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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 높은 꽃 – 영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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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 높은 꽃 – 영산홍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20.05.23 10:21
  • 호수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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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진달래꽃과 닮았습니다. 철쭉꽃과도 닮았습니다. 꽃은 진달래꽃이 피었다 지고 나서, 철쭉꽃이 피기 전에 핍니다. 꽃의 크기는 진달래꽃보다 약간 작으며, 철쭉꽃보다는 많이 작습니다. 꽃의 색은 진달래꽃이나 철쭉꽃보다 붉습니다. 나뭇가지에 피는 꽃의 수는 진달래나 철쭉보다 훨씬 많은 수로 무리를 지어 핍니다. 꽃에는 진달래와 철쭉에 있는 반점이 없습니다. 진달래처럼 잎보다 꽃이 먼저 핍니다. 철쭉처럼 독이 있어 진달래처럼 먹지는 못합니다. 진달래 같은 야생화가 아닙니다. 철쭉처럼 원예화입니다. 겨울에도 잎이 남아있습니다. 잎도 작고 꽃도 작은 이 꽃은 영산홍입니다. 
 

생물학적 분류상 진달래목 진달래과 철쭉류에 해당합니다. 일본이 원산지입니다. 예전에는 왜철쭉이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같은 과에 속하면서도 진달래와 영산홍은 많이 다름니다. 품종 역시 진달래는 단일품종이며, 영산홍이 속한 철쭉류에는 많은 품종이 있습니다. 
철쭉류는 세계적으로 수백 품종이 개발돼, 화려한 색상으로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영산홍은 조선시대 세종 때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두어 포기 들어온 왜철쭉을 대궐 안에 심어놓고 보니, 꽃이 무척 아름다워 중국의 최고 미인 서시와 같다 하였답니다. 

 

홍자색의 강렬한 꽃은 주변을 온통 화사하게 해 먼발치에서도 눈에 확실하게 들어오지만, 아쉽게도 향기가 없습니다. 영산홍뿐만 아니라 철쭉류 꽃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식물을 다스리는 조물주도 꽃의 아름다움에 어울리는 향까지 주기는 조금 과하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곤충을 유혹하는 것도 향 대신 꽃의 색깔입니다. 통꽃잎 안쪽의 수술 있는 부분이 좀 더 진한 붉은색을 띱니다. 이것은 곤충들에게 꿀샘이 있다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암시하는 것이랍니다. 

조선 시대의 역대 임금 중 연산군은 영산홍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얼마나 좋아했는지 영산홍을 ‘연산홍’이라 부르기도 하였답니다. 집권 말기에는 꽃을 좋아하는 마음이 집착으로 변하였습니다. 후원에 영산홍 1만 그루를 심도록 명하였으며, 늘 영산홍을 확인하였답니다. 다른 어떤 꽃보다 화려했기 때문일테지만, 본인의 마음이 빨강이란 색의 의미에 맞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빨강은 탄생과 정열과 힘을 의미하는 반면, 죽음과 죄와 투쟁을 의미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인조 역시 영산홍을 좋아하여 나라 다스리는 일을 소홀히 할까 봐 중신들이 궁 안에 있는 꽃나무를 전부 베어냈다고 전해집니다. 이토록 영산홍은 예전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유교적 윤리성과 연관하여 꽃의 등수를 매겼습니다. 강희안의 『화목구품』 중 화품론입니다. 꽃의 품격과 운치에 대하여 1품에서 9품까지 꽃의 등급을 나눈 것입니다. 솔, 대, 연, 국화, 매화가 1품이었습니다. 영산홍은 모란에 이어 3품에 속할 정도로 선비들의 안목에 든 것이랍니다.
 곁에서 들여다보면서 예쁘고 화사하다는 생각은 늘 들었지만, 그 정도로 품격 높은 꽃인 줄은 몰랐습니다. 

들불같이 피던 원앙공원도, 우(성)산 솔밭길도 붉음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붉은 비단을 쳐 놓듯 화사했던 돌담 축대나, 공원의 울타리가 이젠 푸른 잎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직은 드문드문 파란 잎 속에 빨간 꽃송이가 남아있지만, 대신 나무 밑에는 수북하게 꽃잎이 쌓였습니다. 
솔밭길을 한참 오르다 보니 영산홍 붉은 꽃송이가 많이 떨어졌습니다. 이 길을 지나던 누군가가 떨어진 꽃을 모아 하트를 만들었습니다. ‘첫사랑’이란 영산홍의 꽃말처럼 혹시 첫사랑을 표현한 것은 아닌가 문득 생각합니다. 

붉다 붉다 해도 영산홍만큼이나 붉을까. 독한 것 같기도 하고, 서글픈 것 같기도 하고, 꽃잎이 무어라 말을 걸 듯도 한, 색색마다 강렬한 영산홍입니다. 오래된 사찰 안에서, 민가의 뜰에서 화려하게 군락을 이루며 핍니다. 꽃의 색깔이 붉으면 영산홍, 자색이면 자산홍, 흰꽃이면 백영산이라 부릅니다. 식물도 각기 다른 모양으로 자신만의 방법으로 꽃을 피웁니다. 그들만의 색을 내고, 그들 나름의 열매를 맺는 것이랍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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