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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색깔 카네이션 … 왕눈이 이보순
■ 맑고 소박한 사물과 사람들
[1246호] 2018년 05월 08일 (화) 11:46:47 청양신문 기자 webmaster@cynews.co.kr
   
 

저녁시간을 앞두고, 동갑네 몇 분이 식탁을 가운데 두고 앉아 계십니다. 우리 셋이 젤 친하다고 말씀하시며, “나는 수필을 잘 쓰고 시는 보순이가 정말 잘 쓰지.” 시 잘 쓰는 친구라며 옆에서 계속 부러워하십니다.

가슴으로 받아든 자녀 - 칠남매
육남매 중 장녀였던 왕눈이사장님은 아직도 어머니에게 죄송한 딸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제일 똑똑한 사람 아니면 가장 불쌍한 사람한테 시집가겠다.’는 말대로, 정말 불쌍한 사람과 인연이 닿았기 때문입니다. 장애에 전처소생의 아이들이 여럿 있는 사람과 혼인하게 되어 친정어머니의 가슴에 못을 박았습니다. 그것도 죽자고 좋아서 만난 사람도 아니고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친정어머니한테는 몇 명의 아이들을 속이면서까지요.
“내가 아니면 살아줄 사람이 없잖아. 살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했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그런 어려운 결정을 하셨는지, 다시 그 시절로 뒤돌아 간다면, 마찬가지로 같은 결정을 하실거냐 여쭤봅니다.
“너무 고되지, 너무 고되…, 제일 불쌍한 사람이 남의 자식 키우는 사람여.”
“글쎄, 어쩌지?” 만약에 사장님의 자녀 중에 그런 상황에 닥친 배우자를 선택한다면 어떠실 것 같으냐는 질문을 툭 던지고는, 부정도 긍정도 못하시는 마음속에는 얼마나 많은 생각이 파도처럼 솟구칠까 죄송했습니다.
아무런 말이 없어도, 가늘게 떨리는 속눈썹이 사장님의 힘드셨던 지난날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가수가 되고 싶었던 왕눈이소녀
“가수가 되고 싶었는데, 오빠가 머리를 깎아 놓는 바람에” 문학소녀는 그럼 뒷전이었네요. 어릴 때부터 글 쓰던 습관이 있어서, 일기라면 일기고 넋두리라면 넋두리이며, 또 시라면 한 편의 장시를 쓰다가 잠이 듭니다. 
‘철부지 어린 시절엔 엄마는 영원히 내 곁에 있는 엄마로만 알았습니다. 불러보고 싶고, 보고 싶습니다. 어린 딸이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엄마한테 잘못한 딸 용서를 빕니다.’ 늘 죄송한 엄마에게 편지를 쓰셨습니다.

사장님이 쓴 몇 편의 시를 보면, 밤과 외로움을 많이 표현하신 것 같다 하니,
“늦게까지 일하고 나면 끝나는 시간이 밤이고, 또 손님들 다 가고나면 썰렁하니 적적해서.”

‘목이 메게 큰소리치며 울고 싶은 가을비 오는 이 밤/멍든 가슴으로 울음을 삼키고/여기 작은 방에서 살포시 내 마음을 내려놓고 눈을 감아 봅니다/마음의 상처 너는 내 가슴속에 들어 앉아 있구나/살도 뼈도 아픔이 잦아들지만 마음에/상처도 함께 살고 있구나/부처님!/이제야 내 가슴속에 남아있는/상처들을 치료하고 싶습니다/얼마나 많은 반창고를 붙여야/이 상처 나을 수 있을까요/가을비 오는 밤에-상처’ 

왕눈이사장님의 마음입니다. ‘반창고’에서 눈이 떨어지지가 않습니다. 늘 활발하고 씩씩하셔서 외로움을 타는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왜, 외롭지. 이게 삶인가 생각이 들 때도 있고, 후회? 후회하면 또 뭘 어째? 그저 소주 한 잔으로 달래면 되는 것을. 후회는 안 하더라도, 마음 한 구석은 늘 외롭지.”

후회해독제-소주와 담배와
후회는 소주 한 잔으로 달래면 된다고 하시는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소주와 담배가 있어 행복한 왕눈이사장님은 무색투명한 소주에 자신의 붉었고 검었고 가시 같았던 마음을 녹이고, 하얀 담배연기에 고단한 삶을 날려 보냈습니다.
 
그럼 지금이라도 누구 만나보시라 하였더니,
“지금 가서 송장 칠 일 있어?”
아니 사장님이 건강하신데, 사장님보다 어리고 건강한 분 만나시면 되죠.
“아이구 참, 죽겄네.”
깊이 생각하시는 그 표정과 말씀이 어찌나 진지하고 무거운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여쭸던 것이 막 후회됩니다.
 
소나무와 빨강색과 ‘여자의 일생’을 좋아하고 튤립을 좋아합니다. 왠 튤립요?
“외롭잖아.” 튤립 꽃말이 외로움이에요?
“아니, 한 송이 피잖아.” 수선화도 한 송이 피는데.
“그려, 참 그렇네.” 한참 웃었습니다.
술 취함과 담배 취함이 아무리 좋아도, 어찌 가장 강렬한 삶의 취함을 이길 수 있을까 왕눈이사장님을 올려봅니다. 

독실한 불교신자시니 윤회를 믿으시겠고, 다시 태어나면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가 궁금했습니다.
“스님.” 스님이 되어 불제자들에게 ‘착하게 살라’고 가르치고 싶다고 하십니다. 왕눈이사장님한테 스님은 우리를 불교의 길로 이끄는 스승으로 생각하신답니다. 현세도 그렇게 고되게 살았으면서, 내세 역시 왜 그리 고되게 사시려고 그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에 측은지심으로 대하고 있는 왕눈이사장님은 불교의 자비심을 배운 대로 행하고 계십니다. 가을이면 쌀포대를 이집 저집 나누고, 어려운 이들에게 의류를 보내기도 하십니다. 
손으로, 마음으로 모시는 홀몸노인 어머니도 몇 분 계십니다.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려야하지만, 우선 먼저 얼굴부터 보여드리는 것이 더 급합니다.   
“엄마한테 가 봐야 혀. 집에 고추도 좀 심고.” 네? 어머니가 계세요? 그냥 어찌어찌 세분을 알게 돼 보살펴드렸는데, 이젠 한 분밖에 안 계시다며, 부랴부랴 길에 나서는 왕눈이사장님의 뒷모습은 측은지심의 화신보살이십니다.  
 
그래도 좋은 세상 - 삶에 취함
“지금 이대로가 좋지. 지금이 아주 좋아. 지금은 옛날처럼 따뜻한 정은 없지만, 사람 정만 있다면 현재가 아주 좋은 세상이지. 한다고는 했어도 늘 부족했던 엄마로, 애들한테 좀 더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손주가 써 보낸 편지, 며느리표 커피와 함께 온 쪽지 등 아들 며느리가 보낸 리본이 관세음보살보문품의 내용이 써진 액자 밑에 죽 걸려있습니다. 늘 부족했던 엄마에게 보내준 선물입니다. 이번 어버이날에도 카네이션이 달려올 것입니다.

더디지만 봄은 이미 왔습니다.
부디, 왕눈이사장님의 초강도 외로움이 환한 홀로움으로 가슴 구석구석 퍼질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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