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받은 그림 세상 -미술작가 전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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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받은 그림 세상 -미술작가 전만성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9.11.11 11:47
  • 호수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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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몇 개의 화분에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보행보조기를 밀며 할머니가 꽃 사이로 내려오고 있는 그림을 봅니다. 90대 할머니가 그렸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워, 할머니들께 그림을 가르쳐 드렸습니다. 어머니께 못 한 이야기를 할머니들께 대신 전하고, 어머니께 사죄하고 싶은 마음으로 같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할머니들은 감사하며 사는 모습과 이야기를 드라마나 시보다 더 감명 깊게 그리셨지요.”
어르신을 보면 어머니를 보듯 하여, 농촌의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하고 그림을 그려보자는 생각이 들었다는 전만성님은 어머니를 흰꽃으로 그렸습니다.

“우연히 양파망 속에서 두 개의 마른 양파가 푸른 싹을 틔우는 것이 마치 암 투병하는 아내의 모습 같았어요. 그래서 양파그림을 많이 그렸죠. 양파그림 액자만 2개, 4개, 8개, 20개씩, 벽 한 면 전체에 설치한 전시회도 했어요.”
독일 아트페어에서도 양파그림을 전시하였답니다. 파란 산 그림이 펼쳐지자 입이 딱 벌어집니다.
“약 10년이 걸린 작품인데, 제목이 ‘위로의 풍경’으로 가야산입니다.” 대학 시절의 추억이 담긴 달동네와, 나무 밑에서 하늘과 꽃을 올려보며 그린 그림에서 전만성님의 맑고 높고 푸른 마음을 봅니다.

크레파스 한 개 한 개에 담긴 꿈
“9살 때 색으로 형태를 그린다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잘하고 싶었는데 잘 안 됐어요. 성취욕과 승부욕, 선생님 눈에 들고 싶어 발버둥을 쳤죠. 드디어 3학년 때 그림상을 탔습니다.”
“뚜껑을 열고 하나하나의 크레파스를 밤새 보며, 내 꿈이 다 들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화가나 교사가 되리라는 그런 꿈조차 꿀 수 없었지만, 워낙 좋아했던 그림이다 보니 친구가 되고 생업이 되었죠.”
“성격상 사람들을 피했던 것 같은데, 그림과 놀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죠. 그림이 내 친구구나. 이렇게 좋은 걸 사람들은 왜 안 할까?”
 
-어린 시절부터 쭉 그림을 그리셨는데, 혹시 그림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무엇을 하실까요?
“유일하게 잘할 수 있는 것이 그림이었고, 또한 살아가는 방식이었어요. 살다 보면 상처받고 무능하고 무기력하다는 생각이 들 때, ‘아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그러면서 위안과 보상을 받았어요. 미술교사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도, 외로움에 많이 시달렸어요. 절벽 앞에서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걸어야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 외로움과 허기를 그림이 다 채워줬죠. 그러니 손을 놓을 수도 없고, 자연스럽게 인생역까지 온 것 같아요.”
“오래전부터 글 쓰고 책 읽는 것을 좋아했어요. 노래도 잘합니다. 10대 때는 가수가 되면 돈방석에 앉는 줄 알고, 돈 벌어 고생하시는 어머니께 도움을 드리고자 했는데, 바람직하지 못한 의도 탓 인지 잘 안 됐어요. 운동하는 것은 아주 싫어했죠.”

인생의 색 - 감색부터 초록까지
“파란색과 초록색, 감정보다는 이성적인 색으로 마음이 편해요. 좋아하는 색도 나이와 상황에 따라 바뀌더라고요. 20대에는 감색이 좋았는데, 30대 초에는 빨강이 좋고, 40대에는 또 노랑을 좋아했어요.”
“색마다 추억이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유난히 눈부시게 다가오는 색들이 때때로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그 색을 몸으로 익힌 것 같아요. 아름답고 고운 아침 햇살의 연노랑, 어리고 순수해서 마음이 아팠던 연두색, 왕성할 때의 혈기와 정열의 빨강. 빨강이 꼭 쓰고 싶어 얼굴에도 칠한 적이 있었죠.”

-어떤 색깔의 세상이 좋은 세상일까요?
 “연두색, 풀색의 평화로운 세상요. 기계문명과 온 세상이 발달해서 사람들이 행복해지리라 생각했는데 반대더라구요. 사람이 자본 밑에 있으니, 좋은 세상이라 여겨지지 않아요. 인간의 고유성이 더 많이 훼손되고, 사람들은 더 외로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세상이란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세상, 존중받는 세상이죠. 감성과 마음으로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는데, 물질이 세상의 척도가 되다 보니 좋은 세상이 못 되는 것이죠.”

진실된 그림 - 말 걸어오는 명작
-전시관을 많이 찾으실 테지만, 더 특별히 찾으시는 목적이 있으신가요?
“살아가는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서요. 진실한 그림은 ‘기운’이랄까 힘을 주지요. 아름다워서 진실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마음이 그대로 투영되어 삶이나 사람의 의미를 계속 질문하죠. 편안한 마음으로 고요하게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저게 진실이야’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걸 느낄 때 감동을 받습니다. 진실로 잘 그린 그림은 봐도봐도 질리지 않아요. 오히려 볼 때마다 샘솟듯이 말을 걸어옵니다. 그래서 옆에 두고 늘 바라보며 힘을 얻고자 그림을 사는 거죠. 화가의 진심과 영혼이 담긴 작품, 자세히 오래 많이 보면 명작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며칠 전에 인왕산 근처의 미술관에 다녀왔어요. 실명에 가까울 정도로 약시인 작가의 대추 그림을 보았어요. 유명작가였는데, 사소한 일상을 어린아이처럼 가벼운 동심으로 그렸어요. 치열함보다 훨씬 감동적이었죠. 내려놓는다는 것이 이런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부끄러워지는 반면, ‘치열하게 산 사람만이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 물어보는 계기가 되었죠.”
“내려놓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나는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 그려야겠다, 나를 소외시키고 저버리지는 말아야지, 내 양심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이 또 들었습니다.”

아직도, 좀 더 열심히 할걸!
“다음 생에도 그림을 그린다? 글쎄요. 혼자 그림을 그리는 것은 참 좋지만, 외롭고 고단하고 숨이 찼어요. 이번 생에서 내게 그림의 세계는 선물이었지만, 너무 외로운 건 싫어요. 아버지로서도, 삶의 수단으로도 바람직하지 않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림과 함께 하실 거잖아요?
“나를 지키고 견뎌온 것이 그림이니까요. 그림을 배우고자 70이 넘으신 분이 오셨어요. 그리고자 하는 의도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여생을 그림과 친구 하고 싶다는 그런 분들한테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그림으로 같이 행복해졌으면 좋겠고, 그림을 통해 마음을 교류할 수 있으면 더 좋겠죠.”

남양이 고향인 전만성님은, 영혼을 다해 그림을 그린 이응노화백을 존경합니다.
“화백님의 그림 앞에 서면 결연해지고, 전율을 느껴요. 그렇게 감동을 받는 것처럼, 제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도 감동과 힘, 삶의 가치를 줄 수 있도록 더 열심히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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