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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남을 청양의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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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남을 청양의 풍경들
  • 김현락 프리랜서
  • 승인 2014.12.08 13:20
  • 호수 10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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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야들야들한 분홍빛 유혹에 넘어진다 ‘담배 꽃’

비가 내려, 가는 가을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지더니, 급기야는 눈송이가 바람에 쏠려 동쪽으로 동쪽으로 날려간다. 이미 낙엽이 된 화려했던 단풍잎위로, 너른 들판의 빛을 읽은 억새위로 까칠한 바람 줄기에 실린 이 두꺼운 눈이 깊게 지나가면 금방 긴 여운의 겨울이 가득 찰 것이다.

쌍떡잎식물에 해당하는 담배는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에서 건너왔으며, 세상 모두와 키스하고 싶은 인디언 소녀가 죽은 자리에서 피어났다는 인디언전설이 있다. 어린 싹은 마치 배추처럼 자라다가 어느 정도로 크면 거침없이 줄기가 곧게 서며, 잎과 줄기에는 점액을 분비하는 선모가 빽빽하게 있어 끈적인다. 잎자루는 짧고 날개가 있으며, 나중에 담배가 되는 긴 타원형 잎은 어긋나고 끝이 뾰족하며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원줄기 끝에 맺히는 깔때기 모양의 꽃부리에서 나오는 나풀나풀한 꽃잎은 윗부분이 5개로 갈라지며 7~8월에 연한 홍색의 꽃을 피운다. 끝부분은 색이 짙고 원뿔형으로 달리는, 눈만 흘겨도 찢어질 듯 앙증맞은 이 홍색 꽃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마음이 자꾸만 끌린다.

꽃이 지면 맺히는 열매 속에는 2000~4000개의 짙은 갈색 둥근모양의 미세한 씨가 들어있으며, 씨가 워낙 작다보니 ‘잘다’는 뜻으로 쓰인 속담이 몇 개 있다. 성질이 매우 잘거나 좁은 마음을 비꼬는 내용인 ‘담배씨네 외손자’, 안 그래도 작은 담배씨의 속을 파내 뒤웅박을 만들려고 할 정도로 사람됨이 매우 잘거나 잔소리가 심하다는 뜻의 ‘담배씨로 뒤웅박을 판다’ 등.

가격인상으로 시선을 끄는 담배는 1618년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재배종의 품종이 남초‧왜초‧서초로 불리는 것을 보면 일본이나 중국을 왕래하는 상인들에 의해 도입된 것으로 알 수 있다. 담배는 보급된 초기부터 수난을 겪어, 초가집이 많았던 당시 담배로 인한 화재가 빈번하고 다른 여러 가지 폐해를 막기 위한 금연령이 내렸으며, 17세기 독일에서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목을 자르기도 하였다. 광해군 역시 금연령을 내려 임금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였으며, 이것이 민간으로 퍼져 어른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 예의로 여겨 내려왔다.

그러나, 담배를 피기 위한 삶처럼 사는 사람 역시 금연가 만큼이나 많아 담배는 지속적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담배 애호를 넘어 골초였던 정조를 비롯하여, 시인 김소월과 김억은 담배연기를 슬픔과 감상을 깊게 하는 환상의 검은색으로 묘사하였으며, 프로이트는 “흡연은 삶이라는 전투에서 우리를 보호하는 참호이자 무기”라 하며 담배를 즐겼다.

한때는 정신을 상쾌하게 하고 몽상에 빠져들게 한다는 자운의 담배연기가 자유롭게 거리를 누비고 다녔으며, 진한 남자의 향기로 인정받았던 담배가 점점 추억 속으로 밀려가려 한다. 
버려진 담배꽁초보다 더 많은 금연표지판, 어느 공포영화보다도 끔찍한 텔레비전에 나오는 금연광고는 몇 세기 동안의 길고 긴 전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애연가들과 머잖아 어느 놀이터의 밤이나 지천변에서 껌뻑이며 반짝이는 별들이 점점 사라질 테지만, 믿었던 사람으로부터의 배신이나 사람들의 밑바닥을 볼 때, 스트레스와 불안이 옥죄는 삶이 번복된다면, 배신감을 태우고 미워하는 마음을 녹였던 가느다란 담배들에게 다시 끌려갈지 모를 일이다.      
새로 피는 담배 잎은, 줄기는, 꽃을 밀어 올리며 생각할 것이다. 성공과 청결과 건강을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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