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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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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시계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9.06.24 17:09
  • 호수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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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 시계

분홍과 빨간색 장미꽃을 십자수로 놓아 만든 꽃시계, 지난 세월의 어디쯤에서 멈추어진 시계를 봅니다. 1초 1분을 잘 살길 바라며 한 바늘 한 바늘 수 놓은 이의 마음이 생각나 멈춰진 시계를 떼지 못합니다.

운곡 신대리골짜기에는 이모가 살던 집이 있습니다. 언젠가 지나던 길에 빼꼼 대문이 열린 틈으로 마루기둥에 걸려 있던 시계를 보았습니다. 떠나간 주인을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뽀얀 먼지에 덮인 시계는, 저녁 햇살에 흔들이추만 반짝반짝 빛이 났습니다. 금방이라도 이모부가 시계 뚜껑을 열고 드륵드륵 태엽을 감아주면, 밥을 듬뿍 먹은 시계는 째깍째깍 활기차게 흔들이추를 움직였을 것입니다. 이모는 시계태엽이 다 풀려 시계가 멈춰버리면 ‘시계밥이 떨어졌다’며, 시계밥 좀 주라고 하였지요.
 

백세공원 가는 길, 3면의 벽을 빙 둘러 시계가 촘촘하게 걸린 집을 봅니다. 뻐꾸기시계를 비롯하여 손목시계, 둥글고 네모진 시계 등 제각기 다 다른 시간을 보여줍니다. 죽 늘어선 시계 속에는 키가 큰 추시계도 몇 개 보입니다. 몇십 년 전만 해도, 몸통이 크고 길어 마치 탑과 같은 추시계는 부잣집에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

아랫장터 관공서 현관에는 큰 괘종시계가 있었습니다. 긴 줄 끝에 달린 시계추가 반짝반짝이며 멋스럽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느라 쪼그리고 앉아 있기 일쑤였습니다. 진자운동을 하는 괘종시계의 초침 소리나 시간을 알리는 웅장한 소리는, 마루를 내려와 토방을 넘고 마당을 지나 골목까지 퍼지곤 하였습니다. 시간을 알릴 때면, 땡 한 번 치고 나서 다시 땡 칠 때까지의 간격이 좀 긴 편이라 쪼르르 달려가 시계가 종 치는 것을 올려보던 조막만한 머리들이 떠오릅니다.    

선사시대부터 인류는 세계 어디서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간을 의식하며 재고 있었습니다.  ‘해가 뜨는 곳에서부터 해가 지는 곳까지는 어떻게 갈까?’ 하는 의문으로 고대인들은 밤과 낮의 움직임을 측정하고 싶어했습니다. 향이나 초가 타는 속도와 달이나 별의 운동으로 시각을 재는 시계, 시간의 변화를 일정하게 나타내 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자연의 시계’가 되었지요. 해의 움직임을 이용한 해시계와 물의 흐름을 이용한 물시계도 만들었습니다. 물을 채운 그릇이 작은 구멍을 통해 물이 새어 나오면서 그릇의 수면이 내려가는 물시계를, 고대 그리스인들은 ‘클레시드라(물 도둑)’라 부르기도 했답니다.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에도 분명한 기록은 없지만, 해시계와 물시계가 많이 보급되었으며 종과 북도 이용되었습니다. 신라에서는 구리로 만든 큰 종을 쳐서 시각을 알렸는데, 그 종소리가 100리 이상까지 퍼졌다는 기록도 있답니다. 시간에 맞춰 종을 치기 위해서는 종 근처에 물시계나 자연의 시계 같은 시설이 있었겠지요.
세종 때의 대표적인 해시계는 솥뚜껑을 뒤집어 놓은 모습인 ‘앙부일구’가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백성들이 시간을 쉽게 알 수 있도록 12간지 한자 대신 12개의 동물 그림으로 시각을 표시한 백성을 위한 해시계로, 일본에까지 그 영향을 남겼습니다. 시각선 외에도 절기와 양력 날짜까지 알 수 있는 정확한 공중용 해시계였습니다. 또한, 자동시보장치가 달려있어 사람들이 지키고 있지 않아도 스스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 ‘자격루’를 장영실이 완성했습니다. 
학창 시절, 별명이 생쥐였던 생물선생님이 생각납니다. 작은 체구에 정장을 즐겨 입었는데, 정장 속의 덧입은 조끼 주머니에 줄 달린 시계를 넣고 다녔습니다. 수업 틈틈이 금테두리 동그란 회중시계를 꺼내 보곤 했는데,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방안 여기저기에 몇 개의 시계를 올려놓고 달아놓았지만, 시간이 일치하는 시계는 없습니다. 15분 빠른 시계, 5분 정도 빠른 시계, 1주일에 2분쯤 늦는 시계, 맞춰도 맞춰도 안 맞는 시계, 완전히 멈춘 꽃시계, 서랍 속에서 자는 시계, 손목을 시간으로 묶어놓은 시계 등.
시계에 맞추는 시간에 끌리고 기다리며 지냈던 순간순간이, 멈춰진 시간 속에 머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냥 버릴 수는 없는 시간들입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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