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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에도, 시간에도, 한결같은–사철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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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에도, 시간에도, 한결같은–사철나무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1.12.14 09:34
  • 호수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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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장정일 시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부분 
 

둥그스름한 열매의 껍질이 네 쪽으로 갈라지니, 맑고 밝은 주홍색 씨가 보입니다. 씨는 서로 먼저 나오려는 듯 삐쭉빼쭉 얹혀있습니다. 이미 새들에게 소중한 먹이가 된 것도 있고, 아직은 너무 이르다는 듯이 껍질 틈으로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동그스름한 열매와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반짝이는 씨가 초록잎과 잘 어울리는 늘푸른나무, 사철나무입니다.
 

땅이 얼고 눈이 온다는 절기 ‘대설’도 지났으니 본격적인 겨울입니다. 푸석푸석한 갈색 숲속에는 바늘잎나무들의 푸르름이 돋보입니다. 겨울에도 푸름을 간직한 나무들, 상록수라 부르는 늘푸른나무들입니다. 중부지방에 있는 늘푸른나무들은 소나무·향나무·전나무 등의 바늘잎나무이며, 남부지방에서의 늘푸른나무들은 녹나무·가시나무·돈나무 등 넓은잎나무입니다. 

늘푸른나무 중에는 전국 어디서든 사계절 내내 초록을 보여주는 나무가 있습니다. 제주에서 황해도까지 넓게 분포하는 사철나무입니다. 사시사철 한결같이 잎이 푸른 나무라서 이름까지 사철나무로 붙여진 것을 보면, 아마도 늘푸른나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철나무 또한 중부 이남의 바닷가에서 나고 자라 추위에 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겨울을 잘 보냅니다. 공해에도 강하고 키우는데도 까다롭지 않아 도시나 시골 어느 곳에서나 잘 자라지요. 바닷바람과 소금기, 습하거나 몹시 메마른 땅에서도 잘 적응합니다. 햇볕을 좋아하지만, 반그늘 이상의 볕만 있어도 쉽게 뿌리를 내립니다. 

나무를 여럿 뭉쳐 심어도 서로 경쟁하지 않고, 가지를 잘라내도 아무 곳에서나 새싹이 나오는 것이 사철나무의 특징입니다. 6미터까지 위로 커 가는 나무로 크게 자라면 밑동이 굵어지기도 합니다. 꼿꼿한 줄기와 옆으로 늘어지는 가지의 성질로, 둥그런 모양의 보기 좋은 정원수를 쉽게 만들기도 합니다. 자라기도 잘 자라지만, 나무 밑동에서부터 촘촘히 자라나는 여러 개의 가지와 잎이 치밀하고 사철 푸르러 담장 대신 생울타리로 많이 심습니다. 

사철나무는 이른 봄, 추위가 채 가기도 전에 연초록의 새잎이 나며 묵은잎은 떨어집니다. 녹색 줄기도 해가 바뀔수록 회색을 띤 검은색으로 변합니다. 줄기에 마주 달리는 달걀모양의 신선한 초록잎은 가죽처럼 두껍고 반질반질 윤이 나며 질겨서 ‘혁질’이라 합니다. 초여름으로 접어들면 가지와 잎겨드랑이 사이에 망울망울 꽃자루가 생깁니다. 

늘푸른나무, 사철나무는 꽃도 푸르게 핍니다. 연한 흰녹색의 작은 꽃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싱그럽습니다. 앙앙대는 듯한 작은 꽃망울은 꽃을 세상에 내보낼 준비를 오랫동안 합니다. 어느 아침에 봉오리가 터지면서 네 장의 꽃잎이 펼쳐지지요. 빽빽하게 피는 납작한 꽃은 워낙 작고 초록잎과 비슷하여,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가 쉽습니다. 작고 여린 연둣빛 꽃으로부터 나오는 은은한 푸른 향기는 곤충들을 곧잘 불러들입니다. 

한 번 심어놓으면 특별한 관리를 하지 않아도 잘 자라는 사철나무는, 지역에 따라 겨우살이나무, 무룬나무, 개동굴나무, 동청목, 사선목 등으로 부릅니다. 잎의 모양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다릅니다. 잎이 타원형인 무룬나무, 잎이 길어서 긴잎사철나무, 잎 가장자리에 하얀 점이 박혀 흰점사철, 잎에 하얀 줄이 있어 은테사철, 잎에 노란 반점이 있는 금사철, 잎 가장자리가 노란색인 금테사철, 잎에 노랑과 녹색반점이 섞여 있는 황록사철 등입니다. 

한방에서는 사철나무 껍질을 말려 ‘화두충’이라 하며, 이뇨제와 강장제로 사용합니다. 사철나무의 줄기는 아주 질겨서, 껍질을 벗겨 밧줄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동쪽 끝 독도에는, 천연기념물인 사철나무가 몇 그루 있습니다. 독도에 있는 나무 중 가장 오래된 것들입니다. 암반 지역에서 100년 이상을 짠물과 바람을 맞으며 독도를 지키고, 지켜 온 나무들이지요. 경상북도에서는 이 사철나무를 ‘독도 수호목’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을 우리 땅에서 함께 살아온 나무, 늘 푸른 모습으로 우리 곁에서 함께한 나무, 찬 바람을 맞고 있는 나무를 봅니다. 초록이파리에 주홍색 씨가 조랑조랑 달려있습니다. 눈이라도 내리면 이 붉은 씨앗은 얼마나 더 빛이 날까요? 여름에는 흰녹색 꽃으로, 겨울에는 붉은 열매로, 늘 싱그러운 초록 잎을 지닌 채로 살아가는 사철나무의 꽃말 역시 ‘변함없다’ 입니다. 
‘변함없다’, ‘한결같다’, 늘 같은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사시사철 변하지 않는 푸른 나무를 보며 생각합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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