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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향기를 드립니다 – 때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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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향기를 드립니다 – 때죽나무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0.06.15 11:06
  • 호수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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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우성산 솔밭을 지나 산길을 걷다 보면 발걸음을 조심해야 할 구간이 있습니다. 하얀 꽃길입니다. 떨어진 꽃을 피해 발을 이쪽저쪽으로 옮겨야 할 길입니다. 꽃이 떨어져 날리는 나무를 올려봅니다. 가늘지만 쭉쭉 뻗은 가지에 종종종종 백색 꽃이 매달려 있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예쁩니다.
산길을 걷는 이에게 주운 꽃잎을 보이며 무슨 꽃이냐 물었습니다. ‘때죽나무’꽃이라 합니다. “예전에 이 열매로 물고기 안 잡아봤어?” 푸른 열매를 훑어다 갈아 냇물에 풀으면 물고기들이 기절하여 그때 얼른 물고기를 잡는다며, 그런 시절도 있었다고 합니다. 

흑갈색 껍질의 때죽나무는 산과 들의 낮은 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과 중국이 원산지이며 천연 분포지입니다. 120여 종의 많은 종류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때죽나무가 가장 우수한 품종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성장 속도가 빠르고 추위와 공해와 병충해에 강해 도심지의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입니다. 아름답고 향기 좋은 꽃이 피고, 보기 좋은 열매가 열려 가로수로 많이 심습니다.
스노벨, 야말리나쭉나무, 쫑나무, 노각나무, 때죽 등 지역마다 이름도 특색있게 불립니다. 제주도에서는 족낭(종낭)이라 부른답니다.  
  

때죽나무는 새로 나온 가지에서 꽃대가 나와 대여섯 송이의 꽃들이 모여 핍니다. 나뭇가지의 겨드랑이에 긴 꽃자루가 달리고, 종 모양의 꽃은 땅을 향해 핍니다. 수술이 약간 나온 백색의 꽃들이 조롱조롱 나뭇잎 밑에 달려 출렁거리는 모습은 마냥 보고만 있게 합니다. 당당하게 하늘을 향해 머리를 쳐들고 꽃모양을 자랑할만도 하지만, 수줍은 듯 아래를 보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나뭇잎들이 바람을 타며 밀려왔다 밀려갑니다. 흰 등을 단 초록 돛단배가 파도를 타는 듯합니다. 작은 꽃송이가 날리듯이 떨어집니다. 흰 꽃은 또 흰 꽃끼리 모여 피는지, 국수나무 위로 꽃은 떨어집니다. 산길의 솔가리 위로도 살포시 내려옵니다. 몇 송이의 꽃을 줍습니다. 꽃을 자세히 보려고 얼굴 가까이 올립니다. 향기롭습니다. 다섯 장의 흰 꽃잎과 10개의 노란 수술에서 풍기는 향기는 장미꽃향이나 찔레꽃향보다도 높고 맑고 상큼합니다. 달콤하고 강한 향기는 곤충들을 많이 불러모읍니다.

구월이면 1센티미터 정도의 달걀 모양 열매가 꽃만큼이나 다닥다닥 땅을 향해 맺힙니다. 열매가 익으면 껍질이 터지며 종자가 나옵니다. 종자는 새가 먹어 종족 번식에 도움을 줍니다. 

미끈한 줄기와 예쁘고 향기 좋은 꽃을 키우고 있는 때죽나무는 매력적인 나무입니다. 고마운 점과 까칠한 점이 많습니다. 
때죽나무의 씨에는 여러 종류의 기름 성분이 있어 머릿기름으로 사용합니다. 화려한 향은 당연히 향수의 원료가 됩니다. 아카시아꿀보다 더 향그러운 꿀은 맛이 부드럽고 상쾌하여, 밀원식물로도 인기가 높습니다. 나뭇결이 좋아 나막신을 만드는 재료로도 쓰였답니다. 옛날얘기지만, 물이 부족한 산골지역에서는 빗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때 때죽나무 가지에 띠를 엮어 빗물을 모아두면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았답니다. 빗물이 깨끗해지고 물맛도 좋아서 때죽나무는 귀한 대접을 받았답니다.  
갸름한 열매껍질에는 에고사포닌이라는 마취성분이 있어, 어류의 아가미호흡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옛 어른들이 때죽나무 열매로 물고기를 잡았던 이유였습니다. 

나무껍질이 때가 낀 것 같아서, 열매 독으로 물고기가 떼로 죽어 떠오른다 해서, 열매로 빨래를 하면 때가 말끔하게 빠진다 해서, 등등으로 이름 붙여진 때죽나무의 꽃은 우러러보아야 볼 수 있습니다. ‘겸손’이라는 꽃말처럼 소박한 아름다움을 올려봅니다. 찰랑찰랑 종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꼭 화려한 꽃으로만 사람의 이목을 끄는 것이 아님을 때죽나무는 보여줍니다. 

떨어진 꽃을 손에 가득 주웠습니다. 우성산을 뒤로 한 석조삼존불입상이 보입니다. 온종일, 평생을 서 계신 부처님의 퉁퉁 부은 발등에 향과 꽃을 올립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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