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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2040 젊은 농군, 희망을 일구다② 운곡 추광리 김광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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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2040 젊은 농군, 희망을 일구다② 운곡 추광리 김광호씨
  • 김홍영 기자
  • 승인 2018.05.28 10:22
  • 호수 1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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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채소 연중 생산, 월급쟁이 농부 꿈꾼다”
▲ 쌈채소를 재배하는 운곡의 김광호씨.

농사꾼은 점차 고령화되고 있으며, 농촌에서 젊은이 보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농촌이 지속가능한 삶의 터전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땅을 지키는 젊은 농군들이 늘고 있어 농촌의 미래에 희망이 되고 있다.
이른바 2040, 나이 2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젊은 농군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청양신문은 농촌의 발전적인 미래와 희망을 모색하기 위해 ‘2040 젊은 농군, 희망을 일구다’를 기획했다.  취재 대상은 농업의 6차 산업화, 소비자 중심의 작물 생산, 고품질을 위한 신기술 도입 등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농가들이다. 총 13회에 걸쳐 군내의 농가 9곳과 타 지역의 농가 사례를 싣는다. 또 청년 농업인 육성을 위해 지자체가 추진하는 강소농 프로젝트 농가를 찾아봄으로써 정책적 지원의 필요성을 가늠해보고자 한다. 두 번째 젊은 농군은 운곡면 추광리에서 쌈채소를 재배하는 김광호 씨다.  
 <편집자 말>

쌈배추, 공판장 최고가 낙찰
운곡면 추광리 입구에 들어서면 비닐하우스가 군데군데 들어서 있다. 하우스에 배추가 있다면 그곳은 필경 김광호(46) 씨가 재배하는 쌈배추 하우스다. 근동에서 쌈배추 농사를 짓는 이는 김씨가 유일하다. 청양으로 이사 온 지 12년. 그는 비닐하우스 20동으로 억대의 매출을 올리는 쌈채소 전문 농사꾼이 됐다.
쌈용 배추, 즉 쌈배추 농가가 제일 바쁜 시기는 4월말에서 5월초. 전라도 지역에서 노지 쌈배추가 본격적으로 출하되기 전이다. 약 20일 동안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할 만큼 바쁘다. 이 시기를 놓치면 2만2000~2만3000원 하던 배추 값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다. 

하우스 안에서는 공판장으로 실려 나갈 작업이 한창이다. 푸르스름한 겉대를 몇 잎 뜯어내고 노란 속대만 있는 일명 ‘알배기 배추’를 상자에 담는다.
“빛깔이 노랗고, 크기가 적당해야 좋은 쌈배추입니다. 딱 이 정도입니다.” 
김씨가 ‘이 정도’라고 들어 보인 쌈배추는 노란 색이 진하며, 무게는 750~800g정도. 보기에도 그 맛이 참 고소할 것 같고, 한 입으로 먹기에 좋겠다 싶다.
김씨는 이런 쌈배추를 8kg 단위로 포장해 평균 100상자 씩 출하한다. ‘농촌사랑’ 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가는 쌈배추는 대전농수산물 공판장에서 최고가로 낙찰된다. 그 이유는 작물 선별이 잘 돼 있기 때문이다.

“경매하시는 분들이 상자만 보더라도 청양의 김 아무개가 재배한 쌈배추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굳이 상자를 열어서 작물 상태를 확인하지 않아요. 제가 농사짓는 작물의 품질에 대해 믿는다는 이야기죠.”
공판장에서 최고가로 낙찰되는 쌈배추 품질의 노하우는 7년 동안의 시간, 그리고 쌈채소 재배를 제일 잘하는 농사꾼이 되고 싶다는 그의 신념이 만들어낸 결과다.

