 바람이었습니다. 
 

바느질 도구들의 이야기인 조선시대의 한글 소설 「규중칠우쟁론기」가 있습니다. 여성들만의 바느질이다 보니 7가지 바느질 도구 역시 여성으로 설정된, 규방에서만 벌어질 수 있는 내용의 글입니다. 자(척부인), 가위(교두각시), 바늘(세요각시), 실(청홍각시), 골무(감투할미), 인두(인화낭자), 다리미(울낭자) 가 규중칠우로 등장합니다. 
주부인은 바느질을 하다 낮잠이 들었지요. 소설 속의 규중칠우는 옷을 짓는데 있어, 서로 자신의 공이 크다고 다투며 불평을 털어놓습니다. 떠드는 소리에 잠에서 깬 주부인은 “너희가 공이 있다한들 내 공만 하겠느냐”며 책망하고 다시 잠에 빠지자, 규중칠우는 부녀자들이 자신들에게 가하는 부당한 대우에 불평을 토로합니다. 잠에서 깬 주부인은 화가 나 모두 쫓아내려 했으나, 감투할미가 용서를 빌어 모두 무사하게 됩니다. 작가는 자기 공을 내세우느라 남을 헐뜯는 것을 능사로 삼는 등장인물을 통해, 인간사회의 능란한 처세술과 공로를 서로 다투는 것을 풍자한 내용입니다. 

중재자 감투할미, 경상도골무를 손가락에 끼어봅니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단순히 손끝을 보호하는 골무의 역할 이상으로 공을 들여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귀엽고, 앙증맞습니다. 골무 양면에는 뱀이 똬리를 튼 모양으로, 면실을 둥글게 여러 번 돌려 도톰하게 만들었습니다. 바늘에 손가락이 찔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지요. 예전의 경상도 처자들은 시집을 갈 때 100개의 골무를 만들어 갔다고 전해집니다. 시댁에 솜씨를 보여주는 역할도 했겠지만, 온갖 정성을 쏟아 백 개의 골무를 만들며 새로운 생활에 대해 무탈과 행운을 빌었겠지요.

끝없는 반복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 실속 있는 바느질, 규방공예는 정성과 소망을 담은 소중한 옛 생활사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유물로, 수많은 어머니의 솜씨가 완성돼 전해 내려왔습니다. 만들면서 느끼는 즐거움과 쓰임에서 오는 만족감,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정신적 유산을 이어간다는 것이겠지요. 우리 것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문화적 자부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누구는 새벽별에서, 또 누구는 산 위의 바람에게서, 자신을 만나고 휴식도 하며 새로운 생각도 만납니다. 옛 여인들은 바느질 한 땀을 뜰 때마다 자신을 들여다보며 마음의 길을 나아간 것이겠지요. 생각과 말과 행동을 챙기며, 편안함을 느끼고 행복을 꿈꿨을 것입니다. 아랫목에 이불을 덮고 앉아 감침질과 박음질로 자신을 만들어 가는 여인들을 떠올립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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