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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 운곡면 애라동길 배희병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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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 운곡면 애라동길 배희병 씨
  • 이순금 기자
  • 승인 2016.09.12 14:25
  • 호수 11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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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제2의 인생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40여 년 간 참교육을 실천해 오다 퇴임 후 지금은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제2인생을 설계해 가고 있는 배희병(74·운곡면 애라동길) 씨를 소개한다. 특히 그는 네이버 블로그 ‘배교장 팜’을 개설, 도시민들에게 직접 농사지은 왕대추 홍보와 판매를 병행하고 있다.

40여 년간 후학지도 전념 
그를 찾은 건 가까이에서 지켜 본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서다. 그는 기자의 방문에 “신문에 실을만한 이야기가 될는지 모르겠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시작했다.
그는 운곡면 애라동길이 고향으로 6남매 중 셋째다. 운곡초 5학년 때 대전으로 떠나 사범부속초·대전중·경복고·고려대 생물학과·연세대 교육대학원 졸업 후 교직자로 첫 발을 디뎠다.  
“경성고가 초임지에요. 축구선수 차범근, 가수 이문세 등이 제자죠. 서울시교육청, 강동송파교육지원청에서도 근무했고요. 그렇게 40여 년 교직에 있다 2005년 8월 한성과학고 교장을 끝으로 퇴임했습니다.”
한성과학고 재직 시 그는 서울시영재교육추진위원회 위원장, 전국과학올림피아드운영심의위원, 전국과학영재교육추진위원회 위원도 역임했다.
“인문계는 물론 영재 학교 등 다양한 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특히 한성과학고에서 영재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고, 전국과학고 교장협의회장도 맡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퇴임 후 선덕학원과 학교발명협회 이사, 이화여대 초빙 입학사정관도 맡았다. 이어 올 3월부터는 극동대 및 강동대 입시위원을 맡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초등학교 교육이 가장 중요
그는 퇴임 후 ‘이것이 과학고다’, ‘과학고를 알면 자녀의 미래가 열린다’ 등 두 권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과학고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보고서로, 현장에서 과학고를 이끌어가는 교사·학생·학부모들의 구체적인 자료를 통한 분석과 생생한 체험에서 나온 경험담을 담았다. 과학고는 왜 필요하고 어떻게 배우고 가르치며, 진학은 어디로 하는가 등도 담겨 있다.
두 권의 책은 영재교육관련이었고, 덕분에 그는 학부모 초청을 받아 강사 및 상담 등 바쁘게 활동했다. 
“저는 초등학교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미래의 목표도 이때 설정돼야하고요. 그런데 과학고 학생들 상담해보니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목표를 세우고 생활해 왔더군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일찍부터 학력이 완성돼 가는 것이죠. 영재가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일찍부터 목표를 세우고 그 꿈을 이뤄갈 수 있도록 부모님들께서 도와주시면 좋겠어요. 또 무엇보다 다독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요.”
이렇게 그는 퇴직 후에도 전국 곳곳의 초청을 받아 8년 여 간 강의 및 상담 등 바쁘게 생활했다. 그러다 2012년 고향으로 귀촌했다.

대추로 청양이 행복했으면
“아버지께서도 교육자셨어요. 30대에 온양고 초대교장 발령을 받으셨고, 곳곳에서 후학 양성을 하시다 서울고 교장 재직 중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고향에서 계속 계시다 돌아가셨고요. 나이가 드니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고, 어머니가 계시던 곳에서 살고 싶었죠. 그래서 귀촌했습니다. 와서 보니 퇴직 후 바로 올 걸 후회되더군요. 할 일도 많고 너무 좋아요.”
이런 마음으로 고향에 온 그는 일거리를 찾아다녔고, 청양왕대추연구회를 알게 되면서 왕대추 농사부터 시작했다. 2013년 830여 제곱미터 규모의 시설하우스로 시작했다.    
“왕대추연구회원들의 열정이 마음에 들었죠.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지금은 고문을 맡고 있어요. 사실 블루베리도 심어봤고, 고추농사도 지어봤지만 시원찮더군요. 그래서 접었다가 블루베리는 다시 시작해 볼까 합니다. 1년 과정으로 식초 가공교육도 받았고, 앞으로도 무엇이든 열심히 해 보려고 합니다.”
회원들로부터 정보를 얻고 이를 토대로 열심히 왕대추 농사를 지은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회원들과 백화점 홍보도 다녔다. 대추로 청양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단다. 특히 자신의 농사 비법과 제품 홍보 등을 네이버 블로그 ‘배교장 팜’(왕대추)에 올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베풀면서 노후 보내고 싶다
그는 꽃을 좋아하는 할아버지다. 때문에 집 주변 200여 평에 백합을 심었다.
“꽃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주민들이 보고 마을도 가꿔보고 싶어 심었어요. 그랬더니 주민들이 콩이라도 심지 하시더군요. 우리 마을에서만도 300여명 가까이 떠났답니다. 이들이 다시 오도록, 관광객들도 와서 머물다 갈 수 있도록 예쁜 마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의 집을 지나 한참 올라가면 노적산 아래 작은 정자가 하나 있다. ‘태하정’이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 모두 덕을 쌓고 덕을 베풀 수 있는 마을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그가 이름을 정하고 꾸며 놓은 곳이다. 이곳에는 오디오시설이 갖춰져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다양한 차와 사탕이 구비돼 있다. 모두 그가 마련해 놓은 것이다.
“옛날에는 정자가 없었고 쓰레기만 많았죠. 2년 걸쳐 쓰레기를 치웠고 지저분한 나무들은 베고 꽃을 심었어요. 면에서는 정자를 만들어줬고요. 그렇게 마을 쉼터가 마련됐죠. 제가 사진도 8년 정도 배워 합동전시회도 몇 번 했고 특히 음악을 좋아해서 CD를 많이 가지고 있어요. 그런 것들이 유용하게 사용되네요.”
배희병 씨는 연세대 피아노과 졸업 후 대학에서 후학을 지도했던 부인 장숙자(70)씨 사이에 남매를 두었고, 앞으로 고향 인재들이 미래 주역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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