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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속에 별이 들어있는 꽃 – 채송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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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속에 별이 들어있는 꽃 – 채송화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0.07.27 11:27
  • 호수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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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불볕이 호도독호독/내려쬐는 담머리에//한 올기 채송화/발돋움하고 서서//
드높은 하늘을 우러러/빨가장히 피었다 – 조운<채송화>
 
 
옛날 페르시아에 사치가 심한 여왕이 있었습니다. 여왕은 보석을 좋아하여 백성들에게 세금도 보석으로 내라고 하였습니다. 어느 날 한 노인이 수많은 보석이 담긴 상자를 들고 여왕을 찾아왔습니다. 여왕은 그 아름다운 보석들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노인은 보석 한 개가 백성 한 명의 몫으로 백성과 바꿀 수 있느냐 물으니, 보석에 욕심이 생긴 여왕은 아무런 생각 없이 승낙하였습니다. 보석이 한 개씩 늘 때마다 백성들은 사라졌지만, 여왕은 아랑곳없이 보석과 백성을 바꿨습니다. 이미 나라에는 백성이 한 명도 없었지만, 여왕은 마지막 남은 한 개의 보석까지도 탐이 났습니다. 망설임 없이 마지막 보석에 손을 대자, 여왕의 모든 보석이 터지면서 여왕도 사라졌습니다. 터진 보석의 파편들이 땅에 떨어져 고운 빛깔의 채송화가 되었답니다. 

옷가게 앞과 막국수집 울타리나 방앗간 문 앞의 화분에서, 미장원 모퉁이에서 알록달록 꽃 피운 채송화를 봅니다. 통통한 줄기는 더이상 낮을 수 없는 자세로 땅에 바짝 붙어, 옆으로 기며 꽃을 피웠습니다. 앙증맞습니다. 

쇠비름과의 채송화는 남아메리카가 고향이지만, 예로부터 쭉 친근한 꽃입니다. 한여름 양지바른 곳에서 밝고 산뜻하게 핍니다. 집 주변을 큰 나무들이 차지하고 있었다면, 채송화는 봉숭아와 나리꽃과 함께 담장 아래를 차지하고 있던 화초입니다. 오밀조밀 모여서 꽃밭의 가장 낮은 곳을 예쁘게 장식합니다. 
붉은빛을 띤 줄기에 살이 오른 원기둥의 뾰족한 연두색 잎사귀는 다육식물을 닮았습니다. 잎겨드랑이에 안개 같은 수염이 있습니다. 
줄기 끝에서 한두 송이의 꽃이 핍니다. 가운데가 갈라진 꽃잎은 다섯 장입니다. 홑꽃 속에 드문드문 겹꽃도 있습니다. 작은 꽃 속에는 흰색 별 모양이 수술과 암술을 받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향기는 없지만 많은 수술이 있습니다. 

꽃은 맑은 날, 햇볕을 받을 때만 채송화는 꽃을 피웁니다. 그것도 오후 2시경이면 꽃잎을 닫고 시들어 떨어집니다. 
채송화는 지역에 따라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 다릅니다. 그래서 꽃 피는 시각에 따라 꽃이름을 붙였습니다. 꽃이 오후에 피는 파키스탄은 ‘오후꽃’, 인도에서는 주로 오전 9시에 핀다 하여 ‘9시꽃’, 베트남에서는 오전 10시에 피므로 ‘10시꽃’이라 부릅니다.       

채송화는 수명이 짧아 하루도 못 가는 대신, 다른 줄기의 꽃이 계속 피고 져 오랫동안 꽃을 보고 즐길 수 있습니다. 오전에는 노랑과 분홍과 붉은 꽃들로 화기애애했던 꽃자리가 오후에는 꽃잎을 돌돌 말은 채 시들어갑니다. 내일 아침이면 새롭게 피어날 꽃들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것이겠지요.     
꽃이 진 자리에 자줏빛 씨앗 주머니가 맺힙니다. 도토리 깍지 모양의 씨앗 주머니 뚜껑을 열면 까만 씨가 가득 들어있습니다. 이 씨앗이 익어 떨어지면 매년 싹이 나와 자라 꽃을 피웁니다. 꽃은 하루살이지만 씨앗은 강합니다. 고온 가뭄에 잘 견디지요. 깨진 아스팔트 길이나 보도블록 사이에서 잘 자란 채송화를 볼 수 있는 이유입니다. 모래밭에 뿌려도 뿌리를 내리는 채송화랍니다. 
  
살이 비치듯 터질 것 같은 잎사귀를 손톱으로 톡톡 누르며 자국을 내던 기억이 납니다. 들릴 듯 말 듯한 소리와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칼로 베거나 철사로 긁히면 살 많은 채송화 잎을 으깨어 상처 위에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풋풋한 비린내를 향기처럼 맡았습니다. 
 
순진하고 천진난만하고 청순하고 가련하다는 꽃말을 가진 채송화는 낮아서 더 겸손합니다. 예전에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던 야릿야릿한 꽃들이 이제는 보기 어려운 꽃이 되었습니다. ‘김지미가 장미 같은 화려한 배우라면, 본인은 장미보다 수수하지만 당당하게 자기만의 색깔로 꽃 피우는 채송화’라고 엄앵란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쪼그리고 앉아 바람에 찡그리는 듯한 가벼운 꽃잎을 봅니다. 보석꽃, 꽃 속에 들어앉은 별이 어쩌면 전설 속의 페르시아 백성은 아니었을까 공상합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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