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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아래 둑 막으면 나가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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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아래 둑 막으면 나가야하는데…”
  • 김명숙
  • 승인 2001.10.22 00:00
  • 호수 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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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저수지 수몰지구에 사는 최득락 씨
광대리 마을이름 지키지 못하고 떠나야하는게 속상해

“물 차서 나가라고 할때까지 여기 살아야쥬. 촌 살림이 보잘것 읍서두 즉잖은디(많은데) 쓰던 살림살이 어떻게 집어내버리고 갈지 큰 걱정유. 오디가서 전세라도 얻어 살라믄 간단하게 이사 가야허는디. 은제(언제)일지 모르지만 떠난다고 생각허먼 경주최씨들이 몇백년 동안 한식구 처럼 살았는디 이 최씨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것이 젤루 가심(가슴) 아퍼유”

지금 공사가 한창인 칠갑저수지가 완공되면 수몰될 대치면 광대리 원동에 사는 최득락(69) 정호순(65)씨 부부는 대대로 살아온 곳을 언제 떠나게 될지 모른채 올 가을도 추수를 끝냈다.
한해 농사를 지을려면 가을부터 거름을 내야하는데 내년에는 농사를 못짓게 한다는 소리도 들리고 있어 농사를 계속할수 있을지 걱정이다. 평생을 농사만 지으며 광대리가 제일 살기좋은 동네로 알고 살아왔는데 10여년전부터 저수지가 생긴다며 언젠가는 떠나야한다는 불안한 마음에 집도 못 고치고 지금도 나무를 때고 산다.

광대리서 대대로 살아오던 최씨는 32년전 한동네 사는 부모님으로부터 분가해 나올때 논 네마기를 물려받고 지금 사는 집을 밤잠도 못 자고 손끝에서 피가 나도록 평생 살집을 튼튼하게 지었다.
그때 정호순씨는 시아버지께 시부모공양 잘 했다고 덤으로 큰소 한마리를 더 타 논 사는데 보탰다.

그당시 좋은 논이 1평당 280원, 논값 19만원을 치루는데 소 팔아서 9만원을 치루고 나머지는 1년후에 값는데 돈을 마련하느라 그해 겨울 보리쌀 8말에 쌀 조금 섞어 먹고 밀가루 한푸대 갖고 한달동안 16끼 수제비를 해 먹을정도로 허리띠를 졸라 매며 4남매를 키웠다.
논 10마지기, 남의 밭이지만 1천700평을 농사짓는데 최씨가 몸이 많이 안좋아 동네사람들이 많이 도와주는데 이들 부부는 고추따서 집으로 가져오는 일이나 벼가마 쌓는 일들을 동네 인심 덕분에 이룰수가 있었다고 한다.

나이가 먹을 수록 고향이 좋은데 이런 인심좋은 사람들과 뿔뿔이 흩어져 고향을 떠날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보상을 받아 두 아들이 집 산다고 해서 보태주고 남은 돈은 수물되면 어디다 집을 짓던지 전세라도 얻어 살라고 저금해 뒀다.
또 부인 정씨가 종콩심어 메주 쒀 팔고 고추, 구기자 수확해 국민연금을 들어놔서 지금 매달 20만원이 넘게 탈 정도로 자식에 의존하지 않는 노후대책을 세웠다.

“저양반이 아프니 병원 가까운 청양읍내쯤 나가 한사람이 죽도록 같이 살아야지유. 연금 부을때 너무 째서 반찬도 제대로 못사다 준 것이 젤 마음에 걸려 내가 움직일때까지 먹는거나 잘 해줘야지유”
젊다면 훌훌털고 어디가서 농토를 사서 농사라도 짓겠는데 몸이 많이 아파 그럴수도 없고 부모와 조상 산소가 다 있는 고향을 버리고 어딜 가서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마을 앞에 최씨네 땅이 있어 최씨들이라도 집단 이주해 고향을 살리고 싶었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물 좋고 정자나무 좋고 이런동네 앞으로는 생전 못만날 것이라며 못내 광대리 라는 마을 이름을 지키지 못한 것이 너무 속상하다는 최씨부부.

오는 설날 자식들이 고향집에 다 모이면 어디로 가야할지 의논할 작정이다.
“저놈의 우르르 쿵쿵 소리는 하두 오래 들어서 머리속에 아주 박혔고 마을을 빙 둘러 길을 내는디 날이 갈수록 그게 꼭 목을 조여오는 것 같어. 저아래 둑 막으면 나라가고 헌다는디…”

<우리의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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