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5:03 (수)
좋은 달, 으뜸 달, 최고의 달 - 시월 상달
상태바
좋은 달, 으뜸 달, 최고의 달 - 시월 상달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1.11.16 14:44
  • 호수 14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시월 상달 기도떡이니 재수있을 것”이라는 인절미를 한 움큼 받았습니다. 부드럽고 맛있는 떡을 먹으며, 쌀 한 톨에도 작은 우주가 들었다는 글을 떠올립니다. 청남면 내직1리 약수암에서는 매년 시월 상달 초순에 산신제를 올립니다. 산신당 앞에 차려놓은 푸짐한 제상에 정성이 그득합니다. 

우리 옛 어르신들은 음력 10월을 1년 중 가장 좋은 달로 여겼습니다. ‘입동’과 ‘소설’ 절기가 들어있지만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니 ‘소춘(작은 봄)’, 포근한 겨울이라서 ‘동난·동훤’이라 하였으며, 추위를 막기 위해 옷깃을 여민다는 초겨울로 ‘맹동·초동’이라고도 하였습니다. 빨간 단풍과 노란 은행잎이 지기 시작하고 겨울을 날 준비를 마치니 할 일도 없어, 놀고먹기에 좋은 공짜의 달이라 ‘공달’이라고도 하였지요. 십이지신의 시작은 11월의 쥐(子)로 시작하여 다음 해 10월 돼지(亥)로 끝납니다. 그런 이유로 ‘해월(돼지의 달)’이라고도 합니다. 
양월, 곤월, 응종, 소양춘 등 역시 음력 시월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입니다. 많은 이름만큼이나 한 해의 농사가 다 끝나가니, 사계절 중에서 가장 풍요로운 때이기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1년 중 가장 길하고 으뜸가는 달이라 ‘상달·양월’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시월 ‘상달’의 상(上)은 위라는 뜻도 있지만, 신성함과 최고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시기는 일 년 내 농사가 마무리되고 곡식과 과일을 수확하여 하늘과 조상께 감사의 예를 올리는 가장 좋은 달입니다. 따라서 10월은 풍성한 수확과 더불어 신과 인간이 함께 즐기기 좋은 달로, 열두 달 가운데 으뜸가는 달로 생각하여 상달이라 하였답니다. 
 
고대 한민족은 5월과 10월에 천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5월에는 씨를 뿌리면서 풍성한 열매가 맺기를 기도했고, 10월에는 한 해의 농사가 끝나 하늘에 감사의 의식을 거행했던 것이지요. 
추수에 대한 감사와 관련해서는, 나라에서 주관하는 제천의식과 마을 단위로 올리는 동제와 개인적인 고사가 있었습니다. 동제는 마을을 수호하는 신에게 주민들의 편안함과 풍곡이나 풍어에 감사하는 성황제·서낭제·산신제·당고사·산치성·풍어제 등이 있습니다. 여염집에서는 작은 정성으로 소소하게 올리는 ‘고사’가 있었지요. 

조선 후기의 학자 홍석모는 연중행사와 풍속들을 정리한 책 「동국세시기」에서, 인가에서는 10월을 상달이라 하여 무당을 불러 성주신을 맞이하고, 떡과 과일을 차려놓고 집안이 편안하기를 기원한다는 ‘성주 고사’ 풍속에 대해 말했습니다. 성주신은 집안을 수호하는 신들의 우두머리로, 집을 짓고 지키면서 집안의 모든 일이 잘되도록 관장하며 대주(가장)와 운명을 같이합니다. 
10월 상달에는 가을고사, 시월고사, 안택, 도신제, 상달고사 등 지역에 따라 고사를 올렸습니다. 조상과 가신을 위한 고마움의 표현이었지요. 고사떡 등 음식 또한 추수 감사의 뜻이 담겼으므로 이웃들과 나누어 먹습니다. 

하원, 10월 보름에는 시제를 올리는 집이 많습니다. 도교에서는 하늘의 신선이 일 년에 세 번, 인간의 선악을 살피는 때를 ‘삼원’이라 하여 제사를 올렸습니다. 정월 대보름(上元)과 칠월 보름(中元)과 시월 보름(下元)을 말합니다. 시월은 해(亥)의 달로 술이 잘 익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신과 인간에게 좋은 달이자 하늘문이 열리는 신성한 기운의 달이기 때문입니다. 

시월 ‘상달고사’는 거의 모든 집에서 좋은 날을 잡아 조촐하게 지냈습니다. 집안에 탈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을 지키는 신들을 위해서였습니다.
벼바심이 끝나면 햅쌀과 팥으로 ‘가을떡’을 하였습니다. 떡을 잘라 장독대, 곳간, 굴뚝, 부엌, 대문, 뒤꼍, 변소, 벽장 등 집안 곳곳에 한 조각씩 놓습니다. “한 대문 안에서 같이 사는 미물도 한식구니 같이 먹어야 동티(동토)가 안 난다” 며 어머니는 빠짐없이 떡접시를 놓으라고 하였습니다. 농사를 짓는 모든 집에서 고사를 지내고 떡을 돌리다 보니, 음력 10월에는 자주 팥떡을 먹었습니다. 
  
시월 상달에는 겨울맞이 풍습도 많았습니다.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에는 첫눈을 받아먹거나 쌓인 눈을 한 움큼 먹는 풍속이 있었는데, 편두통이 사라지고 속앓이가 낫는다고 하였습니다. 용날이나 뱀날에는 초가지붕의 이엉을 새로 갈았습니다. 용과 뱀은 물에 사는 동물이기 때문에 집에 불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답니다. 성주단지를 햅쌀로 바꿔 채우고, 김장김치를 담갔습니다. 날씨점을 치기도 하였습니다. 무가 땅속 깊이 박히거나, 초하룻날 날씨가 추우면 그해 겨울은 춥다고 여겼습니다. 
   
들뜨고 화려한 양력 10월과 두서없이 바쁘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사이의 11월은, 음력 시월 상달이 들어있어 더불어 빛이 납니다. 신과 인간이 함께 즐기며 겨울을 준비했던 최고의 달에, 옛 어르신들의 풍요롭고 여유롭던 마음처럼 우리의 마음도 풍성했으면 좋겠습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