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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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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사진첩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7.05.29 17:19
  • 호수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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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고 싶은 계절, 머무르지 않는 계절 … 오월

아침 출근길이 호화로운 계절
북쪽으로 향해 피는 유백색의 목련꽃을 보며 걷던 길을
개나리의 샛노란 물결 속을 헤치며 걷던 길을
시멘트 길바닥 갈라진 틈으로 오뚝 올라와 핀 노란 민들레를 보며 걷습니다.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하얀 솜털 속에 숨어 다가오는 버드나무의 씨앗을 눈으로 잡으며,
단풍나무의 빨갛게 익어가는 잠자리 날개 같은 씨앗을 보면서
오월 속을 걷습니다.

담장이가 파랗게 담을 덮은 지도 한참이 되었습니다.
소나무꽃이 앙증맞은 자태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분홍인지 보라인지 한참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달콤하면서도 청량한 향기를 가득 품은 아카시아도 아침 길을 더욱 싱그럽게 합니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며 걷는 길이라서 출근시간이 길어지는 계절입니다.
 

탐스럽게 꽃이 필 때도 장관이지만 떨어져서도 고운 꽃의 계절입니다.
꽃잎이 떨어지는 모양새나 바람에 우르르 구르는 모습이나, 구르다가 한쪽구석에 몰려 쌓여있는 모습 역시 피는 꽃 못지않게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한 잎 한 잎 꽃잎이 툭툭 떨어질 때마다 묵직한 나무까지 출렁이는 목련이나,   바람이 살짝 건드리기만 하여도 하염없이 날리는 벚꽃이나,
송이째 떨어지는 겹벚꽃이
잔디 위에, 머위잎 위에, 바위 위에 소리 소문 없이 쌓여 있습니다.
다 그렇다고, 그런 것이라고
꽃잎이 떨어져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자연의 원리 운운하면서도 막상 꽃잎이 날리고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서운하기 그지없습니다.
누렇게 퇴색해가는,
햇볕에 말라가는 마른 꽃잎을 보니,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우냐는 시 구절이 떠오릅니다.

작은 인연들로 인생이 아름답듯이
때 된 것들의 만남이랄까 농익을 대로 익은 향기가 땅 아래로 척척 쌓였습니다.
진분홍 벚꽃잎이 앉아 있던 자리에 하얀 아카시아꽃잎이 가득 찼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떨어져 손만 대도 바스라지는 은행나무 수꽃도 화석이 되었습니다.
수북하게 꽃잎이 쌓여 있는 그 길을
차마 발로 짓이길 수 없어 후후 불어보다가,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다가
까치발걸음을 해 보기도, 펄쩍펄쩍 뛰어 보기도 합니다.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좋은 관계가 되기 어려운 청설모가 소나무등걸에 앉아 말간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봄이 그렇듯이
오월 속에서 피는 꽃들의 진한 향연은 잠깐이지만 그 흔적은 오래오래 남습니다.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의 청신한 얼굴, 하얀 손가락에 낀 비취가락지, 모란의 달 오월.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신록을 바라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며 피천득 님이 예찬한 오월이 서서히 자리를 내주고 있습니다.
더 짙어진 색의 이파리와
더 깊고 단단하고 다디단 열매로 익히기 위한 유월이 들어설 수 있도록 말이죠.

아침마다 해맑은 모습을 보여주던 소담스러운 분홍빛 꽃이 진 자리에
복숭아씨만한 개복숭아가 열려 까닥까닥 흔들립니다.
유월의 아침이면 좀 더 큰 모습을 보여 주겠지요.
유월의 아침 길,
어떤 형체와 색깔의 바람이 불어올지 기대합니다.
  <김현락 재능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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