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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덜룩한 세포의 죽음 – 나무껍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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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덜룩한 세포의 죽음 – 나무껍질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1.12.09 16:16
  • 호수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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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나무의 줄기를 둘러싸고 있는 조직, 나무껍질입니다. 나무껍질은 줄기의 형성층(물관과 체관 사이에 있는 층으로, 나이테를 만든다) 바깥쪽에 있는 모든 조직을 말하며, ‘내수피’와 ‘외수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장 바깥쪽의 외수피는 코르크조직으로, 안쪽의 조직을 보호합니다. 양분을 이동시키는 체관부의 바깥 조직이 죽으면, 이 죽은 조직과 코르크층은 원형이나 타원형 등 여러 가지 모양의 딱딱한 껍질이 됩니다. 나무껍질은 방수와 지나친 수분 증발을 막고, 태양광이나 추위로부터 나무를 보호하는 기능을 합니다.

느티나무는 줄기의 둘레가 커지면서 껍질의 모양도 옆으로 길게 늘어나며, 자작나무껍질은 띠나 원통 모양으로 떨어지고, 소나무·단풍나무·버즘나무의 껍질은 비늘조각처럼 떨어집니다. 
나무껍질이 두꺼운 참나무류의 경우는 코르크형성층만 비대해져서 코르크조직이 두껍게 발달하게 됩니다. 코르크층이 발달 되면 병충해나 고온, 저온에 강해집니다. 참나무 중에서도 굴참나무는 줄기의 지름이 40센티미터 정도가 되면 코르크를 얻으며, 포도주 병마개를 비롯한 생활용품이나 공예용품으로 사용되지요.

겨울에 더 빛을 발하는 나무는 단연코 자작나무입니다. 흰색 물감을 바른 듯한 눈부신 나무껍질 때문이지요. 자작나무는 추운 지방에서 자생하는 나무로 1년 중 대부분이 눈에 쌓여있는 곳이 많습니다. 흰색 껍질 역시 추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입니다. 태양의 복사열과 눈의 빛 반사로부터 화상을 막기 위해 나무껍질이 하얗게 발달 된 것입니다. 
자작나무의 얇은 나무껍질은 종이처럼 잘 벗겨집니다. 기름기가 많아서, 천년이 지나도 썩거나 변하지 않습니다. 신라시대의 무덤에서 자작나무껍질에 글자를 새겨놓은 것이 발견되기도 하였으며, ‘천마도’ 역시 자작나무껍질에 그린 그림입니다. 촛불이 없던 시절에는, 자작나무껍질에 불을 붙여 촛불 대용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바이칼지역이 고향이라는 물박달나무는 껍질이 너덜너덜합니다. 회갈색의 껍질은 얇고 너저분하게 갈라졌으며, 작은 조각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껍질은 물에 젖어도 불에 잘 타며, 염료나 벽지로 사용합니다. 자작나무속, 자작나무와 비슷한 사촌 관계인데도 껍질의 형태로 보면 친척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세로로 깊이 갈라지는 소나무껍질은 보기에도 단단합니다. 바깥 껍질은 비늘조각 모양입니다. 안쪽에서 새로운 코르크층이 생기면, 오래된 코르크층은 바깥쪽으로 밀려 나오며 갈라집니다. 그런 껍질로 옛날에는 떡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4~5월이면 거친 껍질을 깎아내고 속의 흰 껍질을 물에 며칠간 담궈 뒀다가 소나무껍질떡인 ‘송피병방(송피떡)’을 만들었습니다. 
 
화려한 잎으로 가을에 더 많은 사랑을 받는 단풍나무의 껍질은 미끈합니다. 어쩌다 뿌리에 물이 부족하거나 영양상태가 좋지 않으면, 단풍나무의 껍질은 툭툭 터집니다. 유난히 얇고 물이 많은 껍질은 겨울철에 더 잘 터집니다. 터진 부위를 벗겨내고 살균·살충제를 뿌린 후, ‘수목상처치료제’를 발라 터진 부위가 세균으로부터 감염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단풍나무 줄기에 새끼줄이나 천을 둘러준 모습이 간혹 보이는 이유입니다. 

단풍이 아름다운 신나무, 빛 고운 물이 들어 변하는 나무로 ‘색목’이라고도 합니다. 검은빛을 띤 갈색 껍질은 물을 들이는 염료로 사용합니다. 군복이나 법복에 빛깔을 들입니다. 상처를 아물게 하는 고약이나 지사제로 쓰이며, 안질약, 통증, 신경통, 관절염 등의 치료에도 효과가 있답니다. 

큰키나무 메타세콰이어의 껍질은 세로로 길게 갈라집니다. 옛날 판잣대문의 나뭇결을 잡아당기면 밑까지 죽 떨어지는 것처럼, 메타세콰이어의 나무껍질도 한쪽 끝을 잡아당기면 길게 따라 떨어집니다. 껍질을 불로 태운 재에, 기름을 재어 발라 화상치료를 합니다. 상처가 난 자리에 바르며 피부의 수포창을 치료하는 것이지요. 

얇은 조각처럼 떨어지거나, 매끄럽거나, 보풀처럼 일어나며 벗겨지거나, 나무껍질은 나무마다 각기 다른 형태입니다. 터진 자리가 줄기와 그물처럼 얽혀있거나 줄기가 갈라지듯이 깊게 골이 파진 껍질 등 사람의 얼굴 생김생김만큼이나 다릅니다. 나무가 살아가는 방법이나 영양상태, 주변 환경에 따라 껍질의 모양도 다른 것이지요. 껍질이 수직이나, 잘게 조각으로 갈라지는 이유는 바로 코르크(세포·형성층·피층)조직이 어떻게 발달하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나무의 영양이 좋으면 껍질도 가지런하지요. 

나무껍질도 사람의 피부에 있는 때와 같이, 제 역할을 다하면 떨어집니다. 봄이면 연둣잎이 나오듯이 계절에 맞춰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껍질 또한 나무 스스로 벗어냅니다. 향 좋은 껍질로 은빛 명함을 만들고, 사랑의 글귀를 쓰는 낭만적인 나무껍질이 있는가 하면, 언제 떨어져 나갔는지 모르는 나무껍질도 있습니다. 죽은 세포가 껍질을 만드는 나뭇가지에, 잎과 꽃이 될 겨울눈을 만드는 겨울 절기, 대설입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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