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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 남산골 소사영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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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 남산골 소사영 훈장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1.07.19 11:09
  • 호수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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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소리 나면 배고프기 마련이쥬”

“원청소마을 앞에 ‘최병대선생송덕비’와 ‘일사정’을 세운 것이지유. 최병대선생은 아주 훌륭하신 분이셨쥬. 예산군 덕산면 분으로, 일제강점기에 일왕의 생일 행사장서 폭탄을 던지고 잡혀 총살된 윤봉길의사에게 한학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정산과 청남에서 이십팔 년간 피난 생활을 허셨지유.”
‘일사정’은 천내2리 강가에 있는 정자로, 두문동72현(조선 개국에 반대, 두문동에서 고려에 충성을 하며 지조를 지킨 고려 후기의 공신 72명을 말함) 중 한 사람인 담양전씨의 후손들이 천내리로 피난을 내려와 지었던 정자터에 2003년 청양군 지원으로 새로 지은 것입니다. 소사영 훈장님의 최근에 가장 뿌듯한 2점의 성과입니다. 

남산골-남산서당
“국민핵교 4학년 때 해방이 됐지유. 천내리는 예전부터 윤씨, 김씨 등 학자들이 많았유. 한학을 허야만 마을 사람들로부터 무식하게 보이지 않을 것 같아 청소에서 야학으로 3개월 한문을 배우고, 적곡의 홍재준선생님께 1년을 배웠지유. 그 후에 최병대선생님을 만나 6개월 정도 배우다 21살에 군대를 갔지유.”

“군대 갔다 와서는 한문공부를 못 힜지유. 동네 초상나면 쫓아댕기구, 제방공사한다고 돌아대니구, 건달여 건달. 그러다 아는 것이 한문 밖에 읎구, 어르신들도 권허셔서 32살에 여기 남산골서 서당을 차렸네유. 15~16살의 초등핵교를 졸업한 젊은이들이 다만 고지서라도 봐야 된다구 배우러들 왔쥬. 그때는 고지서가 다 한문이었잖남유? 이 근방에는 중핵교가 읍어서 천석꾼아들도 핵교를 못갔지유.” 

“천자문은 어려워서, 처음에는 동몽선습, 명심보감, 효경, 소학, 대학, 맹자, 논어, 중용 순으로 가르칩니다. 글자를 읽고, 풀이하고, 쓰는 차례로 가르치쥬.”

-공부가 어려워서 안 오는 학생은 없었나요?
“그것두 있을규. 그때는 그런 생각이 없었는디 지금 더러 생각하면 그렇게 어렵게 가르치지 말고, 저희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제대로 뜻만 가르칠 걸 왜 그렇게 꼭 오이야(외워야) 된다고 하고, 오이게 했나 그려유. 오늘 배운 것은 내일 다 오이야 되고 책 한 권을 탁 덮고 오이야 다른 책을 가르쳤으니, 애덜이 얼매나 심들었겄나 그 생각이 들더라구유. 책을 전체로 오인다는 것은 어렵쥬. 명심보감은 극히 어렵지유.”
어지간히 하라며, 밖에서 우는 학생이 있다고 어머니와 할머니께서 걱정도 많이 하셨답니다. 
“저두 넘덜은 한 달 만에 읽는 책을 3개월에 읽었으면서유. 명심보감은 3개월에 끝내는 사람도 있는디 나는 6개월이나 걸렸구먼유. 애덜이 어렵다구, 다른 곳의 선생은 그렇게 안 가르친다고 혀두 내 방법이 옳다구 생각혔쥬.”  

