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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 함미경 한국농아인협회 청양군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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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웃 - 함미경 한국농아인협회 청양군지부장
  • 이순금 기자
  • 승인 2016.02.22 14:53
  • 호수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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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언어장애인들의 권익향상 위해 최선

오늘 만나볼 이웃은 함미경(49) 씨다. 그는 ㈔한국농아인협회 충남협회 청양군지부장과 청양군수화통역센터장도 겸하고 있다. 청각·언어장애인의 복지와 인권 증진, 이들의 사회참여를 위해 노력하는 함 지부장을 소개한다. 인터뷰는 이지선 수화통역사가 도왔다.
 
어릴 적 열병 앓아 청력 손실
함 지부장은 강원도 춘천에서 1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으며, 3살 때 열병으로 청력을 잃고 언어장애까지 겪게 되면서 후천적인 장애인이 됐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다고 해요. 그런 중에 3살 때 열병이 찾아왔는데, 당시만 해도 제가 살던 곳은 시골이어서 열병을 치료할 전문 병원이 없었답니다. 결국 청력을 잃고, 소리도 잘 못 들어 언어손실까지 오게 됐죠.”

그는 그렇게 후천적인 청각언어장애인이 됐고, 그런 상태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춘천에 있는 계성학교에 입학해 초등과정 교육을 받게 됐다. 
“계성학교는 청각장애 공립특수학교에요. 그곳에서 초등과정과 수화를 배웠죠. 지금은 유치원과 초·중·고등과정이 있지만 제가 다닐 때에는 중·고 과정은 없었던 것 같아요.”

초등 졸업 후 그는 중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형편이 어려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만 해도 중학교 과정 특수학교에 입학하려면 서울로 유학을 가야 했기 때문이다.
“서울 학교에 입학하려면 돈이 많이 들었어요. 당시 둘째 언니가 서울대 미대에 합격하는 등 여러 가지가 겹치기도 했고요. 그래서 제가 포기했고, 때문에 언니가 많이 미안해했죠.”

남들과 다른 처지 ‘화가 났다’ 
유년시절 그는 자신이 청각·언어장애인이 된 것에 대해 받아들이기 힘들었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수긍하게 됐다고 전했다.
“남들과 다른 제 처지에 많이 화가 났죠. 다른 친구들처럼 말도 하고 싶고 일반학교에도 다니고 싶었거든요. 그러다 초등교육을 받으면서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일을 도왔어요. 어머니께서 봉제 일과 건축 현장에서 벽돌 나르는 일 등을 하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계셨거든요.”

이후 그는 건청인 친구 도움으로 도배기술을 배웠고, 독립해 부산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27살 때였으며, 이후 10여 년간 도배 기술자로 일했다. 또 그 사이 친구 소개로 만난 남편 최인규(50)씨와 결혼도 했다. 그러다 10년 전 청양으로 이사를 왔다.
남편 고향이 부여여서 청양에 대해 잘 알더군요. 청양이 집값도 비교적 저렴했고요. 그래서 이사를 왔고 4년 정도는 남편 일을 도왔어요. 남편은 충남 곳곳을 돌며 붕어빵 등을 판매합니다.”

농아인 위한 일 하고 싶었다
청양에서 남편의 장사를 도우며 생활했던 함 지부장은 농아인협회 군지부 회원으로도 가입해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군지부 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더불어 자신의 능력이 되는 한 회원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회원이 되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모습들이 보이더군요. 특히 청양에 수화는 물론이고 무학자인 농아인은 많고 이들을 위한 지원은 많지 않은 것 같았죠. 그래서 도울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2009년 6월부터 이사를 맡고, 2011년 2년간은 충남 농아인협회 선거관리위원을 맡게 됐죠. 그리고 2013년 지부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 후 동년 4월 2일 임명장을 받아 그 책임을 수행하게 됐습니다.”

지부장 당선 후 그는 농아인들의 사회참여를 위해 우선 노력했다. 특히 농아인 대다수가 65세 이상인 점을 감안해 어른들을 위한 사업을 고민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기 위해 유관기관과의 교류를 위해서도 활발하게 움직였다.
난청인들은 스스로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기 때문에 그들을 끌어내 정서적 안정을 주고 알아듣지 못해도 창피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주지시키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취임식 때 소통으로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신념이라고 말씀 드렸어요. 농아인이 청각인의 사회를 이해하고, 청각인이 농아인의 언어인 수화를 배우는 등 소통하려고 노력한다면 경계가 무너질 것이다. 이를 위해 열심히 움직이겠다고요. 군내 농아인수는 난청성 노인까지 포함해 400여명이에요. 앞으로도 이들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는 청양군수화통역센터장도 겸하고 있다. 한국농아인협회에서 보건복지부와 계약해 지부장이 센터장을 겸임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물론 제3자가 센터장을 맡을 수도 있다.

긍정의 마음으로 활기차게 생활
그는 올해 농아인들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란다. 농아인 어르신쉼터 마련, 농아인 게이트볼 동아리 운영, 한 달에 한 번 밑반찬 나누기도 진행할 계획이다.
“올해 가장 큰 일은 충남농아인체육대회가 청양에서 처음 개최되는 것입니다. 9월 말에서 10월 7일 중 하루 개최됩니다. 5000여 만 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한데, 현재 책정된 예산이 부족해 걱정이 큽니다. 타 시·군처럼 후원회 조직이 잘 돼 있으면 걱정이 덜 할 텐데요. 하지만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추진할 것입니다. 많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며 수화를 배운 그는 훈련을 통해 청력도 어느 정도는 되찾았다. 때문에 수화를 전혀 못하는 농아인들 보다는 모든 일에 있어 활발하게 생활할 수 있단다.
“수화를 모르는 농아인은 한글을 모르는 일반인과 같아요. 중증의 언어·청각장애인의 경우 수화는 큰 효과가 없어요. 이들을 위한 수화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수화를 모르더라도 표정에 민감해 일반인들이 욕을 하거나 화를 내는 경우 모두 알아듣습니다. 배려를 부탁드립니다.”

2012년 올해의 장애인상을 수상하기도 한 함 지부장. 그는 청각장애로 듣지 못하는 불편을 겪지만, 긍정적이고 바른 마음으로 자신보다는 주위 사람을 먼저 돌아보는 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노인 회원들의 고민거리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긍정적이세요. 어려워도 잘 될 거야라는 마음으로 생활하시죠. 그래서 그 마음가짐을 저희들도 배우려고 항상 노력합니다.”이지선 통역사의 말이다.  

가족들의 화목을 우선하면서 청각·언어장애인의 권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함미경 지부장은 충남농아인협회 이사인 남편 최인규 씨, 수화통역사인 큰딸, 피부미용사 실습 중인 둘째 딸과 함께 오늘도 활기차게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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