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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의 황홀한 구속 ‘다정도 병인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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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의 황홀한 구속 ‘다정도 병인양하여’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16.03.21 14:41
  • 호수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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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사진첩

난초가 꽃을 피웠습니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꽃이 핀 난초 분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같이 살아온 지 십년이 가깝도록 꽃도 피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은 동료가 분갈이를 해 준다며 가져가더니, 한참 후에 아름다운 향을 풍기는 꽃이 핀 난분을 가져온 것입니다.
 
집안에 들어오게 된 두루뭉술한 과정을 꼬치꼬치 따지기도 전에 은은하고 달달하고 신선하고 고요한 향은 은근슬쩍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깁니다.
이쪽에서 맡는 향과 저쪽에서 맡는 향이 다른 듯 같은 듯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만화 속 꽃의 요정이 지팡이를 갖다 대는 곳마다 향이 다른 것 같습니다. 
 
가장 진화된 외떡잎식물인 난초는 아름다운 꽃과 향으로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하며, 그 종류 또한 2만5천 여 종이 넘는 여러해살이식물입니다.
한국‧일본‧중국에서 자생하는 보춘화‧한란‧석곡‧풍란 등을 포함하는 동양란과, 인도‧동남아시아 등에서 자생하며 큰 꽃을 피우는 양란으로 구별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말기부터 재배되었으며 옛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 문인화의 소재로 빼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포기 사이로 길게 올라온 꽃대에 손톱보다 작은 꽃송이 9개가 매달렸습니다.
두 송이는 뒤로, 한 송이는 위로, 꽃대를 중심으로 빙 돌아가며 달려 피었습니다. 
한 송이 송이마다 잎을 닮은 3개의 꽃받침과 2개의 활짝 핀 꽃잎은 부처님 뒤편의 광배처럼 꽃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꽃가루를 숨기고 있는 꽃술대 밑,  입술꽃잎 위로는 자줏빛 점이 호랑무늬처럼 찍혀 있네요.
 
은은한 난향은 나방을 비롯해 밤에 활동하는 곤충을 유인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꽃마다 왜 그리 입을 벌리고 있는가 하였더니, 곤충이 찾아와 꽃가루를 옮길 수 있도록 꽃은 봉오리가 열린 후에도 오랫동안 입을 벌리고 곤충을 기다리는 중이랍니다.
곤충은 아닐지라도 살짝살짝 그 옆을 스칠 때마다, 스치고 지날 때마다, 은근하게 밀려오는 향은 코끝을 붙잡습니다. 부르고 있습니다. 불러 세웁니다.         
아침이면 떠지지 않는 눈으로 어기적어기적 난초 앞으로 갑니다. 밖에 나갔다들어오면 만사 팽개치고 또 그 앞으로 갑니다. 차를 마시면서, 잠자리에 들면서, 끊임없이 난초꽃을 들여다봅니다.
난향으로부터의 황홀한 얽매임이 노심초사로 차츰차츰 불안해집니다.
수분 손실을 막기 위해 가죽처럼 단단하고 초승달처럼 청청한 잎, 아련한 연둣빛 꽃과 향에 어울리는 적절한 단어도 찾지 못한 채 한동안 집착 아닌 집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심결에 창문을 열어 놓고는 추위에 꽃이 떨어질까 놀라 후다닥 문을 닫곤 합니다. 얼마나 오래도록 꽃을 볼 수 있을지에 대하여 점점 초조감이 쌓여갑니다.

애지중지 보살펴도 꽃대 한 번 구경할까 말까 한데, 꽃나무의 상태는 헤아리지도 않고 꽃을 피우지 않는다고 핀잔만 물 주듯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꽃이 질까봐 아쉬워하는 이율배반적인 스스로가 조그마한 꽃 앞에서 더 작아집니다.

문득, 난분으로 인해 무소유를 언급하신 법정스님이 생각납니다.
<김현락 재능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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