“수업료? 1년에 여름이는 보리 닷말, 겨울이는 쌀 닷말인디, 세 말 가져오거나 겉보리를 가져오기두 허구, 군대 가면 또 션찮구. 그리두 일년이믄 여나믄 가마는 들어오니 식구들 죽이라도 끓여먹구 그맀쥬. 여학생? 한 명두 읍었슈. 출세한 제자? 지오 열댓살 먹어 공부힜는디 뭐시라고 출셀혀? 중핵교 들어간 사람들이 많구 특출난 사람은 읍유.”
“왜 읍어? 벼름박을 구멍 낸 사람이 읍나, 말 안 들어 혼내면 글방에 안 와집까지 쫓아가구, 공부하다 나가서 가재 잡는다고 구멍에 손을 넣어 뱀한티 물렸는디 얼매나 뜨끔힜는지. 고연히 글방 헌다고 그런 일 당허구 나니 후회막급허기두 힜지유. 거기가 무궁화낭구호차리(회초리)를 걸어놨던 기둥유. 패보든 안 힜지만, 호차리를 보고 두려움을 느끼라고 걸어놨쥬. 애덜은 쳐다만 봐두 땀이 나거든.”

한학은 꼭 맞아가며 해야 공부가 된다는 훈장님. 등어리를 읃어터지면서 배운 것은 꼭 기억에 남는다고 하십니다.

-회초리도 있었으니,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는 상도 주셨겠네요?
“상? 그런 것은 읎었구, 칠월과 섣달에 부모님들 모셔다 놓고 술 한 잔씩 대접하며 책 오이는 것을 들려주쥬. 부모가 기분 좋으믄 술 한 잔 읃어 먹구. 예전에 육완덕선생님은 공부헌다고 부모님 심부름 안 허는 것은 공부허는 게 아니라고 허셨쥬. 자제분들 가르치는 걸 보면 참 대단허셨쥬. 그거 흉내 내다 어머니한테 ‘애덜 심부름 다 시키고 어느 틈에 공부허라는 거냐’며 꾸중도 들었지만, 공자님도 공부는 할 일 다 하고 나서 남는 시간에 허는 거라고 허셨지유.”   

“첫해는 15명 왔구, 3년간 한 50명 가르치구 문을 닫었슈. 탄천·부여·정산에 중핵교가 생겨 학생두 줄구, 그때는 서당이 여기저기서 생겨 이 동네에도 많았쥬. 요아래두 있구 저더러두 있구 3곳이나 있어,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먼저 문을 닫어야것다는 생각이 들었쥬.”
청남면 천내2리는 닥밭나루, 분창나루, 창강나루가 있어서 강경과 공주로 가는 교통이 좋았답니다. “모종개울이라는 곳이 강가신디, 올라가고 내려가는 배가 다 모여 생선도 싱싱한 놈이 올로구 좋았지유.”

“이 방이 서당방입니다. 할아버지대부터 내려온 우리 집 가훈이 ‘근면·성실·인내’지유. 농촌에 살면 부지런히야허구 건강히야 된다는 말씸을 늘 들으며 큰 탓인지, 지두 애덜헌티 부지런허구, 진실되구, 어려워두 참으야 된다는 것을 가르쳤쥬. 뭘 제자가 있어, 자식덜 훈학헌다구 말짱 외지루 나가고, 또 죽구 그러더라구. 학교나 폭력 있지, 글방은 폭력 읍쥬. 학교폭력이 왜 생기는지 그 원인이나 말씀히 보슈. 아들이 몇 유?”
천장과 벽에는 붓글씨로 써 붙인 한문글이 몇 점 있습니다.
“아들이 갔다 걸어 놨는디, 서울 어느 절 주지스님의 글씨라네유. 내가 봐서는 별거 아닌 것 같은디, 횟수가 좋고 명필글씨라고 허네유.” 
옛날로 되돌아간다면 무슨 일을 하실 것 같으냐 여쭸습니다.  
“글이라는 것이 놓으면 읽어버리기 매련인디…, 귀두 먹구 오이지도 뭇허구, 그리두 옛날로 돌아간다면 해 먹고 살 일이 읎으니 그거라도 허야겄지.”