서른네 살,  청양에서 농사꾼 되다
충남 당진이 고향인 김씨는 시골에서 자랐지만 농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20대부터 도시에서 건축 일을 했으며, 고향으로 내려와 직접 사업체를 운영했지만 부도가 났다. 빚도 졌고, 더 이상 건축 일은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당시 청양이 고향인 아내를 만나 2006년 청양으로 이사를 왔다. 그 때 김씨의 나이 서른네 살.
“운곡에 장인어른이 혼자 살고 계셨어요. 그래서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지요. 제가 농사지으며 살지 몰랐어요.”

딱히 귀농이라는 표현도 적절치 않았다. 처가가 청양에 있어 이사를 왔고, 농촌은 김씨에게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터전이 됐다.
“농사지을 땅도 없었어요. 땅을 빌렸는데 돌이 반이에요. 집사람과 한 달 동안 돌멩이를 골라냈어요. 주변에 냇가도 있어 그나마 이만하면 괜찮다 싶었기도 하고, 열심히 하면 무슨 수가 나겠지 하는 심산이었습니다.”
김씨는 빚도 있었고, 여유부릴 시간도 없었다. 부부가 함께 일군 밭 2300여 제곱미터에 고추 농사를 시작했다. 돌땅인데다가 농사도 처음 지었으니, 수확을 해도 손에 쥘 만한 것이 없었다. 토질이 좀 나은 땅에서 농사를 지으려 했지만 그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 둘 수도 없었기에 작물을 배추, 무, 쌈배추로 넓혀갔다.

“처음 4년 동안은 농사를 지어도 빚만 늘어났어요. 아기 분유 값이 없어 쌀을 갈아서 먹일 정도로 어려웠어요. 거기에 신경관이 막혀 수술도 받았고요. 다시 도시로 나가야 하나 고민도 많았어요. 그 때가 고비였어요.”
재산은 젊은 몸 밖에 없었는데 수술로 인해 일을 못하게 되니 살림은 더 어려워졌다.
“죽으라는 법은 없나 봅니다. 2010년 배추와 무값이 폭등했어요. 값이 좋으니 농사짓는 것이 재밌어졌어요. 더 잘 키워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이 때를 기점으로 변화가 왔다. 그는 제대로 농사를 지어보고자 2년 여 동안 교육을 받았다. 배추 농사에 자신이 붙었고, 점점 경험이 쌓이면서 노하우도 생겼다.

▲ 김광호씨는 상추 등 쌈채소를 연중 생산하고 있다.

농사 경험 7년이 가져다 준 것
김광호 씨가 배추와 무를 선택한 것은 일단 손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의외로 청양에 쌈배추 재배 농가가 없었다. 청정지역이라는 청양에서 쌈배추 농사를 하면 건강한 먹을거리를 선호하는 추세에 따라 경쟁력이 있다고 여겼다.
“남들이 안 하는 것으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초기 투자를 많이 하지 않아도 승산이 있는 작물이었던 거죠. 결과적으로 보면 작물 선택을 잘 한 것 같아요.”
쌈배추는 농사 4년 만에 공을 들인 만큼 제 값을 받고 출하되기 시작했다. “배추를 너무 크게 기르면 배추 잎이 두꺼워진다. 그러면 수분도 많고, 질기다. 수분이 적어야 고소하다. 쌈배추는 일반배추와 농사짓는 것이 다르다. 기후에 따라 물의 양을 조절하고, 양분의 량을 조절한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배추 농사 기술도 속이 꽉 찬 배추처럼 쌓였다.

그가 품질 좋은 쌈채소 수확을 위해 신경 쓰는 부분이 농작물 관리와 관찰이다.
“농산물은 ‘제 때’ 수확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쌈채소는 하룻밤 사이에 확 자라서 억새지고, 맛도 떨어집니다. 그 시기를 놓치면 상품 가치가 떨어져요. 또 최고 상태에 수확을 해야 다음 수확때도 최고 상태로 수확할 수 있어요.”
“작물은 농사꾼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맛과 색깔, 크기는 내가 만들어 간다”는 김씨의 말에는 쌈채소 농사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났다. “한 작물에 대해 한 5년은 해봐야 알 수 있다. 그 시간에 겪은 일은 실패라기보다 경험”이라고 말한다. 7년여의 시간이 그에게 가져다 준 것들이다.

