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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보다 따뜻한 네가 있었지 ‘봄을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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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보다 따뜻한 네가 있었지 ‘봄을 찾기’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6.12.26 11:04
  • 호수 11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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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사진첩

푸릇푸릇한 봄을,
팔랑팔랑 조잘대며 손 흔드는 초록의 여름을,
화려하고 풍요로운 절정 가을을 만나게 했던 우성산이 오늘은 스산하지만 따뜻한, 노릇노릇한 겨울을 만나게 합니다.
유쾌하게 쓸쓸한 시간을 만나기 위해 뒷산을 오른다는, 막힌 시간의 앞뒤를 탁 터주는 홀로움을 만나기 위해 외롭지만 외롭지 않게 산을 오른다는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홀로움에 대하여, 유쾌하게 쓸쓸함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새 소리도, 은행이 떨어져 구르는 소리도, 아람 버는 소리도 이미 겨울잠에 들었습니다.

기분 좋은 호젓함으로 빛이 들어오는 솔밭길을 걷습니다.
자근자근 밟을수록 폭신한 솔가리, 명랑하고 청아하게 소리를 내주는 도토리와 상수리나무의 마른잎, 낮잠 자는 나무들을 깨우지 않으려 살그머니 걸어도 자박자박 아삭아삭 소리가 납니다.
무채색 나무 사이에 아직도 연둣빛 잎을 고대로 달고 있는 보리수나무가 있습니다. 배추흰나비를 묻어준 적이 있는 굴참나무 숲을 지날 때마다 수 천 수 만 배추흰나비 떼가 일제히 이파리를 흔들며 아는 체를 해 주기도 한다는 시인(박성우)의 글처럼, 누군가 푸른 나비를 이 나무 밑에 묻어준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의자에 앉아 곱게 반짝이는 숲을 봅니다. 소나무도 길게 그림자를 만들었습니다.
봄이면 산 정상에 있는 의자에 앉아 팔랑이는 연두가 아지랑이처럼 퍼지는 것을 보았지요. 비탈길에 비스듬히 있는 의자에 걸터앉아 초록이 몰아주는 바람을 여름에는 신나게 쐬었습니다. 솔밭의 초입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소나무허리를 칭칭 감은 담쟁이 잎들이 빨갛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며 가을을 보내고, 겨울이 곰삭으려는 지금 그림자로 움직이는 소나무를 봅니다.

푸르고 단단했던 열매가 마른 가시뿐인 가지에 푸석푸석한 붉은 열매를 매달고 있는 멍가를 한 알 떼었습니다. 이미 산새의 먹잇감으로도 쓸모 없어버린 열매입니다.
마냥 고요한 산을 둘러보며 가는 길 끝에는 늘 빛나던 자작나무 숲이 있습니다. 때때로 그 환한 빛 사이로 허허롭게 삭막함도 깃들어 있습니다.
자작나무의 은빛 몸통이 반짝이면 멀리서 바라보는 숲은 무척이나 신비로웠습니다. 어느 땐 빛이 나무에게만 내리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느 땐 삼신할머니의 흰 머릿결 같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땐 눈 없이도 눈을 맞고 있는 것처럼 눈이 부셨습니다.

봄을 찾기가 시작 되었네~.
햇살처럼 따뜻한 것이 있을까~.
 
우르르 몇 명의 여중생들이 자작나무 숲에서 노래를 부르며 나옵니다. 배낭에 묶인 노란리본이 나풀댑니다. 순실이니 하야니 낯익은 단어도 들립니다. 문득 부끄러워집니다.
데미안을 읽고, 로테의 사랑이야기에 푹 빠져 있어야 할 여중생들이 국정교과서를 반대하고 한 나라의 대통령을 퇴진하도록 만든 기성세대이기 때문입니다.
정직하고 공정한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 갑‧을이라는 상징적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 반목이나 불신이란 단어 대신 화해와 평화란 단어가 더 많이 떠도는 사회를 만들어주지 못한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이 계절이 가면 어김없이 봄은 옵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오는 봄처럼, 봄을 찾는 노래를 듣습니다.
환하게 빛나는 촛불들의 무리가 그러하듯이, 비록 한 뼘일지라도 묵묵히 가지 사이에서 빨판 같은 흡착근을 내밀며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벋어나가는 담쟁이처럼, 봄은 오고 있습니다.  

눈 없는 12월을 보내니,
오늘이나 내일은 꼭 눈이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마음도 메말라 누구든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가, 까닭 없이 사람이 무서워지는 이유가, 눈 오는 철에 눈이 내리지 않기 때문인 듯합니다.
어떤 이해나 공감보다도 명료하고 아름답게,
우리들 각자가 하나의 눈송이처럼,
눈이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김현락 재능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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