사랑지기의 한시(漢詩) 사랑 
“서른부터 힜나? 으른들이 시키니께 헌 것이 그냥 좋데유. 옛날에는 지금의 동강리캠핑장 앞에 강정마을이라고 있었는디, 1946년인가 비가 와 주막 두 채만 냉기구 마을이 다 쓸려나갔지유. 그 주막에서 모여 맨날 한시를 젓습니다. 참 그때가 좋았는디, 열심히덜 힜는디 다 죽구 나만 남었네유. 무신년(1968년) 5월에 한시집을 내면서 ‘금남시사집’으로 묶었지유. 천내리 제방공사와 경지정리사업에 쫒아다니느라 그때만 못하고는 한시를 놓은 적이 읍지유. 으른들이 허지 말라는 것은 안 힜으니께. 담배두 안 피구, 화투두 열댓 살에 다 배웠는디 그거 허면 집안 망헌다구 히서 안 허구, 어른들이 먹지 말라는 술만 먹었슈.”
-네? 왜요?   
“글시(詩)자와 술주(酒)자, 대접으로는 아니래도 참 많이 마셨쥬. 술 떨어지면 글도 떨어져.” 

-아호가 ‘동국’이시네요?
“최병대선생님이 지어주셨지유. 동쪽에 국화를 심고 평생 사랑하라는 뜻으로 도연명처럼 욕심부리지 말고 살으라는 거쥬.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건 축복이쥬. 스승의 삶을 통해 나를 알게 되고 기본을 배우고 삶의 방식을 배우기 때문이쥬. 또 스승은 제자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자신 안에 있는 것을 찾게 혀야 하쥬. 스승이 귀한 시대긴 하지만….” 

“지난달에 공주에 가서 ‘단오’를 주제로 한시대회를 허구왔지유. 대전충남유림한시대회로 회원이 한 30명 되나, 한 달에 한 번씩 대회를 열지유.”
대회라 하여 상도 주는 것이냐 여쭸더니, “우리끼리 해도 대회긴 허지만, 오줌을 질질 싸는 노인네들이 하루 논다고 오는디 뭔 상? 한시를 짓고 콩나물대가리를 붙이며 노는 거지. 그것밖에 좋은 것이 읍지유.” 

“어르신들이 아무개는 더 공부하면 잘하겠다 허셨는디, 누구 가르쳐줄 사람이 있으야지. 부여에 한 양반이 기셨는디 작년에 돌아가셨슈. 나보다 열 살 더 잡쉈는디, 97살까지 한시대회 다니셨구유. 글은 읽으야 느는 건디, 전문적으로 하지못혀 아쉽지유.”
  
-한문이나 한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으면 가르치실 생각은 있으신가요?
“어렵지만, 누가 툭 벗어놓고 한번 해본다면 가르치야지 어떡하겄슈. 안다는 것의 목적이 가르치려 하는 것이니. 한시 아는 것 있으슈? 
 
“왜 안 써유? 지금은 떨려서 뭇써유. 언젠가 서울에 갔는디, 애덜이 오딘가 구경 한 번 가자 하여 나섰더니, 현장에서 등록하는 즉석 붓글씨 대회를 하는거유. 밤낮 쓰는 것이 붓글씨니 한번 해보라 해서 그걸 썼습니다. 근디 그게 특선이 된거유. 그렇게 한 번 상 타 봤지유.”

-따님이 현대시인이시죠? 훈장님 생각에 현대시는 어떤가요? 
“그렇대유. 언제가 신문에도 나구 시집이라고 보내와서 읽어봐두 원. 지덜은 멋있다고 그러는디 나는 모르겄어. 어떻게 한시를 따라와유, 한시 따라오려면 어림짝두 읍유.”
 
