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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박태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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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박태기나무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9.05.13 13:37
  • 호수 12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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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마중 … 박태기나무

“어렸을 때부터 영세민으로 살아왔고, 사업을 시작하면서 숨 가쁘게 살아왔다. 이제 여유가 조금 생긴 만큼 주변에 베풀면서 살아가고 싶다.”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자인 모씨는 사과 한 쪽으로 일주일을 먹고 살 정도로 어려웠던 세월을 살았지만 지금은 기부전도사가 되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밥풀떼기나무라 불리는 박태기나무를 보면서, 글을 쓰면서, 모씨의 어린 시절의 눈과 마음이 되어 밥풀이 다닥다닥 붙은 박태기나무의 자홍색 꽃가지, 밥풀가지를 올려봅니다.
 
박태기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입니다. 추위에도 잘 견디며 햇빛을 좋아합니다. 스님들이 중국을 왕래하며 가져

다 심어 놓아 예전에는 절 주위에서 많이 보았던 나무가, 지금은 길옆이나 얕은 산 속, 집집의 울타리 등 어느 곳에서든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유난히 꽃 색깔이 화려하여 눈에 콕콕 들어와 더 잘 뜨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진분홍인 듯, 보랏빛인 듯, 홍색을 띤 자줏빛인 듯, 작은 꽃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그 고운 화사함이 멀리까지 퍼져나갑니다.
꽃뿐만 아니라, 꽃이 한창일 때 하루가 다르게 나오는 반짝반짝 윤기 나는 심장모양의 둥근 잎과, 꽃이 탐스럽게 피었던 자리에 맺는 꼬투리모양의 무성한 열매까지도, 박태기나무는 멋스럽게 보여줍니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가로수나 정원수로 많이 즐겨 심습니다.
  
진홍빛 화려하고 독특한 작은 꽃들은 흰빛이 도는 가느다란 가지에 7송이에서 30송이씩 뭉쳐 핍니다. 희끗희끗한 나무 몸통과 가지에 꽃이 송이송이 달려있습니다.
붉은빛을 띤 갈색의 긴 장갑 같은 꽃자루와 꽃받침은 다섯 장의 작은 꽃잎을 떠받고 있습니다. 위로 향한 세 장의 연한색깔의 꽃잎과 두 손을 오므린 듯한 아래쪽 두 장의 꽃잎이 몇 개의 노란 수술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밥티나무, 줄기와 가지에 다닥다닥 꽃이 핀 모습이 밥알 붙은 주걱처럼 보인다하여 밥풀떼기‧박태기나무, 꽃의 모양이 마치 밥풀떼기를 모아놓은 듯하여 밥튀기나무, 칼집 같은 꼬투리가 달린다하여 칼집나무, 북한에서는 꽃봉오리가 구슬 같다 하여 구슬꽃나무, 서양에서는 예수를 배반한 유다가 목 매 죽었다하여 유다나무라고도 합니다.
피기 전 갸름하게 오므린 봉우리는 길쭉한 밥알 모양이긴 하지만, 활짝 핀 꽃모양은 밥풀 같은 느낌 보다는 입을 벌리고 뭔가 옹알거리는 어린 동물 같습니다. 강아지 같기도 하고, 거위 같기도 하며, 귀여운 다람쥐 같기도 합니다.

한두 발짝을 뒤로 물러서서 꽃 달린 가지를 바라보니, 생각 탓인지 모르겠으나 붉은 밥풀이 더덕더덕 붙은 것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한 톨의 밥알도 소홀히 할 수 없었던 시절, 사는 일 중에 먹는 일이 가장 중요했던 시절을 떠오르게 합니다. 밝고 환한 꽃들이 밥풀떼기나 이밥(이팝나무)이나 조밥(조팝나무)으로 보였을 생각이 들자 그 화려함이 문득, 온통 슬퍼 보입니다.

꽃도 꽃이지만, 자홍색 꽃송이 사이에 마른 콩꼬투리가 덩어리째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 작은 꽃송이에서 어떻게 저렇게 긴 콩꼬투리 모양의 열매가 맺힐까, 꽃 진 뒷모습과 막 피어난 꽃송이, 꽃과 마른 열매가 한 가지에 달려 있습니다. 
자홍색 조그만 꽃에 왕탱이가 벌렁벌렁 드나듭니다. 볼록한 꿀통을 매달고 윙윙거리며 이 꽃 저 꽃을 훑고 다니고 있습니다. 향기 아닌 환한 꽃 색깔에 끌려 꿀을 채취하고 열매를 맺게 해 주겠지요.          
어죽집 비탈진 울타리 키 작은 나무에, 빨간 방앗간 앞마당에, 우성산 올라가는 길가에, 나무밑동에서부터 가지끝까지 줄줄이 걸려있는 꽃방망이가 보랏빛 마중을 나온 듯합니다.  

15일은 국제 캥거루돌보기의 날, 20일은 세계 참새의 날, 23일은 세계 거북이와 핑크플라밍고의 날입니다. 동물이 주인공인 달력처럼, 식물이 주인공인 5월의 달력에는 조밥과 이밥과 밥풀떼기의 날도 있겠지요. 연둣빛과 초록이 어우러진 산과, 빨간 영산홍이 눈부십니다. 보일 듯 말 듯, ‘부처님 오신 날’의 연등이 그 속에서 바람을 타는 계절입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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