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5:03 (수)
무엇이 도시재생사업의 성패를 가르나?…①
상태바
무엇이 도시재생사업의 성패를 가르나?…①
  • 이진수 기자
  • 승인 2016.10.17 13:25
  • 호수 117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림으로 그리움을 공략한 ‘김광석길’
▲ 김광석길 초입에 세워진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손영복 조각가.

‘그리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생각하다’라는 뜻과 ‘(사람이 어떤 모양을)연필이나 붓 따위로 나타내다’ 또는 ‘(사람이 물건의 형상이나 생각, 현상 따위를)말이나 글 또는 음악 등으로 묘사하거나 표현하다’라는 뜻을 가졌다. 전자의 명사형은 ‘그리움’이고 후자의 명사형은 ‘그림’이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그림으로 ‘낙후’를 탈출해 미래지향적인 공간으로 되살아난 곳이 있다. 바로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이다. 이곳에 가면 ‘그리다’라는 말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새삼 실감할 수 있는 골목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아래부터 김광석길)을 만날 수 있다.

방천시장과 신천대로 사이에 있는 이 골목길에는 지금 이 시간에도 서른세 살에 요절한 ‘가수 김광석’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중·고교, 대학생들은 물론 젊은 연인들과 외국인도 자주 눈에 뜨인다. 덩달아 방천시장도 활기를 되찾았다. 평일에 수백 명, 주말에는 1만 명 가까운 인파가 이 골목에 가기 위해 방천시장을 거치기 때문이다.
5~6년 만에 전국 최고의 명품 골목으로 자리를 잡은 김광석길의 비밀은, 사람들에게 각자의 ‘그리움’과 ‘추억’에 젖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다는 것이다. 

우범지대가 관광 명소로 탈바꿈
김광석길은 길이 350m에 지나지 않는다. 신천 제방의 옹벽을 따라 형성된 이 좁은(폭 3m) 골목은 개발 전 우범지대였다. 해가 지면 사람의 발길이 끊기고 쓰레기 천지가 되는, 어둡고 냄새 나는 뒷골목에 불과했다.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9년. 쇠퇴하는 전통시장을 문화예술로 살려내자며 문화체육관광부가 시행한 ‘문전성시사업’에 방천시장이 선정되면서부터이다.

공공예술로 시장의 환경을 개선하려는 목적을 가진 지역 예술가들이 몰려왔으며, 옹벽과 골목길의 재해석을 위한 벽화 그리기 작업이 시작됐다. 동피랑 벽화마을, 감천동 문화마을을 모델로 삼았다.
이때 중구청 공무원들과 지역 예술가들 사이에 중요한 화두가 떠올랐다. 단순한 벽화보다는 지역 출신의 저명인사를 주제로 해서 차별화를 도모하자는 합의에는 도달했으나, 과연 누구를 선정해야 할지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물망에 올랐고, 양준혁 프로야구 선수도 거론됐다. 김 회장은 어린 시절 이곳에서 신문팔이를 했고, 양 선수의 부친은 방천시장 상인이었다.

논란 끝에 가수 김광석이 벽화의 주인공으로 낙점됐다. 김광석은 1964년 1월 22일 대구시 대봉동에서 태어났다. 대봉동은 방천시장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인데 김광석은 다섯 살 때 부모를 따라 서울로 이주했다. 그에게는 대구에서 보낸 유년기 추억이 많지 않겠지만, 지역 예술가들은 주저 없이 김광석의 영향력을 선택했다.

무엇이 사람을 모으는가?
달구벌대로에서 시작되는 김광석길은 그의 노래를 중심으로 시장의 역사와 상인들의 삶이 담긴 방천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 한 길이다.
처음엔 조각가, 화가, 만화작가, 사진가, 조명연구가, 디자이너, 설치미술가, 공예가 등 17명이 작업에 참여했다. 그들은 김광석의 곡을 선정하고 그에 맞는 이미지를 재해석하여 옹벽 벽면을 채워 나갔다.

골목에 들어서면 먼저 ‘기타 치는 김광석’을 표현한 조각상이 길을 안내한다. 김광석 동상은 골목 초입과 중간에 하나씩 설치됐는데, 당시 예술감독을 맡았던 손영복 조각가의 작품이다. 김광석길은 그야말로 김광석으로 가득하다. 기타를 메고 미소를 지으며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는 김광석도 있고, 포장마차 주인이 되어 손님을 기다리는 김광석도 있다.

▲ 김광석 벽화의 밑바탕은 3m 높이의 하천 제방 옹벽이었고, 이 골목은 한때 우범지대였다.
김광석길 조성사업을 추진한 윤순영 대구 중구청장은 도시재생사업의 성공 요건에 대해 “중요한 건 예산규모가 아니다. 김광석길의 첫해 예산은 300만 원에 불과했다. 이후 정부예산을 보태기는 했지만, 문화와 역사에서 차용한 아이디어가 우범지대를 전국 최고의 골목길로 탈바꿈시켰다”며 “김광석이라는 흡인 요소를 먼저 발견한 후 주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면서 전문가들의 손에 의한 작업결과물을 배치한 것이 성공 요소”라고 강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