사계절, 꾸준히 소득 올릴 수 있다
그는 쌈배추 농사에 자신감이 붙으면서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월급쟁이 농부’가 되는 것이다. 
“하우스에서는 사계절 꾸준히 쌈채소를 수확할 수 있어요. 봄에는 쌈배추, 여름에는 고추, 가을에는 다시 배추, 겨울에는 상추, 쑥갓, 근대 등 작물을 달리 심으면 되죠. 또 물량이 많이 나올 때는 수확량을 줄여서 출하량도 조절할 수 있어요. 그러면 어렵게 농사지은 것을 헐값에 판매하지 않아도 되고, 소득 또한 일정하게 올릴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는 쌈채소는 월급처럼 다달이 금방 손에 현금을 쥘 수 있는 월급쟁이 농부가 실현 가능한 작물이라고 말한다. 사계절 꾸준히 수확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는 것이 관건. 그는 연봉 1억 원을 받는 월급쟁이 농부를 꿈이 아닌 현실로 바꾸기 위해서 시설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그동안 쌈채소 농사 지으며 빚도 거의 갚았다고 한다. 그가 목표로 하는 소득의 절반은 현실화됐지만 주머니는 항상 비어있다.

“시설 채소 농사는 노동력과의 싸움이라고 봐요. 육묘 할 때, 모종을 심을 때, 수확할 때 과정 과정마다 품이 많이 들어요.”
수확이 한창일 때 하루 쌈배추 200박스, 상추 100박스 씩 나간다. 겨울에도 마찬가지다. 올해는 3월까지 눈으로 덮인 배추밭에서도 작업을 했다. 일일이 앉아서 수확을 해야 하는 것이 쌈채소를 기르며 겪는 어려움 중의 하나다. 이를 위해 그는 새로운 재배법을 도입해 보려고 한다. 방울토마토 재배 농가에서 이용하는 양액재배법이다.
“쌈채소 10여 개 정도의 모종을 심을 수 있는 작은 박스를 제작했습니다. 수경재배로 농사를 지으면 노동력도 절감되고, 병충해에도 강할 것으로 봐요.”
 
 

▲ 봄에는 하루 평균 100상자의 쌈배추를 출하한다.

쌈채소 분야 최고 농사꾼 되고 싶다
지난해부터 김씨는 새로운 품종에 도전하고 있다. 다른 채소를 접목시켜 맛과 영양을 증가시킨 ‘하이브리드’라는 다소 생소한 쌈채소 시범포를 운영하게 된 것이다. 로얄채(케일+꽃양배추), 쌈추(배추+양배추), 쌈그라(쌈추 업그레드), 홍겨자(적겨자+홍쌈추), 홍쌈추(붉은색 쌈추) 등 5종을 심었다. 농수산대학교 채소학과에 다니는 아들에게 신품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품종을 더 다양하게 심어 쌈채소 시장을 넓혀가고 싶어요. 그동안 배추 농사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적으로 파고 들면 승산이 있다고 봐요.” 현재 하이브리드 채소가 전라도 진안에서 출하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 이를 위해 비닐하우스 시설도 늘렸다.

오래지 않아 김씨가 생산한 쌈채소는 명품영농조합법인이라는 이름으로 출하될 예정이다.
“안정적인 판로 처를 확보하려면 일정한 양을 꾸준히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해요. 혼자만으로 안돼요. 지역에서 뜻이 맞는 쌈채소 재배 농가와 함께 영농법인을 만든 이유입니다. 또 쌈채소 농사를 처음 짓는 이들에게 저희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있는 농사꾼 김씨를 보면 농촌은 가능성이 많은 땅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좋은 농산물 만드는 게 우선이지요. 최상품 만들면 판로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가격도 저절로 좋아집니다”라는 김씨의 말에서 ‘쌈채소 분야의 최고 농사꾼이 되고 싶다’ 는 그의 미래 모습이 그려진다.  

<이 기획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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