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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하늘로 오르는 길 – 학교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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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하늘로 오르는 길 – 학교 가는 길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1.09.27 17:22
  • 호수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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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봄을 기다릴 줄 안다/기다려 다시 사랑은/불모의 땅을 파헤쳐/제 뼈를 갈아 재를 뿌리고/천년을 두고 오늘/봄의 언덕에/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사랑은/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사과 하나 둘로 쪼개/나눠 가질 줄 안다/너와 나와 우리가/한 별을 우러러보며’ - 김남주 시 ‘사랑은’ 전문
  
당연한 교육의 권리, 장애라는 이유로 그 권리를 받지 못한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나서서 이루어 낸 성과인 ‘서진학교’, 17년을 기다린 특별한 학교에 대한 기록영화가 몇 개월간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꽃처럼 아름답게 별처럼 빛나게’, 서진학교의 교훈입니다. 누구에게나 꽃 내음을 전하는 꽃처럼 귀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빛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청양고등학교, 현관 머리 벽에 걸린, 활짝 핀 코스모스 속의 시 ‘가을은’을 읽습니다. “학생들이 학교에 오면 꼭 거쳐야 하는 곳이 교문과 현관 출입굽니다. 김경수교감이 계절별로 벽시를 게시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제시했고, 모두 동의하였습니다. 봄에는 정호승의 ‘봄길’을, 여름에는 도종환의 ‘담쟁이’, 그리고 가을에는 김남주의 ‘사랑은’을 벽시로 걸었습니다. 시 추천은 국어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합니다.” 

“요즘은 아이들이 신동엽과 김남주를 시인으로 모르고 연예인으로 알아 안타까웠다. 사과 하나를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수 있는 사랑, 평범해 위대한 사랑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축 늘어진 어깨, 책상에 엎드린 고개를 들고 가을하늘을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벽시는 걸림돌이 아니라 하늘로 오르는 새 곳을 향해 가는 사다리이자 징검다리다.” 한문을 가르치는 신경섭교사는 가을시 선정 이유를 말합니다. 

등교 시간, 노란 줄무늬가 있는 커다란 고양이 두 마리가 현관 한가운데에 길게 누워 있습니다. 나가라고, 저쪽으로 가라고 몸을 일으키고 간지럼을 태워도, 고양이는 꼬리만 까딱거릴 뿐 꼼짝을 안 합니다. 몇몇 선생님들에게 걱정이 생겼습니다. 교장선생님 오시기 전에 고양이를 멀리 보내야 하는데, 정작 고양이는 눈을 감고 누운 채로 긴 혀를 날름거리며 하품만 짝짝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청봉아! 부르며 귀엽다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두 마리 고양이는 집 없는 고양이입니다. 학생들이 밥을 주다 보니, 학교 건물 안에 자주 들어와 지금은 독립시키려 하는 중입니다. 
 

녹색보석나무에 귀하게 피는 연노랑꽃이 맺혔습니다. 복도에는 특수반 졸업생이 볶는 커피향이 가득합니다. 학교의 여기저기에 시가 붙어있습니다. 거울 아래쪽이나, 가구의 문에도 시가 있습니다. 김수영, 한용운, 이해인, 등등의 시, 시가 많은 학교입니다. 
 
시가 있는 학교의 3개 학년 21학급에서는 주제가 있는 캠페인을 학급별로 돌아가며 합니다. 오늘은 ‘동북공정의 문제점’에 대한 캠페인으로, 김치와 태권도와 한복을 예로 들어 당연한 것을 지키는 방법은 제대로 알기임을 강조합니다. ‘쓰레기 분리수거’, ‘유기동물의 보호와 조치법’ 등, 지난번 1학년 4반은 ‘위안부’에 대한 캠페인을 하였습니다.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나, 경각심을 가져야 할 사건에 대한 알림이며 행동이지요. 
 
교문 앞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어서 오라고 반갑게 인사하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선생님께 제 이름을 기억하냐고 큰누나 대하듯 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 참 착하지요?” 학생부장선생님의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을 보면서, 학교가, 학교에, 다시 다니고 싶어집니다.     
 

70년대 중반에 다녔던 여고(?)시절을 떠올립니다. 학창 시절 얘기라면, 호되게 선생님으로부터 맞은 내용이 빠지지 않습니다. 책상을 맞대고 앉았던 내 짝꿍은 은연중에 선생님의 사투리를 흉내 냈다고 조막만한 얼굴을 엄청 맞았습니다. 선생님의 막대 같던 뭉툭한 손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한 친구는 선생님을 째려보지도 않았는데, 째려보았다고 또 엄청 맞았답니다. 읍내에서 다니던 친구가 지각한 날, 읍내에 살면서 지각한다는 선생님의 꾸중에 ‘읍내서 산다고 왜 지각할 일이 없느냐’고 말대꾸를 한 나는 지각한 친구 대신 또 엄청 맞았지요. 선생님을 이해하면서도, 이해한다고 해도, 안 되는 이해, 뒤끝이 오래오래 지금까지 남습니다. 

‘학교 가는 길’이 즐거운 학교가 많습니다. 학생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관심을 보여주시는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는 협력하고 어울릴 수 있는, 제대로 된 인성과 공동체에 꼭 필요한 시민성을 키워주는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생님들 덕분이며, 존재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내가 될 수 있기를 가르쳐주는 선생님들 덕분이지요. 
발걸음을 떼는 한 발 한 발과 웃고 떠드는 소리 한 음절 한 음절이 다 시가 되어 날아다니는 학교는, 학생들을 별로 보고 꽃으로 보는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각종 시험이나 경쟁 속에서도 참 착하게, 참 순하게, 보편적 진실을 배우며 사과 하나를 둘로 쪼개 나눌 줄 아는 너와 나를 만드는 학교 또한 선생님들 덕분으로, ‘학교 가는 길’은 늘 즐거울 것입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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