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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소 생활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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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소 생활을 돌아보며
  • 청양신문
  • 승인 1999.02.12 00:00
  • 호수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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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순(해남보건진료소장)
제대로 눈 한번 오지 않고 겨울이 지나가려나 했더니 늦게 눈이 내렸다.
벌써 정산에 온지도 햇수로 십삼년째, 내게 있어서는 잊지 못할 일들이 너무 많이 있다. 처음 낯설고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생면부지의 이곳이, 태어나서 시골생활의 처음이고 보니 모든 것이 생소하였다. 마을회관을 이용한 임시 진료소는 방 하나에 재래식 부엌이었다.
밤이면 불빛하나 없는 칠흑같은 어둠과 하루에 서너 차례 밖에 다니지 않는 시내버스와 비포장도로의 뿌연 먼지를 보면서 문화생활과 그리운 사람들과의 단절된 생활에서 오는 쓸쓸함을 세살된 딸 아이를 부등켜 안고 우편물을 기다리며 생활하곤 하였다.
처음 내가 오지 마을에 오기로 결정한 것은 첫번째 이유가 독립하고 싶었고, 두번째가 시골생활의 막연한 기대감, 세번째는 내가 할수 있는 영역 한계에서의 봉사였다. 지나고 보니 처음부터 기대치가 높았던 것이 사실임에 틀림이 없다.
강아지가 설사한다고 안고 왔던 인희는 이미 결혼해 아이엄마가 되어 찾아오고, 소가 설사한다고 주사 놔달라고 해 곤욕을 치뤘던 일들과 음주상태에서 연탄가스 중독에 걸려 트럭뒤에 싣고 가며 추운 겨울에 토해내는 이물질을 닦아내며 인공호흡과 심장맛사지를 번갈아 하면서 살려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후송하였던 일, 그일로 며칠간 밥을 못먹고 어두운 길을 걸으며 내가 왜 이길을 선택하였을까 하는 후회도 잠시 뿐, 이제는 그가 아빠가 되어 그의 아들 석수를 볼 때마다 ‘할일을 했구나’하는 자긍심이 이 길을 오래도록 지탱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찔레꽃 필때 쯤이면 누구집 할머니 생신이라는 것까지 알고 있으니 이쯤이면 공동체 생활은 많이 적응이 된 것 같다.
그때 세살되었던 딸이 벌써 중학교 2학년이 되었고, 둘째 준수는 여기서 태어났으니 고향인 셈이다.
정월 대보름이면 지불놀이며 장승제를 지내고, 몰래 훔쳐온 밥을 장작불 앞에 모여 희희덕거리며 먹는 풍경을 우리 아이들은 아직도 하고 있어 참 다행스럽고, 여름에는 개울에서 목욕하고 겨울이면 뒷동산 언덕에서 비닐푸대 깔고 눈썰매 타는 것이 지혜와 자연공부는 저절로 되는 것이니 시골 생활을 잘 선택한 듯 싶다.
힘들고 어려울 때 물가에 앉아 나를 정리 해볼 수 있는 모덕사, 칠갑산이 주변에 있어 이곳이 더없이 좋다.
주민들에게서 참고 인내하는 것을 배웠고 유유하고 더불어 사는 자연에서 오는 지혜를 알게 되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
나를 필요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수레가 되리라. 그리고 작고 소중한 등불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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