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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복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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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복사나무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9.04.29 19:24
  • 호수 12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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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을 상징하는 나무꽃…복사나무

노랑과 분홍과 흰색이 어우러진 산과 들, 계절의 여왕인 봄의 한가운데입니다. 백세공원 돌계단 구석마다 벚꽃잎이 떨어져 수북하게 쌓였습니다. 문득문득 남은 꽃잎이 바람에 날려 얼굴로 발끝으로 스쳐갑니다.
  
복사꽃도 피었습니다. 벚꽃과 닮았으나 조금 더 크고 더 붉은 빛을 띠는 복사나무의 꽃입니다.
잎자루에 곤충이나 새를 유인하여 꽃가루의 매개 역할을 하는 꿀샘이 있는 복사나무는, 원산지가 중국 화북지방의 해발 600미터가 넘는 고원지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함경도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잘 자라지만, 강원도 깊은 산골이나 추운지방에서는 열매를 잘 맺지 못합니다. 키는 작지만 가지를 넓게 뻗는 복사나무는 잘 자라면 6미터까지 자랍니다. 2~3년이 되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7~8년째 수확이 가장 많고 20년 정도가 되면 수명을 다 합니다.
 

흰색이나 연분홍으로 피는 다섯 장의 꽃잎인 홑꽃과, 꽃잎이 겹겹이 둘러싸인 만첩이 있습니다. 백색 꽃이 피면 백도, 백색 꽃이 피면서 만첩이면 천엽백도·만첩백도, 짙은 분홍색의 큰 꽃은 홍도·만첩홍도, 분홍빛을 띠면서 백색 비슷하면 바래복사라 부릅니다.
 감미로운 봄바람이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달밤에 저 혼자 흐드러지게 핀다는 복사꽃, 그러고 보니 아파트 입구의 개복숭아나무도 어젯저녁엔 분명히 꽉 다문 봉우리였던 것이 아침에 보니 활짝 피었습니다.
 
대치면 칠갑산로에, 정산 신덕길가에, 이 산골 저 산골에서 연분홍 물결이 수줍음과 화사함으로 넘쳐납니다. 온통 발그스름하게 물들인 복사꽃 세상이 눈과 입을 크게, 황홀하게 합니다. 천장호수에서 금강으로 흘러가는 가느다란 개울물가에 군데군데 무리지어 핀 모습은 괜스레 마음을 설레게도 합니다.
가녀린 꽃잎과는 달리 거침없이 쭉쭉 뻗은 나뭇가지 모습은, 꽃 다음에 맺을 열매의 무게를 준비라도 하듯 단단합니다. 

봄에 피는 대부분의 꽃들이 그렇듯이, 유난히 복사꽃은 고향을 상징하는 것 같아 더 정겹습니다. 만첩홍도가 골짜기마다 4~5월을 화사하게 장식하고 나면 단단한 껍질로 씨앗을 감싼 열매가 익어갑니다. 꽃만큼이나 부드러운 열매 복숭아는 오랫동안 저장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옛날 할머니들은 보릿가루로 죽을 쑤어 식혀 오지항아리에 붓고 잘 익은 복숭아를 넣어 밀봉 후 보관하여, 겨울에도 갓 딴 복숭아처럼 싱싱한 맛을 즐겼다고 합니다.   
  

꽃나무 아래 서서 꽃을 올려봅니다. ‘복사나무 아래 효경을 읽는다’는 제목의 시조집이 있습니다. 공자가 그의 제자와 효에 대해 나눈 말씀보다는 연애소설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복사꽃, 복사나무아래입니다.
부천에서 몇 년을 살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때쯤이면 소사면은 온통 복사꽃으로 물이 들었습니다. 마치 분홍물감을 길에 뿌려놓은 듯 했었지요. 복숭아 밭둑을 타고 걷던 길은 하늘에 붉은 별이 떠 있고, 밭두렁엔 민들레며 자운영이 즐비했습니다. 분홍 꽃이 지고 나면 어느새 다디단 복숭아향이 온 동네에 퍼지곤 했지요. 지금은 이미 복사나무 한 그루도 없이 변하였지만, 부천은 여전히 복사꽃마을로 떠오릅니다.

나무이름이 앵두나 살구 등 열매 이름으로 붙여진 것이 익숙한데, 복사나무는 예외입니다. 당연히 복숭아나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꽃에 의해 이름 붙여진 나무는 열매보다는 꽃에 더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꽃 역시 복숭아꽃이라기보다 복사꽃이 더 소박하고 정감이 갑니다. 겹꽃이라기보다 만첩이라 부르는 것처럼 복사나무는 이래저래 특별함이 있습니다.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황홀한 복숭아밭과 안개 자욱한 언덕에 복사꽃이 만발한 풍경을 그린 안견의 「몽유도원도」, 배를 타고 가다 복숭아숲에서 길을 잃었지만 무릉도원을 만난 어부의 이야기인 도연명의 「도화원기」.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 유토피아를 꿈꾸는 작품에도 복사꽃은 화사한 빛과 은은한 향으로 빼놓을 수 없는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신덕길 언덕을 오르며 자꾸 뒤를 돌아봅니다. 파란 초록지붕과 어우러진 복사꽃, 까만 비닐하우스와 복사꽃이 수줍은 듯 수줍은 듯 화사합니다. 노을에 비친 눈부신 복사나무들의 모습은, 지워지지 않는 그림처럼 오래오래 남아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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