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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사진첩…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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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사진첩… 말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7.09.04 13:27
  • 호수 1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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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되기도, 상처가 되기도 … 말

맑은 하늘에 하얀 구름, 상쾌한 바람이 가득한 생태공원을 걷습니다.
금계화가 드문드문 피어있는 길가에는 나뭇잎이 꽃만큼이나 예쁘게 물들고 있습니다. 잎이 부드러워 부들이라 불리는 부들도 연못 가장자리를 빙 둘러싸며 꽃을 피웠습니다.
말무덤 위로 소나무가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말묘, 말무덤이라 불리며 보존해 왔다는 말무덤. 단순히 말을 묻은 무덤일 수도 있지만 범상치 않은 유적일 수도 있다는 안내문을 읽습니다.
 
경북 예천에는 동물 말이 아니라  ‘말하는 말’을 묻은 언총(言塚)이 있습니다.
옛날, 여러 성씨들이 모여 살면서 서로를 함부로 비난하며 다투었답니다. 그런 비방과 욕설의 말들을 지방처럼 써서 그릇에 담아 구덩이에 파묻고, 말장례를 치르고 나면 다툼질과 언쟁이 수그러들었다는 말, 언어의 무덤입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며 뒷산에 올라가 외친 이발사처럼, 타인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담긴 말들도, 시집살이에 대한 며느리들의 한탄도, 양반집하인의 주인에 대한 원망도 차곡차곡 묻어버린 그 시절의 언총은 침묵의 상징이었답니다.

녹색 잔디가 곱게 자란 말무덤 앞에서 나의 말무덤을 생각합니다.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은 단어를 쓰고 지우며 밀어 넣은 글자무덤입니다.     
타인에 대한 욕이나 비난, 험담을 실컷 하고 봉하는 말무덤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공책 한 쪽마다 조그맣게 말무덤을 그려놓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말무덤을 보고 와서 말무덤이 덕지덕지 그려진 공책을 꺼내봅니다. 어느 날의 공책구석에는 새까맣게 탄 말무덤이, 또 어느 날은 하얗게 빈 무덤이 있었습니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이미 말라 흔적도 없는 말이 있는가 하면 지금까지 죽지 않은 말도 있습니다.
그래도 무덤 속에 들어앉아있어야 할 말들이 뭍사람들의 마음속으로 파고 든 것은 없었을까, 있었겠지만, 부드럽고 긍정의 말로 듣고자하는 천사의 귀를 가진 이들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째 여치소리로 인해 잠이 깹니다. 첫날은 공연히 반갑더니,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째 되니 듣기 싫어집니다.
언젠가 매미울음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다는 민원이 들어왔다는 뉴스를 보며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런 걸 가지고’ 라며 민원인을 이해가 안 된다며 투덜댔던 기억이 납니다.
당해 보고나서야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하게 된 이기심이, 열흘도 안 되는 자연의 소리도 마땅찮게 여기는, 천사의 귀가 되지 못하여 부끄러웠습니다.

점점 하늘이 높아지고 파래집니다.
지금 이 계절, 푸른말과 맑은말로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김현락 지면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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