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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으로 40년 이발사의 길 떠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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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으로 40년 이발사의 길 떠나야
  • 김명숙
  • 승인 2001.11.05 00:00
  • 호수 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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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읍 읍내리 중앙이발관 홍상기 씨
▲ 11년전 단독으로 중앙이발관을 지금의 자리에 차리고 영업하던 모습(아래 사진)과 중앙이발관을 마지막 떠나면서(위 사진)
“그동안 저희 이발관을 찾아주신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어제까지 눈에 보이던 세상이 오늘은 안보인다. 두눈은 분명 떴는데 그저 희뿌옇게 어른거릴뿐 문앞 한발자국이라도 나설려면 아내의 손에 의지해야 하고 어쩌다 아는 사람을 만나도 그가 먼저 “나 누구여”라고 말하기 전에는 한참을 목소리로 가늠해야 하는데 아직 익숙하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스므날전(10월 10일경)까지만 해도 청양읍 읍내리 장미여관 옆에서 손님들의 머리를 손질했던 중앙이발관 주인 홍상기(58)씨. 악성 시신경염으로 인해 갑자기 두눈이 보이지 않게 됐다.
“눈 감았다 뜰때 예전처럼 세상이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기대해 보지만 막상 눈을 뜨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때 내눈이 정말 보이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가슴이 아픈건 40년동안 해오던 가위질을 그만둬야 하는 것. 열일곱살에 이발 기술을 배워 청양에서 솜씨 좋은 이발사로 앞으로도 한 10년쯤은 더 할줄 알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불치병인 악성 시신경염으로 식구들의 생계를 이어줬던 중앙이발관을 떠나야 하는게 가장 슬프다.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서둘러서 깎는 법이 없어 오히려 손님들이 미안해 할 정도로 차분하고 꼼꼼하게 머리손질을 해주던 홍씨의 손길을 이제는 만날수 없게 됐다.

대치면 주정2리 고랑골 태생인 홍상기씨는 수정초를 나와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열일곱살에 청양읍내에 있는 태양이용원에 기술을 배우기 위해 취직했다. 그때가 1960년 11월2일. 말이 취직이지 면허를 딸때까지 4년동안은 월급도 없이 고랑골서 도시락 싸들고 걸어다녔다.

눈썰미와 손재주가 좋아 남들보다 조금 빨리 4년만에 면허를 따고 청양이용원에서 기술자로 있다 다른사람과 동업으로 동양이용원을 개업 13년을 했고 역시 동업으로 신라이용원을 5년8개월간 하다 드디어 혼자힘으로 지금의 자리에다 중앙이발관을 차렸다. 지금부터 꼭 11년 전이다.

40여년전 홍씨가 이발기술을 배울때 청양에는 태양, 대동, 문화이용원과 다리건너(교월리)에 우리이발관 등 4개의 이용원이 있었고 현재 청양에서 가장 연륜이 오래된 이발사는 갑진이용원의 명영환씨와 삼성이용원의 복갑규씨, 그다음이 홍씨다.
홍씨에게 이용기술을 가르쳐준 은사는 태양이용원 총책임자였던 고 김영근(지난해 작고. 전 청양이용원)씨로 그때 스승을 보고 찾아오던 손님들이 제자인 홍씨에게로 이어져 30년이 넘은 단골고객이 10여명, 20년 이쪽저쪽된 단골은 40~50명이나 되었다.

술 먹고 이발하러 오는 손님이 대하기가 가장 어려운데 그것은 숙취가 있는 가운데 입 다물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호흡장애가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다. 그래서 술 먹은 사람은 다음에 오라고 하는데 간혹 오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동양이용원을 할 당시가 홍씨의 가장 전성기였는데 신랑 머리 잘만지다고 소문이 났었다. 신랑머리 손질이라는게 지금처럼 젤이나 무쓰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포마드기름 발라 드라이로 넘기는 것인데 솜씨가 좋아 새신랑들이 결혼후에 머리 잘만져줘 결혼사진 잘 나왔다고 인사할때 이일의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30여년전 기술자로 하루 일당제로 일했는데 그당시 200원에서 350원, 많게는 400원까지도 받았다. 예전에는 설대목이 되면 한 열흘동안은 새벽 5시30분부터 다음날 새벽 2~3시까지 꼬박 손님들의 머리를 깎기도 했다.
1990년 4월부터 99년 4월까지 청양군이용지부장을 맡기도 했고 어려운 사람을 찾아가 쉬는날에는 무료이발을 해줬다.

“이길로 들어서 청양에서 오랜 세월 할 수 있었던 것은 다 우리이발관을 찾아주신 분들 덕택이라 신체상 허락하는데까지 최선을 다 하고 어려운 분들도 휴일마다 조금이나마 도와줄려고 마음먹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눈이 안보여 실천못하게 돼 너무 아쉽습니다”
전에는 병원을 모르고 살았을 정도로 건강하던 사람이 지난해 10월말경부터 갑자기 눈이 안좋아져 건양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악성 시신경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완치는 어렵지만 이렇게 빨리 양쪽눈 다 실명할 줄은 몰랐다.

33년전 부인 조정행(57)씨와 결혼해 석균(31), 석일(28), 은숙(25) 3남매를 두었으며 큰아들 석균씨는 아버지의 손재주를 닮아 목원대 미대를 나와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그동안 당신 고생 많이 시켜 잘 할라고 했는데…. 그나저나 쉬는날 머리 깍아주러가던 친구가 나를 기다릴텐데 당신(옆에 앉은 부인에게)이 그친구 부인 만나거든 내눈이 안보여 못가니 다른사람한테 이발하라고 말좀 해줘. 또 은산서 30년 넘게 우리이발소를 오는 87세 되신 단골이 계신데 몇번왔다가 허탕쳤을겨 이씨라고 성만 알고 있어 연락도 못드리고 걱정이네”

못내 가위를 손에 놓는 것이 안타까운 홍씨. 그래도 자신 혼자 문을 열었던 중앙이발관이 없어지지 않고 후배(비봉이용원하던 이상용씨)가 맡아 다행이라며 40년동안 함께 했던 빗과 가위를 놓고 대신 부인손 잡고 중앙이발관문을 나섰다.

바람이 부는 10월 마지막날에.

<우리의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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