수시변역(隨時變易)하라 

“새복(벽)에 눈 뜨면 그냥 일어나 앉아 읽는겨. 주역, 서전, 중용, 명심보감의 서문을 낭송허쥬. 날마다 읽으니께 목소리가 나오지 안 읽으면 안 나와유.”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정신이 이렇나 읎는디 왜 치매가 안 오겄소? 그것도 소용읍네뷰.” 

“세월이 이렇게 흘러 보니, 저건 한학자여! 콧구멍에서 연기가 팔팔 나는 한학자라고 남들이 그러는디, 다른 종교에 빠지지 않고 남의 심부름을 힜어두 한학을 해서 신용이 유지됐다는 생각이 드네유. 한학을 안 했으면 나를 그런 걸 시켜 주겄유? 한학을 한 것에 대한 후회는 안 히 봤는디, 다른 사람 안 허는 걸 허니 어렵기는 힜어두.”
진주소씨 선비사 길영 훈장님은 정산향교전교, 모덕사·두촌사·이산사·창강서원(부여)·부산서원(부여)의 도유사(향교, 서원, 종중, 계중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던 우두머리)를 지내셨습니다.

‘경천애인’과 공자의 ‘일일삼성(하루에 3번 반성하라)’을 늘 마음에 품고 사시는 훈장님은, 산 높고 강물 좋고 뻘(들)이 넓어서 인심도 좋을 것 같아 공주 이인에서부터 이사 온 7대조 할아버지로 인해 청남면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유학의 전통을 이어 한문학을 배우게 된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는 훈장님이 명심보감의 서문을 들려주십니다. 부끄럽지만 ‘자왈, 한소열, 장자왈, 태공왈’ 말고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변하는 것을 아는 것이 주역의 햄심이쥬. 천지만물은 멈춘 것 같지만 지금도 변하고 있지유. 양과 음의 기운이 변하는 것처럼 세상은 변하게 돼 있유. 우리 후손들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변화, 대처할 수 있어야 허지유. 변하는 것을 알아서, 옳은 일을 하며 살았으면 좋겠유. 저는 임금을 모시고 삼강오륜을 지키는 사상인디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아뉴, 민주주의가 좋기는 좋지만, 너무 풀어놓고 이러면 안 될 것 같어유. 삼강오륜이 맞지.” 

청양땅은 본래 해동땅이니옛적부터 오는 위치는 금강하고 한가지더라백성을 보호하는 법률은 전 지역에 베풀었고나라를 보호하는 오륜삼강을 모두 외쳤더라백리 농촌에 공평하고 정대한 의론이 떠도니만년을 함께할 세계에 덕의 이름이 높고전하는 풍속이 통달하지 않음이 없으니화려한 강산의 경치가 참으로 좋더라
청양땅은 본래 해동땅이니옛적부터 오는 위치는 금강하고 한가지더라백성을 보호하는 법률은 전 지역에 베풀었고나라를 보호하는 오륜삼강을 모두 외쳤더라백리 농촌에 공평하고 정대한 의론이 떠도니만년을 함께할 세계에 덕의 이름이 높고전하는 풍속이 통달하지 않음이 없으니화려한 강산의 경치가 참으로 좋더라

처음부터 끝까지 말씀을 낮추시지 않은 훈장님께 더 해 주실 말씀이 없으신가 여쭸습니다.  
“와락와락하니 정신이 하나두 읍네유. 이렇게 알두 못하는 사람을 찾아와서 대단히 고마운디 지가 망말되는 얘기나 안힜는지 모르겄네유.”  
신문사에 대한 한시를 써 주신다더니, ‘청양발전축하시’를 한 편 써 주셨습니다. 

옛 남산골 ‘남산서당’의 남쪽으로 낸 창호지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들어옵니다. 오래된 종이 냄새가 물씬 납니다. 문학이 있는 동네, 글이 안 떨어지는 마을에서 훈장님이 읊는 한시 한 구절 한 구절이 빗속을 파고듭니다. 능소화 큰 꽃잎 위로 한시와 비가 섞어 내립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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